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잡’하는 정신장애인, 행복할까?”라는 칼럼이 에이블뉴스에 게재된 날, 기쁜 연락이 들어왔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 보조공학센터에서 내 칼럼이 마음에 든다며 인터뷰하고 싶다고 하셨다. 박중서 센터장님은 정신장애인에게 보조공학이 적용될 수 있는 여지가 있는지 당사자 의견을 청취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해오셨다. 반가운 마음에 수락했다.

연락을 받기 전에는 정신장애인에게 과연 보조공학이 적용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었다. 정신과 의사 한 분도 “정신장애인은 보조기구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 신체장애인에게 휠체어가 필요한 것처럼 정신장애인에게는 사람이 필요하다.”라고 말씀하셨다.

정신장애는 뇌에서 일어나는 장애이며, 호르몬 수치나 뇌 영상 등 객관적인 진단 기준이 없다. 따라서 정신장애 정도를 객관적으로 판단하기에는 한계가 있어 설문지와 임상 면담으로 진단하고 약을 처방하고 있다.

반면 신체장애나 감각장애의 경우는 다양한 보조공학기기를 사용할 수 있다. 보조공학센터의 다양한 기기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 둘러보았다. 휠체어를 실을 수 있는 자동차부터, 시선이 향한 곳을 음성으로 읽어주는 안경, 말소리를 문자로 변환해주는 안경, 높이를 편리하게 조절할 수 있는 테이블까지 참으로 다양했다. 이는 장애 정도를 어느 정도는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으며, 장애 매커니즘에 보조공학기기가 직접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센터에 정신장애인을 위한 기기는 없었다. 보완대체의사소통 기기나 위치감지기 정도는 있었지만 발달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센터장님도 정신장애인용 보조공학기기는 한 대도 없다고 말씀하실 정도였다.

그렇다면 정신장애인에게 보조공학이 적용될 수 있을까? 환청을 듣고 환시를 보고 우울하고 주의력이 떨어지고 긴 글을 잘 읽지 못하고 고립되는 이들을 어떻게 보조할 수 있을까?

정신장애 콘텐츠를 제작하기 위해 알아보던 중 ‘디지털 치료제’에 대해 알게 되었다. 이것은 기존의 먹는 약과 주사제와 마찬가지로 임상시험 절차를 거쳐서 개발된다. 주로 스마트폰 앱 형태로 제작되며, 정신장애와 만성질환 영역에서 점차 사용이 늘고 있다. 특히 최초로 승인된 디지털 치료제는 약물 의존증 당사자를 대상으로 개발되었다고 한다.

이 개념을 알게 되니 전에 사용했던 서비스가 떠올랐다. 국립정신건강센터에서 배포한 ‘마성의 토닥토닥’이라는 앱이 그것이다. 디지털 치료제로 승인받은 것은 아니겠으나, 디지털 치료제와 비슷하게 작동한다.

이 앱은 정신과와 심리치료센터 등지에서 널리 시행되고 있는 인지행동치료를 앱으로 옮긴 것이다. 인지행동치료는 당사자의 ‘역기능적 사고’와 인지를 알아차리고 수정하여 정서 등의 증상을 개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제시된 시나리오를 보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문제를 풀면, 자신의 답과 타인의 답을 비교해서 볼 수 있고, 조언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매일의 기분과 수면을 기록할 수 있다. 국가정신건강정보포털에 따르면 ‘마성의 토닥토닥’은 역기능적 사고 및 우울과 불안을 감소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정신장애인은 꾸준한 약물 복용이 중요하다. 시중에는 약물 복용을 도와주는 앱이 많이 나와 있다. 약물 복용 시간이 되었음을 알려주고, 약을 다시 구입할 시기를 알려주며, 스마트워치와 연동하여 더욱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또한 한 종류의 약만이 가능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종류의 약을 지원하고 있어 중복장애인도 사용하기 좋다.

양극성 장애나 우울장애 당사자는 ‘mood tracker(기분 추적)’ 앱을 사용할 수 있다. 이것도 많은 종류가 있다. 어떤 정신과에서는 환자에게 앱을 설치하도록 한 다음 일상생활에서 기록하게 하고 다음 진료에서 확인한다고 한다. 의사가 매일 연락할 수 없기 때문에 의료진이 당사자의 기분 변화를 살펴볼 수 있도록 돕는다.

그 외에 마음 챙기기나 심호흡 앱, 수면을 도와주는 자연의 소리 앱도 정신장애인이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스마트워치로 수면시간을 자동으로 측정하고, 심박수를 모니터링하여 공황이 왔음을 알 수 있다. 주의력이 저하된 당사자는 뽀모도로 타이머라 해서 25분 작업하고 5분 쉴 수 있도록 시간을 잴 수도 있다.

장애인용 보조공학기기가 거창한 기계와 고급 기술에만 해당한다고 생각하면 이런 아이디어는 나올 수 없을 것이다. 그러한 고정관념을 깨면 정신장애인의 삶을 보조하고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많다.

더불어 보완대체의사소통이나 쉬운 정보(easy read)와 같은 발달장애인 보조 도구도 정신장애 영역에서 적용될 수 있다. 중증 정신장애인 당사자는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거나 문장을 이해하기 힘든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타 유형의 장애인을 위한 도구가 정신장애인에게 해당되지 않는다는 편견 때문에 정신장애인은 이러한 보조에 접근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정신장애는 다른 유형의 장애와 상당히 다르다는 편견이 보조공학기기, 복지관 이용 등 정신장애인 접근성을 떨어트리고 있다. ‘이 유형 아니면 다른 것’이라는 이분법적인 생각이 정신장애인의 삶을 혁신시킬 아이디어를 저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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