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운동을 하는 모든 성원들이 가져야 하는, 혹은 가졌으면 하는 것은 일상에서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자세다. ‘장애인 교육 지원법’(이렇게 표현하고 싶다)을 만들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고 그 결과가 이제 눈앞에 있다. 그 내용이 어떻게 변할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허울뿐이었던 법을 새롭게 만들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차별금지법’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부모운동은 자각하기 시작했고, 그 성과도 상당하다 할 수 있다. 그런데 면면을 살펴보면 그리 좋아할 수만은 없다. 흩어지면 죽고, 뭉치면 산다는 말처럼 많은 사람들이 힘을 모아 법을 만들었지만 그것은 원론적인 이야기고, 일상에서 개인들의 결의 정도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에 법의 내용적인 측면에서 실효를 따져볼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사설이 좀 길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이냐면 작은 것의 소중함도 함께 가져 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큰 싸움을 하면서 힘의 위력을 실감했지만 정작 현장에서 느껴지는 체감온도는 그리 크지 않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법을 만들어도 그것이 학교 현장에서 제대로 활용되지 못한다면 '무용지물'이다.

서울에만도 각 지역에 부모회가 존재한다. 다른 지역은 사정을 모르니 뭐라 할 말이 없고, 서울만 놓고 이야기를 한다면 지금 만들어 지는 법의 실효성에 대해서 물음표가 생기는 것은 개인적인 기우(杞憂)일지도 모른다. 학교 안에서 주장하고 찾아야 하는 장애인교육의 권리는 아직도 상당하다. 학교가, 혹은 교육청이 알아서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경우는 단 한 차례도 없다. 모든 것이 단체의 힘으로 주장하고, 따져 묻고, 필요성을 강조해야 조금의 변화가 만들어 진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교육청과의 협의는 그나마 좀 나은 편이다. 학교 안으로 들어가면 교사와 개인의 문제가 되는데 여기서는 제대로 풀리지 않는다. 교사와 부모의 관계, 혹은 부모와 학교의 관계에서 늘 부모는 약자가 되고, 더군다나 장애학생의 부모는 온갖 눈총을 받아가며 자신의 생각을 표현해야 할 정도다.

당장 과밀학급의 경우, 개선을 요구하면 공간의 문제를 들고 나와 기본적인 학습권은 뒷전으로 밀린다. 보조원의 경우는 더더욱 어렵다. 한 학급당 한 명의 인원을 지원한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멀기만 한 계획이고, 기관에서 파견 오는 보조원의 숫자를 더해도 아이들을 보조하는 일은 충분하지가 못하다.

개별화 교육이나, 방과 후 에서도 제외되는 경우는 아직 언급도 못하고 있는 실정이고, 부모들과 교사가 잘 지내야 한다는 생각에 자신들의 생각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는 허다하다. 무엇을 위해 잘 지내야 하는 것일까? 아이를 위해서 그렇다고 이야기를 하지만 진정 아이를 위한다면 제대로 된 교육환경을 만들어 내는 것이 우선이라 여겨지지만 학교현장에서 보는 부모들의 모습에서는 전혀 그런 의지나 생각을 읽을 수 없다.

유명한 교수의 강의를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이고 감흥을 받았다고 이야기 하면서도 정작 문제를 풀어가야 할 시기가 오면 굳게 입을 닫고 만다. 현장학습이나 수련회, 소풍 등 야외행사의 경우는 부모가 가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학교와 교사들의 생각에 아니라고 단 한 번이라도 이야기 할 수 있어야 하지만 침묵뿐이다. 통합교육을 이야기 하지만 지금 이루어지는 내용이 통합이라 할 수 없음이니 제대로 된 통합을 이루기 위해서는 부모들의 권리의식이 더 높아져야 한다.

부모회가 운영이 되고 있지만 서비스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처럼 보여 지고, 하나의 프로그램이라도 더 운영을 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는 모습을 보면서 진정 이것이 부모회가 존재하는 이유인가 의문이 생긴다. 최소한 회비를 받고 있고 그 회비로 운영이 되고 있다면 그 회비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운영하는 것보다는 아이들의 권리를 지켜내고, 그 권리를 더 키워가기 위해 쓰여 져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각 지역부모회는 학교현장으로 더 적극적으로 들어가야 하고, 단위학교의 문제들을 개인의 것으로 넘기기 보다는 지역에서 어떤 방법이든 만들어 해결을 해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렇게 될 때 더 많은 아이들이 더 나은 환경에서 생활을 할 수 있고,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게 되고, 질 높은 교육이 이루어 질 수 있게 될 것이다.

부모회가 존재하는 이유는 ‘부모운동’으로 봐야 한다. 최소한 운동이라는 것에 맞게끔 하기 위해서는 변화를 이끌어내고, 미래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 충실해야 한다고 본다. 가장 중요한 것은 권리와 인권의 신장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데 그 중심에 아이들이 있어야 한다. 고민의 중심에, 생활의 중심에, 일상의 중심에, 모든 행동의 중심에 아이들을 놓고 생활할 수 있어야 한다.

미래를 고민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모두가 한 입으로 ‘아이들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이야기 한다. 그런데 그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일에 학교 안에서 벌어지는 어떤 행위에도 항변하지 못하고 고개 숙이고 만다. 그럼 무엇을 하겠다는 말인가?

권리라는 것을 가지고 운영을 하면 서비스는 따라오게 마련이라는 생각이다. 법적인 토대를 만들었으니 이제 실행만 되면 된다는 생각인지, 아니면 큰 싸움으로 얻은 것의 결과물을 보니 크게 벌이고 봐야겠다는 생각만을 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우선은 기본적인, 가장 바닥의 정서를 읽고, 거기서부터 변화를 이끌어 내려는 시도가 필요하다.

1963년 서울 생. 지적장애와 간질의 복합장애 1급의 아이 부모. 11살이면서 2살의 정신세계를 가진 녀석과 토닥거리며 살고 있고, 현재 함께 가는 서울장애인부모회에 몸담고 있습니다. 장애라는 것에 대해서 아직도 많이 모르고 있습니다. 장애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지내온 것이 무지로 연결된 상태입니다. 개인적으로 장애라는 것이 일반의 사람들과 다를 것이 없다고 여기고 있었으며 그런 생각은 아이가 자라 학교에 갈 즈음에 환상이란 것을 알게 돼 지금은 배우며 지내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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