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이브코스로도 유명한 4번국도. 백마강을 끼고 달리는 길이 푸르고 푸르다. ⓒ정재은

금강하구에 곱게 자리를 잡은 부여는 삼국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는 문화와 역사의 천년고도(千年古都)이며 공주와 함께 백제의 문화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곳이다. 부여는 완성된 백제의 문화를 보여주면서, 백제의 패망의 아픔도 고스란히 전해 주는 한 나라의 흥망성쇠가 아득한 곳이다.

유람선을 타고 백마강을 달린다. ⓒ정재은

강도 물이라 하늘을 닮는 것일까? 백마강 구드래 선착장에서 유람선을 타니 푸른 하늘 아래 푸른 강줄기가 빛난다. 푸른 물살을 뒤로하고 통통거리며 가는 낡은 유람선엔 촌스럽다 못해 시끄럽기까지 한 방송소리가 백마강에 얽힌 백제의 역사에 대해 성토하기 시작한다. 그렇지만 나는 그 소리가 옛 시절 친구를 만난 듯 반갑기 그지없다.

유람선에서 바라본 낙화함. ⓒ정재은

선착장을 뒤로하고 얼마 가지 않아 한 어귀만을 돌아드니 오른쪽에 작은 절벽이 하나 눈에 띈다. 겉보기엔 여느 절벽과 다름없어 보이나 가까이 갈수록 절벽의 경사가 예사롭지 않다. 낙화암(落花岩)이었다. 낙화암은 백마강 강변에 자리하고 있는 수직바위 언덕으로 부소산성의 끝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짧은 승선시간을 뒤로하고 배에서 내리니 길은 고란사로 통한다.

고란사 약수터. 젊어지고 싶은 욕망에서일까 사람들이 사람들이 연신 줄을 서있다. ⓒ정재은

고란사는 백제 말기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할 뿐, 자세한 기록은 전하지 않지만 낙화암(落花岩)에서 사라져간 삼천궁녀의 넋을 위로하기 위하여 1028년(고려 현종 19)에 지은 사찰이라고도 한다. 이 절은 원래 백제의 왕들을 위한 정자였다고 하며, 또 궁중의 내불전(內佛殿)이었다고도 전한다.

절 뒤 바위 틈에 고란정(皐蘭井)이라는 약수터가 있는데 일설에 의하면 이곳의 약수를 먹으면 3년씩 젊어진다는 전설이 있다. 이 약수를 너무 많이 마셔 갓난아이가 되어버린 할아버지의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는 말에 장난기 어리게 한잔씩 세며 물을 먹기도 하였다.

낙화암 정상에서 바라본 백마강과 유람선. ⓒ정재은

고란사를 돌아 계단과 산길을 잠시 타면 낙화암이다. 낙화암은 서기 660년(백제 의자왕 20) 백제가 나당연합군(羅唐聯合軍)의 침공으로 함락되자 궁녀 3,000여 명이 백마강(白馬江) 바위 위에서 투신하여 죽었다고 한다. 그 모습이 떨어지는 꽃잎 같다고 하여 낙화암이라고 불렀는데, 이 암석 위에 1929년 다시 그 곳 군수 홍한표(洪漢杓)가 백화정(百花亭)을 지었고, 절벽 아래에는 ‘낙화암(落花岩)’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낙화암에 올라 백마강을 바라보니 과연 그 언덕의 높이와 발아래 계곡으로 깊이가 뼈를 에이는 듯하여 이곳에서 몸을 사리던 삼천궁녀의 심정을 헤아릴 듯하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백마강 풍경은 시원스럽지만 아득하다. 아득하다 못해 서럽기까지 하다. 저 세월의 흐름은 천년을 헤아리고 있을 것인데 물은 물이요 산은 산이듯 역사는 역사일 뿐이라는 허무함이 감싸고 돈다. 한 나라의 존망(存亡)을 묵묵히 바라보며 인내하고 품어 안았던 ‘산천(山川)을 허망되이 바라보니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 데 없다’는 야은 길재의 시조가 떠오르고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같기만 하다.

낙화암의 모습. ⓒ정재은

역사를 통해 현실을 인식하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고자 용기를 내어 엉덩이를 털며 일어나 가던 길을 재촉한다. 오는 길은 배를 이용했으니 가는 길은 산을 타고 싶은 마음에서다. 길은 부소산성(扶蘇山城) 내에 있으니 여기가 백제의 멸망을 맞은 마지막 왕궁 터이고 예전에는 사비성이라고 불렀던 곳이다. 2km 정도의 길이 험하지 않고 주변에 볼거리가 많아 구슬땀 한번이면 잠시 후 구드래 공원 선착장에 이르고 부소산성을 수륙양면으로 한 바퀴 돌았다는 작은 기쁨에 젖는다.

신록(新綠)이 가득한 천년고도(千年古都)가 우리를 기다린다. 이번 주말.. 아이들과 함께 하는 역사여행이 어떨까? 글로써 설명하려는 가르침보다는 자연과 역사가 어우러지는 부여에서의 가족나들이가 아이들의 가슴에서 더욱더 빛나리라.

*휠체어장애인을 위한 여행정보

1. 유람선은 소형선박이어서 휠체어를 타고 갈수 없으며 주위사람들의 도움이 많이

필요하다.

2. 부소산성으로 올라가는 길은 완만한 길이기는 하나 경사가 심해 관리인에게 차를

가져갈 수 있도록 부탁하는 것이 안전하다.

부여시내에 있는 정림사지 5층 석탐과 부여박물관. ⓒ정재은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 경기지사에 재직 중이다. 틈틈이 다녀오는 여행을 통해 공단 월간지인 장애인과 일터에 ‘함께 떠나는 여행’ 코너를 7년여 동안 연재해 왔다. 여행은 그 자체를 즐기는 아름답고 역동적인 심리활동이다. 여행을 통해서 아름답고 새로운 것들을 만난다는 설렘과 우리네 산하의 아름다움을 접하는 기쁨을 갖는다. 특히 자연은 심미적(審美的) 효과뿐 아니라 보는 사람의 마음까지도 정화시켜 주는 심미적(心美的) 혜택을 주고 있다. 덕분에 난 여행을 하는 동안에는 장애라는 것을 잠시 접고 자유인이 될 수 있었다. 그동안 내가 받아온 자연의 많은 혜택과 우리네의 아름다운 풍경들을 함께 나누는 소중한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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