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정말 그러네요. 다음부턴 이러저러해 보겠습니닷"

"나는 유리, 저놈의 능글거림이 참 좋아!"

"저도 유리 언니의 능청스러움은 쫓아가지 못하겠어요."

며칠 전, 나이와 장애여부를 따지지 않는 사람들이 모인 소모임 단톡방에서 오갔던 대화 중 일부분이다.

사람은 완벽하지 않기에 누구나 실수를 한다. 누군가는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피드백 받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실수를 부정하고 피드백 받기를 두려워한다. 실수를 부정했던 누군가가 바로 1년 전의 나였다.

그게 아무리 작은 실수라도 고개 숙이기 바빴다. 조언을 들으면 큰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종일 주눅 들어 있었다. 상대방이 불편해 할 정도로 '죄송하다, 미안하다, 다신 안 그러겠다.'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내면에는 '내가 실수하면 사람들이 모두 나를 떠나갈 거야, 무조건 잘못했다고 싹싹 빌어야지'라는 마음이 숨겨져 있었다. 나의 내면을 더 파고 들어가면 '난 실수 하나도 하지 않는 완벽한 사람이 되어야만 해' 라며 나를 신격화시키고 있었다. 한마디로 허세 가득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처신을 잘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작은 실수라도 하는 날엔 '쟤 장애 때문에 저래', '우리가 이해해야지', '어쩌겠어!'라는 소리를 들을 것 같았다.

지인에게 보낸 카카오톡 메시지에 답장이 없으면, 혹은 평소랑 다른 짧은 단답형 메시지를 받기라도 하는 날이면 나 혼자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역시 나는 그 말은 하면 안 되는 거였어, 거기다가 'ㅋㅋㅋ'는 왜 붙여가지고! 다른 일 제쳐두고 오매불망 답장만 기다린 지 1시간 정도 지났나?

"제가 실수를 한 것 같습니다. 제 말에 화나셨다면 죄송합니다."

"저 다른 일 하느라 읽기만 하고 답장 못 했어요... 답장이 없어서 유리 씨가 저더러 더치페이 하자는 말에 제가 기분 나빴을 거라 생각하나요?"

"네 그렇습니다."

"... 지난번에도 그러시고, 유리 씨가 자꾸 이러시면 저는 유리 씨를 편하게 대할 수가 없어요.

"죄송해요."

"아직도 저를 신뢰하지 못하고 계신 것 같아 서운하네요."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 들었다. 이분과는 4년 넘게 꾸준히 연락하며 지냈다. 애정하는 분이고 나이 차이가 좀 나지만 친하게 지내고픈 마음이 간절했다. 그럼에도 쉽게 다가가지지 못했던 원인을 찾았다. 1년이 지난 지금은 내가 먼저 함께 여행 가자는 말도 스스럼없이 꺼낼 만큼 조금은 편한 사이가 되었다.

과한 격식은 뒤로 하고 가벼운 농담하기를 망설이지 않게 되었다. 가벼운 농담 뒤에 답장이 없어도 '내가 해서는 안될 말을 했구나' 라며 되돌아 감기 하지 않는다. 이미 30년이 넘는 믿음으로 가득 차 있는 가족에게 실없는 소릴 했다가 답장이 없어도 그러려니 하는 것처럼...

지금은 주변 사람들로부터 '능구렁이'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사람들 대하는 일이 많이 편해졌다. 그렇게 미안해하지도 않아도 될 일에까지 고개를 푹 숙이지 않게 되었다. 실수투성이인 나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도 나를 아껴줄 사람들의 마음은 변함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요즘은 시간을 착각하는 실수를 자주한다. 약속시간이 오전 11시 30분이었는데 약속 장소가 집에서 20~30분 거리였다. 이때 다른 생각에 빠져 있었는지 10시에 나와 버렸다. 지하철 승강장에서 스마트폰을 보고 나서야 너무 빨리 나왔다는 걸 알아챘다. 1시간이나 일찍 약속 장소에 도착해 주변을 서성이고 있었다. 이날은 약속시간에 늦진 않아서 다행이었지만 다른 날에는 시간을 착각하는 바람에 생전 잘 하지도 않은 지각을 경험하기도 했다. 약속을 함께 했던 비장애인 지인에게 고민을 토로하며 물었다.

"저만 그러는 거예요? 제가 지적장애인이라서 이런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하는 건가요?"

"아뇨! 유리 씨만 그러는 거 아니에요. 저도 그래요. 아주 미치겠어요. ㅠㅠ"

지적장애인인 나만 시간을 착각하고 실수쟁이로 살아가는 게 아니었다. 비장애인이라고 완벽한 삶을 살아가지 않았다. 장애가 있건, 없건 사람이라면 누구나 크고 작은 실수를 하루에도 몇번씩 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굳이 드러내지 않아 눈치못챌 뿐이었다.

장애인인 나에게 자신의 부족한 점을 밝히기가 자존심 상 쉽지 않았을 텐데 거리낌 없이 말해줘서 반갑고 고마웠다. 덕분에 나도, 그들도 똑같은 사람이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닫게 된 날이었다.

관계가 깨질까봐 두려워 실수하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했다. 이와 더불어 부탁을 거절하지도 못했다. 쌓여 있는 일이 많아도 무조건 해보겠다고 답했다. 언젠가 지인이 부탁한 일을 하겠다고 했다가 너무 힘들어 도저히 못하겠다고 한 적이 있다. 내가 오랫동안 해왔던 일이고,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그 일이라고 하면 이제 진저리가 났다. 숨이 턱턱 막힐 정도였다. '그분과 연이 끊기면 어쩌지?'라는 생각에 힘들더라도 참고 강행해야 하나 하며 얼마나 애가 탔는지 모른다.

하지만 거절 한 번에 17년간 쌓아온 신뢰가 무너지진 않았다. 오히려 프로젝트 진행 전에 미리 말해 줘서 고맙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후 나는 지인들의 부탁을 무작정 응하지 않는다. 내가 끝까지 책임지고 할 수 있는 일인지 꼼꼼히 따져보고 나서야 결정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중하게 거절한다. 거절해도 괜찮다. 해보겠다고 해 놓고 나중에 책임을 못 지게 된다면 그게 더 큰일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받아야 한다는 생각 또한 나를 신격화시키는 일이다. 내가 아무리 잘해도 나를 떠나는 사람들이 있고 내가 아무리 나락으로 떨어지고 추한 모습을 보여도 나를 가족처럼 감싸주고 아껴주는 사람들도 분명 있다. 잘 보이려 애쓰지 않아도 되었다. 인생살이를 하다 보면 듣기 싫은 소리도 들어야 할 때가 온다. 나에게 입에 발린 말만 해 주길 원한다면 깊은 관계를 쌓아갈 수 없다.

요즘 들어 체력이 떨어져서 걱정이라는 나에게 운동 좀 하라는 지인의 잔소리가 달콤하기만 하다. 나의 숨겨진 이면까지는 아직 공개를 하지 않아서 이 정도의 선에서 그치셨다. 할 일을 저 구석으로 미루어 놓은 채 침대에 대자로 누워 유튜브 삼매경에 빠져 있다는 걸 아시면 엄마처럼 잔소리 폭탄 세례를 주실 지도 모른다.

“할 일은 해야지, 언제까지 미루고 있을 거야?”

나만 살기 바쁜 각박한 세상 속에서 가족이 아닌 이들에게 듣는 잔소리는 서로의 신뢰에서 형성된 귀하디 귀한 사랑이다. 10년, 20년, 30년 후에도 지금 나와 인연을 맺고 있는 지인들의 잔소리를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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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리 칼럼니스트 평범한 직장인이다. 어릴 때부터 글을 꾸준히 써왔다. 꼬꼬마시절에는 발달장애를 가진 ‘나’를 놀리고 괴롭히던 사람들을 증오하기 위해 글을 썼다. 지금은 그런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해 글을 쓴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발달장애 당사자로 살아가는 삶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걸 보여주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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