몇 년만에 외출을 했다. 잠시지만 구김없는 웃음으로 짧은 여유를 가졌다. ⓒ최석윤

이 웃음을 지켜줄 수 있을지 의문이다.

힘든 시간을 보내는 아이가 밝게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서로 어려운 시간을 보내면서 어두운 면만 가지고 지낸다면 얼마나 우울한 날들일까.

12년을 그렇게 보냈다. 죽음을 말하는 사람들을 비웃듯이 생활하는 아이는 늘 놀라움의 대상이다. 그렇게 힘들게 하루하루 지내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모습을 보면 더욱 놀란다. 하루에 일어나는 경기가 평균으로 잡아 5-6회 정도인데 그것도 정도가 심하게 일어난다고 하면 다들 혀를 내두른다.

경기가 얼마나 사람의 진을 빼는지 알고 있는 사람들은 혀를 끌끌 차면서 안쓰러움을 전한다. 한 번 경기를 하면 사지가 굳어지고 온 몸의 기운을 다 빼내면서 정신을 놓게 만들지만 상황이 정리되면 아이는 웃음으로 말을 대신한다. 손가락도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에서도 제일먼저 보여주는 모습이 웃음이다.

의사들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혀를 내두르는 것은 아이가 보여주는 생활이다. 검사를 받으면 늘 “이 상태로는 저런 모습을 보일 수 없다”는 말을 한다. 하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한다. ‘희한한 녀석’이라는 말로 모든 것을 대신한다.

결코 즐거울 일이 아니지만 아이의 웃음은 우리들 마음에서 어둠을 걷어 간다. 중심을 잡지 못하는 걸음, 말도 못하고, 언제 어디서 쓰러질지 모르는 상태로 지내면서 보여주는 웃음은 ‘기쁜 슬픔’이다.

아이와 생활을 하면서 많은 것을 잃었고, 또 많은 것을 얻었다. 아이의 존재 자체가 주는 의미도 크다. 하지만 늘 지우지 못하는 질문은 ‘언제까지 이 웃음을 지켜줄 수 있을까?’이다.

지켜준다는 말 자체도 우스운 표현이다. 아이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으며 단지 곁에서 자리만 함께 한다는 것 말고는 아비로서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으니 말이다.

아이가 웃으면 따라 웃고, 아이가 힘들어 하면 함께 힘들어 하는 것이 전부인 상태에서 부모로서 혹은 어른으로서 아이를 위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은 스스로를 힘들게 하지만 아이는 아무렇지 않게 웃음으로 모든 것을 말하고 있다.

이 웃음이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늘 불안함이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

1963년 서울 생. 지적장애와 간질의 복합장애 1급의 아이 부모. 11살이면서 2살의 정신세계를 가진 녀석과 토닥거리며 살고 있고, 현재 함께 가는 서울장애인부모회에 몸담고 있습니다. 장애라는 것에 대해서 아직도 많이 모르고 있습니다. 장애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지내온 것이 무지로 연결된 상태입니다. 개인적으로 장애라는 것이 일반의 사람들과 다를 것이 없다고 여기고 있었으며 그런 생각은 아이가 자라 학교에 갈 즈음에 환상이란 것을 알게 돼 지금은 배우며 지내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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