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이 되니 맘부터 설렌다. 입춘을 맞이한 지도 어언 한 달이 넘어가건만 봄바람은 차갑기만 하여 봄을 기다리는 이의 마음만 조급하다. 그렇지만 이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봄소식이 있으니 추운바람을 맞으며 가장 먼저 꽃을 피우는 매화다. 사대부들이 사군자 중 으뜸으로 쳤던 봄의 전령이자 절개의 상징 매화가 이미 남도에선 한창이다.
아직까지 얄미운 꽃샘추위에 몸을 움츠려야한다. 하지만 시간과 길을 달려 섬진강에 닿으면 강가엔 봄내음 가득하다. 강둑의 파릇파릇 푸른 기운을 따라 싱그러운 강가로 시야를 넘기면 강 저편은 하얀 기운이 예사롭지 않다. 하얀 매화향기는 내 후각보다는 시각을 먼저 자극하는 게 틀림없다. 그 향기는 뿌연 안개 같지만 가까이가면 갈수록 더욱 뚜렷한 연분홍색 매개체(媒介體)로 내 시야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전라남도 광양시와 경상남도 하동군을 경계하는 섬진강변을 따라 이어지는 19번국도, 그 주변의 광양에는 봄의 전령사인 매화꽃이 한창이다. ‘전남 광양시 다압면 매화마을’은 길가에서 이어지는 매화의 물결이 섬진강변부터 마을 어귀, 들을 지나 산언저리까지 10만 여 평 모두가 순백의 매화꽃이다.
마을 입구에서 산 어귀로 올라가는 샛길을 지나 매화꽃을 따라 주섬주섬 올라가면 어느새 산중턱에 오르고 그곳에서 섬진강을 바라보니 마치 온 세상이 눈에 덮인 듯 순백색. 마음은 은은한 매화향기에 취하고 눈은 꽃에 취한다. 가지위에 곱게 피어있는 매화꽃을 바라보면 열두 폭 연분홍빛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여인네의 자태가 떠오르는데 그 작은 매화꽃 하나하나가 모여 이리도 장대한 경관을 연출했다는 것은 바로 우리네 여인의 힘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눈을 돌려 매화마을을 유명하게 만든 또 하나의 명소, ‘청매실 농원’을 찾아 간다. 그런데 이건 또 웬일인가! 하얀 매화꽃 사이로 수 백 개의 장독이 가지런히 장대하게도 놓여있다. 농원에서 매실을 담아놓은 장독대인데 장독대와 매화꽃이 그리 잘 어울린다는 것도 예서 안 사실이지만 그 규모나 풍경은 이곳 매화마을을 대표하는 봄의 정경이 되고도 남겠다.
청매실농원 입구에서 맛 볼 수 있는 매실장아찌의 달콤한 유혹도 빠질 수 없는 재미이다. 눈앞에 보이는 정경도 정경이지마는 마을 곳곳 산자락까지 구석구석 누비며 매화꽃을 직접 눈앞에서 보고 즐기는 맛이 일품, 나무사이로 떨어지는 꽃잎들은 마치 하얀 눈을 연상시킨다. 그래서인지 가족 간의 좋은 산책코스도 되지만 연인들의 밀회장소로 더 으뜸인 것 같다.
매화꽃이 가장 먼저 피기 때문에 전국 꽃 축제 중 가장 먼저 열리는 축제가 ‘광양매화축제’다. 3월 중순 즈음에 열리는데 올해는 조금 늦게 시작하여 지금이 한창이다. 매화제와 더불어 매화솟대세우기와 길 놀음 행사로 매화 판화 찍기, 매화 부채 그리기, 매화 압화 찍기 등이 열린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 시기에는 꽃보다 사람과 자동차가 더 많을 수 있다는 것을 고려하여 관광객이 많은 축제주기를 피해 한 주 전후로 가기를 권한다.
<
아직도 봄기운이 완연하려면 기다려야 할 것 같은 4월이라지만 매화는 벌써 고운 자태의 절개를 접고 벚꽃에게 자리를 내어주게 될 것이다. 이 매화의 절개가 화려한 영상(影像)의 시기를 다할 때 매화마을건너 하동변(邊) 섬진강가에는 봄 향기가 가득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