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인식개선 교육은 강의형, 토론형, 체험형, 참여형으로 구분한다. 강의를 하거나 토론을 하는 것은 장애인의 고정관념과 잘못된 인습을 지적하고, 다양성을 인정하고 상대를 존중하는 사회적 태도에 대해 논함으로서 장애인의 인식개선에 도움이 될 것이다. 체험형은 상대의 입장이 되어 그 눈높이에서 감수성을 길러 인식개선에 기여할 수 있다. 교육은 수단이나 방법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화를 가져오기 위한 목적으로 본다면 체험을 하는 것도 교육이다.

다만 일시적으로 장애를 체험하는 것이 충분히 경험하지 않은 상태에서 모두 다 알았다고 자만하게 만들거나, 장애는 힘든 것이라고만 여겨 장애인을 도움의 대상으로만 여기게 한다면 교육 효과는 오히려 역효과라고 할 수 있다. 체험 교육을 하기 전에 이런 역효과를 방지하기 위하여 사전 가이드를 제시하거나 신체적 장애를 체험하기보다 편의시설 부족 등 사회적 장애를 체험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장애예술인이 공연을 하는 것을 관람하는 것이 장애인 인식개선 교육이 될 수 있을까? 장애인이 그린 그림 전시회를 다녀오면 장애인 인식개선이 될까? 교육이 아닌 문화예술 활동의 감상이 작품을 감상한 것이지 장애인에 대해 느끼는 것이 아니므로 교육과는 거리가 먼 것이 아니냐는 질문을 하게 된다.

장애인 인식개선 방법에는 캠페인이나 인식개선 홍보광고가 있다. 그렇다면 캠페인에 참여하면 장애인 인식개선이 될까? 타인에게 장애인에 대한 올바른 태도를 가지게 하거나 장애인에 대한 응대에 대한 안내를 할 수도 있고, 장애인에 대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현실을 알게 하거나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하지만 교육을 받은 것이 아니라 사회 활동을 한 것이라고 선을 그을 수 있다.

넓은 의미에서 실천을 체험하는 것이고, 장애인의 편에 서는 것이며, 참여를 통해 얼마나 사회가 장애인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 수도 있고, 캠페인에 참여하기 위해 사전 학습을 하게 되거나 캠페인의 내용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어 장애인 인식개선에 효과를 볼 수 있으므로 장애인 인식개선 교육의 한 방법으로 보고 있다.

공연은 여러 가지가 있다. 먼저 장애인의날을 기념하여 ‘열린음악회’를 하는 것은 장애인 인식개선에 도움이 될까? 공연을 하는 취지가 장애인을 생각하며 한다는 것이나, 가수가 노래를 부르는 중간중간에 장애인에 대한 캠페인을 한다거나, 선곡을 통해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개선할 노래로 감동을 줄 수 있다. 현재 음악회를 보면 ‘거위의 꿈’처럼 장애인에게 용기를 내라고 위안을 하는 성격이 더 강하여 장애인 인식개선과 공연은 무관해 보이기도 하다.

문제는 공연 콘텐츠에 있다. 유명 가수가 많이 나와서 흥행을 할 수는 있으나, 선곡과 진행자의 시나리오가 장애인 인식개선을 위한 노력이 포함되어 있는가가 문제일 것이다. 그렇다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출연하여 협연을 하는 것은 장애인 인식개선에 도움이 될까? 평소에 보기 어려운 광경이기는 하다. 그리고 함께 어울려 통합을 이룬다는 모습은 분명 인식개선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미래의 모습일 것이다.

장애인 행사이기에 특별히 협연을 하는 것은 그 행사가 장애인 행사라는 인상을 주게 되고, 장애인이 주인공이라고 하더라도 장애인 예술가를 두드러지게 하기 위한 의도적인 행동으로 공연을 보는 관객들이 통합사회나 ‘더불어 함께’라는 그림을 그리기는 쉽지 않다.

장애인 예술가들의 무대를 만들어 발표 기회를 늘려주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리고 장애인도 예술적 잠재력을 가지고 있고, 장애인도 끼가 넘치며, 장애인도 표현을 통해 관객과 공감을 형성하여 감동을 줄 수 있다.

공연에 대한 비판적 시각에서 보면 장애에 가려 충분히 평가를 받지 못한 예술가들이 관객을 자주 만나는 것은 중요하지만, 출연한 장애인은 장애인 중에서 엘리트 예술인일 것이다.

역사적으로 장애인 위인전은 장애인도 훌륭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이나 장애인도 사회에 역할을 하고 있으며, 가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음을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엘리트 장애인을 중심으로 이야기하다 보면,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장애인의 삶에 대하여는 외면해 버리거나, 장애인이 훌륭하지 못한 것은 개인의 노력 부족 탓이라거나, 장애인 인식개선이 아니라 엘리트 장애인 개인의 선전 공연이 되어버릴 가능성이 있다.

특히 사회자가 엘리트가 되기 전에 고생한 것이나 슬픈 운명을 이야기하거나, 신체적 장애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대단하다는 식의 추켜세우기, 부모의 엄청난 노력과 고생이 이룬 결과물이라는 설명은 장애인 인식개선에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이쯤 되면 장애를 극복한 이야기가 되어 버린다. 얼마 전 미국으로 가서 시각장애인 펀드 매니저가 된 인물을 출연시킨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눈도 보이지 않는데 어찌 그 대단한 일을 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출연자는 마땅한 답을 찾지 못해 그냥 하다 보니 되더라고 말한다. 이쯤 되면 미국은 천국이란 인상과 개인의 특별함을 확대하여 보게 될 것이다.

장애를 가진 자신을 사랑한 이야기, 예술 활동에서 차별을 받은 이야기, 앞으로 장애인 예술가로서 활동을 위해 필요한 제도의 제안, 장애인이 직접 선곡한 이유를 설명하고 어떤 시각에서 감상을 하면 좋은지 안내해 주는 이야기 등은 장애인 인식개선에 도움이 되므로 참여형 교육이라고 할 수 있겠다. 성공담이나 기획자의 은공으로 무대가 제공되는 등은 매우 위험한 설명이다.

장애인도 동등하게 존중받을 존재라든가, 장애인이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차별이 장애인의 능력을 가로막고 있거나, 장애인의 문화 다양성이나, 장애인의 노래나 연주에 어떤 감정이 묻어 있는지를 생각하며 감상을 한다면 좋겠다.

당사자의 마음을 예술로 승화시켜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공연의 효과라고 말하면, 출연자는 왜 예술에 장애를 표현해야 하느냐, 장애인이기 전에 사람이 먼저이고 가수가 먼저인데, 장애라는 색안경으로 보게 하는 것이 맞는 것인가라고 반박할 것이다.

장애인 인식개선 강사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장애인 차별 문제에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무료 변론을 해 주고 있는 장애인법연구회 김예원 변호사는 장애인 공연은 역경 스토리가 되어서는 안 되며, 관객이 장애인의 공연을 보면서 평가하는 것은 대상화하는 것이라며, 매우 정교한 설계가 없으면 좋지 않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말한다. 공연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것 같은데, 장애인이 아닌 예술가로서 바라볼 수 있게 해야 한다고 하면서, 어떤 입장에서 바라보는가가 생각보다 큰 관점의 변화를 가져온다고 하였다.

외국에서는 복면가수 등과 같은 프로그램에서 노래를 들려주면서 장애인임을 사전에 모르게 한 다음, 감상을 즐긴 다음 장애인임을 보여주는 것이 그런 효과를 내고 있는 것일까? 장애인 인식개선 교육 차원에서 하는 공연이라면 출연자가 장애인임은 미리 알 것이다. 그리고 사회자가 단어 하나 잘못 선택해 버리면 공연 의도는 망치고 만다.

기획 의도를 사전에 밝히고, 캠페인의 성격이면 주제를 명확히 정하고, 시각장애인의 상상력, 발달장애인의 표현세계 등 어떤 점에서 관객과 공감을 통해 만나는지 안내가 필요하며, 출연자가 질문을 받아 대답을 하는 형식보다 주체가 되어 직접 메시지를 보내는 방법, 그리고 관객이 눈을 감아본다거나, 장애인이 예술세계에서는 관객과 동일 하게 자유를 느끼는지, 작품에서 독특한 것이 있는지, ‘오늘은 여러분이 장애인 공연을 보러 온 것이 아니다. 장애인이 여러분에게 음악을 선물하러 왔다’는 등의 표현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하여튼 리플릿이나 홍보자료, 그리고 사회자의 시나리오 등을 인권 감수성을 가진 이들과 출연자에게 사전 검토를 통하여 정화되고 인식개선 교육의 효과가 되도록 아주 섬세한 기획이 필요하다. 물론 나의 예술은 인식개선 교육과 무관한 것이고 인식개선 교육이란 타이틀로 오염시키지 말라고 한다면 타이틀부터 수정해야 할 것이다. 사회자도 장애인이면 더욱 좋겠다.

김예원 변호사는 어느 장애인 야외 행사에 갔다가 춤판이 벌어졌는데, 사회자가 ‘정상인보다 더 잘 춘다’는 말을 듣고 불쾌감을 느껴 마음껏 춤에 취해보자며 더욱 열심히 춤을 추었다고 고백한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가르지 말라며 자신도 무대 위의 사람처럼 같은 주인공이라 외치고 싶어서였다고 한다.(저서 ‘상처가 될 줄 몰랐다는 말’ 중에서)

장애인 인식개선 교육으로 대학 축제 공연을 하는 경우 단순히 장애인의 공연을 구경하면서 평가할 것이 아니라 함께 어울리며, 합창하고 춤을 춘다면 이것이 오히려 인식개선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공연이라면 ‘캐미(화학적 융합으로 ’우리‘가 되는 것)와 라포 형성의 경험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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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환 칼럼니스트
현재 사단법인 장애인인권센터 회장,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 고용안정지원본부장을 맡고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아·태 장애인, 장애인운동 현장의 소식을 전하고 특히, 정부 복지정책 등 장애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슈에 대해 가감 없는 평가와 생각을 내비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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