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를 가진 아이와 생활을 하면서 가장 많이 부딪치는 일이 무엇일까. 치료를 위해 다니다 보니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이 있을 수 있을 테고, 학교에 대한 걱정들이 줄을 이을 테고, 앞날에 대한 걱정이 태산으로 다가 올 것이다.

문제는 이런 것들을 다 알고 있으면서 스스로 그것들에 대처해 나가는 것을 꺼린다는 것이다. 아이를 위해 할 수 있는 것들을 다 하고 있지만 정작 아이를 위해서 하는 일들이 과연 아이만을 위한 것들일까.

장애가 있다고 해서 아이가 생각이 없다거나, 판단을 못한다거나, 아무런 능력도 갖추지 못한 것으로 여기는 것일까. 아니면 조금만 애쓰면 아이가 나아질 수 있다는 어쩌면 무모한 믿음이 작용을 하는 것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정상적인 아이로 만들어 내기 위해 모든 것을 쏟아 붇는 것일까. 장애를 인정한다는 말을 하면서 자신의 아이에게 들이는 열과 성은 무엇을 위한 것인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면 좋겠다.

사람마다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은 분명 다르다. 장애를 바라보는 관점 역시 그러하다. 문제는 그 관점이 고정점이냐 아니면 다변화에 있느냐 라고 할 수 있겠다.

아이는 분명 다른 아이들과 비교해서 많이 차이가 난다. 그 차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면 지금처럼 24시간이 모자라게 생활하지는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치료라는 것을 반대하거나, 아니면 그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우선은 기준을 마련하고 그 기준에 의해 아이와 생활하는 방법의 필요성을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이다.

이미 장애는 가진 것이고, 그것이 생활을 불편하게 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그것으로 인해 생활의 모든 것이 무너지거나, 부모의 생활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고 보는 것이다.

아무리 능력이 뛰어난 사람에게 치료를 받아도 정상인으로 살아갈 수 없는 것이 현실이고, 그 현실 속에서 어떤 것을 아이에게 줄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권리라는 것과 인권이라는 것, 그리고 의무라는 것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장애인에게는 권리와 인권은 없다.

복지의 사각지대에서 생활하면서 모든 기본권이 존재하지 않는 지금의 환경이나 상태가 그대로 유지된다면 아이가 자라 성인이 되고나도 결국 환경은 한 치도 나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교육받을 권리를 보장하라고 시위를 하고, 농성을 하고, 툭하면 굶고, 길바닥에서 잠을 자는 이유는 권리를 되찾자는 것이다. 하나의 권리를 찾았을 때 또 다른 권리를 찾아오는 것은 수월해 진다. 그것이 옳다고 여긴다면 행사를 해야 한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위한 교육환경은 열악하기 짝이 없다. 그런 속에서 아이를 위해 학교에, 교사에게 자신의 생각을 말하지 못하고 물러난다면 권리는 다시 서랍 속으로 들어가 먼지만 쌓이게 된다. 부모의 의식이 변해야 한다는 주장은 그래서 계속되는 것이다. 장애아의 부모이면서 장애에 대해서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오직 내 아이만을 위해 작은 것에 연연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것이 과연 옳은가 하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7년 그리고 5년. 하나의 법을 만들기 위해 들어간 시간이다. 왜 법을 만들려 했으며 그 법이 우리 일상에 어떤 변화를 줄 것인지 생각을 해 볼 필요가 있다. 하나는 차별금지법이고, 다른 하나는 교육지원법이다.

차별에 해당하는 행위를 할 경우에는 법으로 강제를 당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 졌고, 교육에서 소외되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교육지원법을 만들었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법들이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아무리 좋고, 훌륭한 법을 만들었어도 그것을 지키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거나, 제대로 시행이 되는지 감시를 하지 않을 경우 먼지만 쌓여갈 것이다.

두 법 모두 권리를 지켜내자는 것이 주요한 내용이라 할 수 있는데 개개인이 그 법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권리를 행사 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라 하겠다.

학교에서 벌어지는 차별과 소외되는 일들을 찾아 당당하게 시정을 요구하고 잘잘못을 따져 물을 수 있는지가 문제라 할 수 있는데 이는 개개인들이 해 나가야 할 일이지 단체나 집단으로 해결을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러하다.

권리는 스스로 나서서 행사를 하려 할 때 그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앉아서 입만 벌리고 있다고 제 발로 찾아와 안기는 것이 아니다. 부모의 의식이 변해야 한다고 강짜를 놓는 이유가 그것이다. 당장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 두렵고, 힘들다고 눈 감고 넘어간다면 아이의 권리는 영영 되찾을 수 없는 일이다.

법을 만들기 위해 공들인 시간들을 생각하고, 눈물과 한숨으로 지낸 날들을 생각한다면 ‘이제 다 끝났다’고 물러나 앉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지금부터가 시작이고 이제부터가 진짜 투쟁이 시작되는 것이다. 마음을 다잡고, 눈 부릅뜨고서 가슴을 펴고, 고개 치켜들고서 저들에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필요해서 만들었고, 만들었으면 제대로 지켜내라고 말이다.

내 아이를 위한 삶이 아닌 우리 아이를 위한 삶을 살아가자고 매 집회마다 외치던 구호들을 다시 정리해 우렁찬 소리로 외쳐야 할 때라는 생각이다.

1963년 서울 생. 지적장애와 간질의 복합장애 1급의 아이 부모. 11살이면서 2살의 정신세계를 가진 녀석과 토닥거리며 살고 있고, 현재 함께 가는 서울장애인부모회에 몸담고 있습니다. 장애라는 것에 대해서 아직도 많이 모르고 있습니다. 장애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지내온 것이 무지로 연결된 상태입니다. 개인적으로 장애라는 것이 일반의 사람들과 다를 것이 없다고 여기고 있었으며 그런 생각은 아이가 자라 학교에 갈 즈음에 환상이란 것을 알게 돼 지금은 배우며 지내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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