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CRPD NGO연대 간사단체인 한국장애인연맹(한국DPI, 회장 이영석)이 지난 6월 15일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 이룸홀(지하1층)에서 ‘유엔장애인권리협약 민간보고서 심의 대비를 위한 공청회’를 개최한 모습. ⓒ이원무

이미 언론을 통해 전해졌지만, 8년 전 권고 이후, 다시 8년이 지나 유엔 장애인권리협약(UN CRPD) 제2·3차 병합보고서 국가심의가 2주 전 양일간 스위스 제네바 유엔 회의장에서 개최됐다.

원래 3년 전 장애계 연대 차원에서 태국 출신 몬티안 분탄 위원(지금은 전 위원)을 모시고 공청회를 개최한 후, 2년 전의 이 시점에 국가보고서 심의에 연대체들이 참석하려 했지만, 코로나19로 인해 대한민국 정부심의 일정이 지연됐다. 이후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에선 내부 논의 끝에 우리나라 심의를 올해 이 시점에 개최하기로 확정했다.

이에 따라, 장애계. 시민사회 연대체들도 다시 모이며, 3년 동안의 상황이 담긴 통계, 사례 등의 수정사항을 반영해 민간보고서 최종안을 만드느라 분주했다. 필자도 이 작업과 관련해 수정된 정보 등을 연대체에 전달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연대체에선 민간보고서 최종안을 완성해 유엔장애인권리위원을 모시고 공청회, 간담회를 개최했다.

이후 약간의 수정과정을 거쳐 연대체는 영문 민간보고서를 유엔에 제출했다, 필자가 소속된 자조모임에서도 자폐인, 신경다양인의 현실이 담긴 자폐 대안 보고서를 유엔에 7월 말까지 제출하기 위해 동료들과 같이 바쁘게 작업했다. 이외에도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법조계, 한국장애포럼 등이 대안보고서를 유엔에 제출했다.

보고서 작업 종료 후, 필자 소속 자조모임을 포함해 장애인단체, 시민사회, 법조계 등에서 모이며, 대한민국 정부의 권리협약 심의 대응을 위해 정부심의 2일 전 개최되는 비공개브리핑을 위한 자료를 준비했고 이에 관련된 리허설을 진행했다. 제네바에 도착해선 IDA(국제장애연맹)의 도움을 받아 리허설을 준비한 후 비공개브리핑을 했다.

비공개브리핑을 마무리한 후, 드디어 정부심의 날짜가 왔다. 그런데 정부는 3년간의 상황을 반영한 수정된 최종국가보고서를 유엔 CRPD 사무국에 심의 2일 전에 제출했다. 이와 관련해 연대체 위원장이 제네바로 가기 전 미리 국가보고서를 공유받을 수 있는지 보건복지부에 문의했다고 하는데, 복지부는 이를 검토하겠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한다.

여기서 조금은 의심이 들었다. 공직사회에서 검토한다는 말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대개 하지 않겠다는 말로 암묵적으로 통용되는 터라, CRPD 사무국에 기습제출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긴 했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수정된 국가보고서를 장애계와의 공유, 상의 없이 제출하는 행위를 벌인 것이다.

장애인권리협약 정부심의 2일 전 장애인당사자, 장애인단체, 시민단체 등을 상대로 이뤄지는 비공개브리핑을 준비하는 IDA와 심의대응 연대 모습. ⓒ이원무

사실 이는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제35조 4항을 정면 위반한 것이나 다를 바 없다. 장애계와의 공유, 상의 없이 제출한 것은 과정이 공개적이고 투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보고서를 미리 다 써놓았지만. 민간단체의 움직임 보다가 민간이 제네바 가니까, 이때다 싶어 기습제출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살 수 있기도 하다.

당사국은 위원회에 제출할 보고서를 준비하는 경우, 공개적이고 투명한 과정에 따라 이를 준비하고 이 협약의 제4조 제3항의 규정을 적절히 고려하도록 요청된다.(장애인권리협약 제35조 4항)

또한, 제4조 3항이란 장애인 관련 문제 및 그 밖의 의사결정과정에서 장애인단체, 시민단체뿐만 아니라 장애인 당사자와 긴밀히 협의하고 이들을 적극적으로 참가시키도록 당사국에 의무를 부여하고 있는 조항인데, 이는 33조 3항과도 연결된다, 하지만, 이것마저 정부는 무시하는 거다. 그러니 장애인 정책이 제공자 중심의 정책일 수밖에.

그래서 심의보고관이었던 몽골 출신의 게렐 위원에게 가서 2일 전 기습제출한 보고서는 정식보고서로 인정하지 말아 달라고 했다. 게렐 위원은 일단 알았다고 했는데, 이후 국가심의에서 몽골 위원은 수정보고서를 제출해 감사하다고 했지만, 이 보고서를 읽는데 시간이 없어서 3년 전 자료로 질문할 수도 있다고 발언했다.

정말 장애인권리위원회 위원들뿐만 아니라, 260만 대한민국 장애인 당사자들에 대한 존중이 전혀 없는 거다. 자신들한테 유리하게 하려고 그랬다지만, 그렇다 해도 이런 식으로까지 무례하게 장애인을 대하는 건 아니다. 국가보고서 등의 사안은 미리 장애인단체, 장애인 당사자와 공유하고 협의하는 정도의 상식은 보였으면 한다.

국가심의 시 몽골 위원의 기조발언 전에 대한민국 정부대표단 수석대표인 보건복지부 염민섭 장애인정책국장이 8년 동안의 대한민국 정부의 성과에 대해 발표했다, 내용을 보면, 장애인 예산은 8년간 3.2배 증가, 장애인 맞춤형 지원, 탈시설 로드맵 수립, 무인정보단말기 관련 장차법 개정, 발달장애인 생애주기별 맞춤형 종합대책 등이다.

그런데 이는 대한민국 정부의 성과이기보다는 장애계가 요구해서 이뤄낸 것이었고, 이는 장애계도 지적한 것이다, 또한, 장애인 예산이 증가했어도 OECD 수준과 비교했을 땐 상당히 낮고, 장애인의 삶을 바꿀 정도의 체감 효과는 거의 없다는 거다.

장애인권리협약 2·3차 병합국가보고서 심의 시작하면서 정부대표단으로 8년 동안의 자칭 장애인 권리증진을 위한 성과를 발표하는 보건복지부 염민섭 장애인정책국장 모습. ⓒUNwebtv 캡처

또한, 맞춤형 지원이 되려면 장애인이 처한 환경과 욕구에 따른 지원이 되어야 하는데, 인권보장의 일환이 되는 서비스 등이 욕구보단 가구의 소득수준과 구 장애등급에 기반한 의료적 모델에 따라 수급자격이 주어지기에 맞춤형 지원이라고 보기 어렵다. 맞춤형 지원이 되려면 서비스 등이 장애의 인권적 모델에 따른 제도여야 하지 않을까?

탈시설 로드맵을 수립했다 했는데, 이 로드맵대로 하면, 시설 거주인 대부분이 40년을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보내다 삶을 마무리하기에 탈시설엔 너무도 느린 로드맵이고, 탈시설의 결과는 공동형 주거지원이 높은 결과를 차지한다는 거다. 공동형 주거지원엔 공동생활가정(그룹홈) 등이 포함한다.

하지만 공동생활가정이어도, 시설의 특성이 나타나면 탈시설이 아닌 시설이라고 권리협약 일반논평에서 이미 언급하고 있고, 장애인권리위원회에선 공동생활가정(그룹홈)을 아예 시설로 보고 있다. 지역사회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기 위한 지원도 마련하지 않기에, 자칫 잘못하면 미인가 시설 양성화의 우려도 안고 있기도 하다.

발달장애인 생애주기별 맞춤형 종합대책을 마련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중의 하나인 발달장애인 평생케어 종합대책은 지적·자폐성 장애인을 오로지 돌봄(케어)의 대상인 권리의 객체로 바라보며 주체가 아닌 시각이다 보니, 정보접근권, 결혼할 권리, 조력의사결정 등 장애인이 권리의 주체이기 위한 지원정책은 찾아보기 힘들다.

또한, 무인정보단말기인 키오스크의 경우 이미 민간 등 일상생활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어, 전면적용이 필요한 실정인데, 접근성이 보장된 키오스크를 단계별 적용하는 식으로, 민간에는 2026년까지 의무적용 완료하겠다는 게 정부 입장이다. 이를 보면 장애인들이 민간영역에서 키오스크를 사용 시 4년 동안은 상당한 불편이 예상되는 바다.

물론 생명보험 가입유보를 2021년에 철회한 것은 나름대로 고무적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정부가 이뤄놨다는 성과는 숫자놀음에 지나지 않거나 실상을 감추거나, 장애계 요구에 따라 마련한 게 많기에, 수석대표단 발표를 듣는 내내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수석대표단의 발표를 들은 후 게렐 위원의 모두발언을 시작으로 장애인권리위원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지적·자폐성·정신 장애인의 위치추적기와 실종 등에 어떻게 대처하는가? CRPD에 부합하는 장애 정의, 장애등급제 등에 대한 조치는 어떤가? 규모, 건설 시기와 관련 없이 건물 접근성을 보장하는 방안은 무엇인지? 여성장애인의 교육수준, 고용률 등이 낮은 등의 차별을 시정하기 위한 조치는 무엇인지 등등....

성과 발표 후 장애인권리위원회 대한민국 보고서 심의보고관인 몽골 출신의 게렐 위원이 1~10조 사항을 정부에 질의하는 모습. ⓒ이원무

그런데 보건복지부 대답을 들으며, 간접적 시인도 했지만, 진실 숨기기나 거짓말을 척척 늘어놓는 것은 역시나였다. 정부는 장애등급제를 폐지하고, 서비스 지원 종합조사 시 사회적 모델을 반영하여 기능적 제한, 사회활동 등을 포함하는 항목으로 조사되었고, 장애인의 특성을 고려하는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했다고 답변했다.

하지만, 기능적 제한 관련 조사 문항, 점수 비중이 기존 인정조사보다 비중이 커져, 장애의 의료적 모델에 기반한 건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아, 장애인의 욕구와 환경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고 보기 어렵다. 또한, 지적·자폐성 장애의 특성 등도 충분히 반영되지 않아, 활동지원서비스 재판정 시 탈락할 지적·자폐성 장애인이 많아질 우려가 있다.

CRPD에 부합되는 장애 정의 관련 질문에서 정부는 개념이 의료적으로 되어 있어 개념을 확대하고 있으며, 장애인복지법이 개정안이 현재 상정되어 논의 중이라 했다. 개념이 CRPD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걸 간접적으로 시인했고, 작년에 뚜렛증후군 등 12개 질환을 장애로 인정했지만 이마저도 순전 의료적 기준이라 갈 길이 아직도 멀다.

지적·자폐성·정신 장애인의 위치추적기와 실종 대처 관련 질문에선, 위치추적기가 장애아동에게만 발부한단 취지의 답변을 했는데, 실제 경기도 발달장애인 지원조례에선 발달장애 예방 및 발달장애인 실종방지ㆍ학대금지 등 권익옹호에 관한 사항이란 문구를 통해 실종방지를 위한 장치를 지원할 조례 근거를 마련했다. 따라서 정부의 답변은 사실이 아니다.

또한, 지적·자폐성·정신 장애인 당사자의 동의 없이 위치추적장치를 발부하도록 되어 있어, 이는 권리협약에서 천명하는 사생활, 자유권, 이동권에 정면으로 위반하는 행위임은 위원들이 여러 차례 질의에서 지적했던 바다.

규모, 건설 시기와 관련 없이 건물 접근성을 보장하는 방안에 대해선 98년 장애인등편의법의 제정과 시행 후 5년마다 장애인 편의시설 실태조사를 했고, 조사결과 설치율은 매 조사마다 향상되고 있으며 최근 2018년에는 80,2%의 설치율을 보이고 있고, 편의점 등 소규모 근린생활시설에 대한 편의시설 의무설치 기준을 강화했다는 답변을 했다.

하지만 2018년 장애인 편의시설 실태조사에서의 설치율 80.2%란 그 당시 전체 건물 수 7,192,912개 중 편의시설 의무설치 대상 건물 수인 199,754개의 건물(약 2,78%)에 대한 편의시설 설치 실태를 조사한 결과에 불과하다. 다시 말하면 소규모 건물에 편의시설 설치를 안 해도 된다는 면죄부를 주는 실태조사라 차별을 용인하는 실태조사다. 엄밀히 말하면 장애인 편의시설 전수조사가 아니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등 8개 단체로 이뤄진 ‘장애인의 생활편의시설 이용 및 접근권 확보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생활편의시설 공대위)’가 얼마 전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대한민국을 상대로 한 항소 계획과 장애인등편의법 개정 중단을 압박하는 모습. ⓒ에이블뉴스

또한, 소규모 근린생활시설 관련 편의시설 의무설치 기준을 바닥면적 300㎡에서 50㎡로 강화했다고 말하면서 적용 시기는 2022년 5월 2일부터라고 답변했는데, 아직도 건축시기, 바닥면적에 따라 편의시설 설치의무가 부과돼 장애인에겐 차별적이다. 실제로 50㎡ 기준을 적용해도 장애인이 접근 가능한 편의점 비율은 약 20%밖에 되지 않는다.

정부는 마지막에 소규모 근린생활시설의 의무설치 면적기준 제한 폐지를 검토한다 했지만 소상공인의 부담을 완화할 정부 보조금 지원 등의 구체적 방안은 제시하지 않았다. 검토란 아까도 얘기했지만 공직사회에선 안 한다는 말로 통용되며, 여기에 지적·자폐성·정신 장애인의 편의시설에 대한 구체적 내용 및 설치 기준까지 없는 맹점까지 있다. 정부가 장애인의 건물·시설 접근권을 보장할 의지가 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여성장애인의 교육, 고용과 관련된 차별 시정조치에 대해선 여성장애인 교육지원사업으로 역량강화를 통한 사회참여 기회를 확대하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한글 교육 등 단순 기초교육에 머물게 되어, 여성장애인의 의식화, 사회화로 연결되지 못하는 등 장애인 안에서도 성인지 관점이 반영되지 못해 역량강화로 이어지지 않는다.

결국, 이는 여성장애인의 질 낮은 일자리와 고용률이 낮게 되는 현상까지 부추기게 된다. 또한, 정부는 출산비용 지원 답변까지 했는데, 출산비용은 장애 여부에 상관없이 100만 원 지원이다. 얼핏 생각해도 장애로 인한 추가 의료비용이 들기 마련인데, 이 비용은 출산비용 등에 포함되지 않은 등 여성장애인의 고충을 고려하지 않았다.

이외에도, 장애인차별시정 명령권에 관련해선 사례 조사 및 회의 운영업무를 담당하는 전담직원을 두고 있다고 했는데, 법무부 안에 인권국이 있기에 전담 직원이 있을련지 모른다. 하지만 장애인 인권과 관련해선 전담부서가 없기에 전담인력이 없다고 하는 게 맞다. 그리고. 장애차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법무부는 장애차별시정에 있어선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장애아동 학대에 있어선 학대조사 사례관리 시 지역 장애인 학대 대응기관과 아동학대 대응기관 간 협조체계를 구축하여 대응 전문성을 강화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하지만 아동학대 대응기관은 장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지역 장애인 학대 대응기관엔 아동에 관한 이해 면에서 딸려, 서로 간의 원활한 협조체계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외에도 여러 답변이 있었지만, 진실 숨기는 거짓 답변은 계속 이어졌다. 더군다나 답변을 느리게 하면서 장애인권리위원들과 민간단체의 기를 빼느라 애쓰는 구석이 엿보였다. 정부는 장애인에 대한 존중 없이 국가보고서를 이틀 전에 내는 무례함을 보이며, 장애인 인권침해 진실을 최대한 감추는 식으로 심의에 임했다. 무례·거짓말로 점철된 정부의 CRPD심의라 말하고 싶다.

진실 감추기로 일관하려는 정부의 심의 태도는 예상되긴 했지만, 2일 차에도 계속되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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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팝송 감상, 월드컵 등을 즐기고 건강정보에 관심이 많은 반백년 청년이자, 자폐성장애인 자조모임 estas 회원이다. 전 한국발달장애인가족연구소 정책연구팀 간사였으며,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정부심의 대응을 위해 민간대표단의 일원으로 2번 심의를 참관한 경험이 있다. 칼럼에서는 자폐인으로서의 일상을 공유하고, 장애인권리협약, 장차법과 관련해 지적장애인, 자폐성장애인과 그 가족이 처한 현실, 장애인의 건강권과 교육권, 접근권 등에 대한 생각을 솔직하게 나눌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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