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중학교 때 일이다. 한 점자도서관에 참고서를 맡겼다. 국어 시험을 위해 참고서 녹음을 요청했다. 두 달 전에 미리 맡겼다. 녹음은 자원봉사자가 해야 했다.

문제는 늘 녹음하는 게 아니라서 늦어진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3개월이 지나 녹음을 해놨다는 연락이 왔다. 이미 시험도 끝났고, 딱히 찾아가려니 찾아가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그래도 찾아가야 한다 하기에 맥이 빠진 발걸음으로 도서관에 갔다. 테이프를 가지고 와 듣지도 않고 버린 일이 기억난다.

지금은 과거와 좀 다르다고 할 순 있겠으나, 별다른 차이가 없다. 2년 전, KBS한국어능력시험을 보기 위해 국립장애인도서관 대체자료 담당실에 맡겼다. 한 달 후에 시험을 봐야 했지만, 도저히 시험 기간에는 자료를 볼 수 없었다. 시험이 한참 끝난 8월 말쯤에야 책이 완성됐다. 이러다 보니 시각장애인은 시험 준비가 매우 곤란하다.

공무원 시험, 중고등학생 시험, 대학생들의 교재를 원활하게 대체자료로 이용할 수 있는 방안이 아직도 마땅하지 않은 것이다. 짧게는 4개월, 길면 7개월이 걸린다. 전문가가 제작한다지만,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이는 시각장애인이면 누구나 느끼고 관계 기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면 모두 공감하고 있다. 하지만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대책은 없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는 시각장애인의 대체자료 수요와 공급 예측을 정확히 해 시각장애인이 충분한 시간에 교재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도대체 언제까지 예산 타령만 할 것인가. 출판사에 파일을 제공해달라곤 하지만, 출판사 역시 시큰둥한 경우가 많다. 이는 출판사에게도 충분한 보상을 하고 인센티브를 줌으로써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전반적인 사회 인식의 공론화와 충분한 예산 확보로 이를 개선하는 것이 정답이다. 더 이상 시각장애인들의 꿈을 이루기 위한 도전에 대체자료가 걸림돌이 되는 후진국형 형태는 조속히 없어졌으면 한다. 언제든지 시각장애인이 마음 놓고 공부할 수 있는 그날이 빨리 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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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대 칼럼니스트 ‘너희가 장애인을 알아’, ‘기억의 저편’, ‘안개 속의 꿈’, ‘보이지 않는 이야기’를 출간하고 우리 사회에서 시각장애인이 소외되고 있는 현실을 사실적으로 담았습니다. 시각장애인의 정보 접근의 어려움을 사실적으로 다루고 불편함이 불편함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해결방안을 제시하여 개선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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