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에서 장애인의 무료이용은 노태우 대통령이 후보 시절 서울 노원구 마들공원에서의 장애인 유세에서 공약한 것이었다. 당시 장애인 인구가 가장 많은 지역이 노원구였고, 마들공원 주변에는 지체장애인복지관, 시각장애인복지관, 뇌성마비복지관 등이 자리하고 있었다.

장애인 유세에서 무엇인가 선물을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선택한 것이 지하철 무료이용이었다. 중증장애인의 이동권 보장은 중증장애인의 인구가 전체 장애인 인구 비율에서 높지 않았고, 모든 장애인이 이용하기 편리한 것이 지하철이었다.

버스를 선택했다면 중증장애인 다수는 이용이 불가능했고, 버스는 민영이라 무료이용을 적용하기에 무리가 있었다. 수당이나 주거복지 등 다른 공약을 할 경우 대상이 제한적이고 대다수가 이용할 수 있어 표를 얻기가 쉬운 것이 지하철 무료이용이라 생각해서였다.

당시 공약은 “내일부터 장애인 여러분 지하철 공짜입니다”였다. 장애인의 요구나 정책 입안의 검토 없이 공약으로 채택된 것이었고, 군사정권 말기였으므로 즉시 시행을 약속할 수 있었다.

교통복지카드를 이용하는 것은 한참 후의 일이고 장애인 복지카드를 창구에 제시하기만 하면 되므로 프로그램 개발 등의 절차도 필요하지 않았다. 이런 일이 있은 후 ‘복지는 왕심’이라는 말이 나왔다. 대중교통 무료이용은 선심성 공약에서 출발한 것이다.

미국에서 항공사가 항공권의 할인을 계획하자. 장애인들은 그런 비용으로 항공사의 장애인 일자리를 만들어 달라고 요구하였다. 장애인이라고 하여 시혜적 혜택을 받는 것이 싫었고, 장애인의 안정된 생활 보장과 사회참여를 요구한 것이다.

일본에서는 지하철 자동발매기에서 장애인 버튼을 누르면 복지카드 확인 절차 없이 50퍼센트 할인이 된다. 장애인들은 장애인들의 경제적 부담을 경감 하는 효과와 장애인도 돈을 내는 소비자라는 두 가지 측면을 고려한 것이다.

비록 할인은 받지만 무료로 이용하는 것이 아니므로 편의시설과 인적 서비스를 요구하기 위한 일종의 유료 소비자로서의 자격을 만든 것이고, 동등한 이용을 받을 권리를 당당하게 요구하는 환경을 조성한 것이다.

복지카드 확인은 자존감의 문제이고, 장애인의 시민의식과 윤리적 도덕성이 높은 시민이라는 의미에서 복지카드 확인은 하지 않지만, 적발 시 과징금을 감수해야 했다. 여기서 장애인의 자긍심이 느껴진다. 외국인까지 할인은 적용된다. 감면 전용 교통카드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서울시에서 대중교통 환승제가 실시되면서 장애인 지하철 요금 무료는 혜택 정도가 약화되었다. 장애인 LPG 차량 허용이 모든 국민에게 개방되면서 장애인 혜택이 하나 없어진 것 같은 것과 유사하다. 장애인에게 다른 대체 혜택이 주어져야 하지 않느냐는 생각이 든다. 장애인의 생활에 아무런 변화가 없는 데도 말이다.

환승은 목적지 가까이 가서 다른 버스나 지하철을 이용하는 것이므로 10킬로미터를 넘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그렇다면 환승으로 인한 추가 요금은 100원이다. 장애인이 지하철을 이용한 후 유료로 버스를 환승하면 결국 비장애인에 비해 100원의 할인 혜택만 주어지므로, 혜택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래서 버스의 무료이용을 요구하였다.

서울시는 버스가 민영 회사이므로 적용이 어렵다고 답했고, 장애인들은 준공영제인데 문제될 것이 없지 않느냐, 불과 100원만 추가하면 되니 예산의 추가 부담도 크지 않지 않느냐고 했지만 버스만 이용하는 장애인도 있으니 100원은 아니라며 거부했다.

버스 요금 무료화를 처음 시행한 것은 제주도다. 2017년 8월 26일부터 시행되었으며, 제주은행에서 체크카드나 신용카드를 신청하면서 교통복지카드로 신청하면 사진이 들어간 교통복지카드가 발급된다. 개인정보 이용 동의와 복지카드(장애인증)을 제시하여야 한다. 은행은 장애인 개인정보가 수집되며, 사진은 본인확인을 위해 필요한 것이다.

이 교통복지카드는 제주 거주민에게만 적용되며, 육지에 거주하는 여행객에게는 혜택이 주어지지 않는다. 같은 장애인인데도 제주도민에게만 혜택을 주므로 도민을 위한 예산이라는 주장과 관광지가 주민 우선 정책을 펴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주장이 있었다. 직행버스는 요금 무료가 아니다. 좋은 제도 같은데 제주 장애인 상당수가 버스 요금 무료라는 것을 모르고 있다.

서울시는 2023년 하반기부터 장애인 버스요금 무료화를 시행한다고 한다. 오세훈 시장의 공약이기도 하다. 경기도는 서울 수준을 따라가겠다고 했으니, 경기도와 인천도 적용할 것으로 보인다. 국토교통부와 대도시권 광역교통위원회에서는 지하철 버스 통합 정기권을 추진하고 있는데, 여기서 장애인 무료 이용이 검토될 것인지는 아직 미지수다. 하지만 버스 이용 무료화는 서서히 지방으로 확대될 것이다.

버스를 무료로 이용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편의시설이 문제라고 주장하는 장애인들이 있다. 버스의 요금 무료를 위해 사용되는 예산을 먼저 저상버스 도입이나 정류장 정비에 사용해야 하고, 장애인 버스 승하차 안내 시스템 운영 등에 사용되는 것이 먼저라는 것이다. 이용 환경이 마련되지 않으면 무료라고 하여도 그림의 떡이라고 주장한다.

버스 요금 무료화에는 버스 공영제로 인하여 손실분은 지자체 예산이 투입되어야 하는 것이고, 그런 예산을 지하철 엘리베이터 설치나 역내 내비게이션 설치 등 편의시설 확충에 사용된다면 대중교통 이용으로 인하여 장애인의 사회 활동이 활성화되지 않느냐고 말한다. 비싼 택시도 이용하는 마당에 대중교통 요금이 부담이 되어 외출을 꺼리는 형편은 아니지 않느냐고 말한다.

버스의 노인 무료 이용으로 예산이 많이 든다며 일정 금액만 지원하는 방식으로 축소되었다가, 70세 이상의 노인에서 65세부터 버스 무료 이용을 추진하고 있고 국가유공자도 무료인데, 장애인 무료가 시혜가 아니라 교통약자의 지원이라는 정책으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국가나 지자체가 국민에게 주는 수당도 시혜냐, 혜택이 주어지는 만큼 소득이 늘어나거나 지출이 줄어드니 절약된 비용은 다른 용도에 더 많이 사용할 수 있다. 외국에도 교통약자의 교통 수당이 존재한다. 장애인 이동권의 문제는 인정하면서도 이동권 시위의 요구에 무마용으로 항복하는 것 같은 협상이 싫어서 교통약자의 다른 정책을 들고 나온 것이 아니냐고 의심하기까지 한다.

직장생활이나 활발한 사회 활동을 하는 사람에게는 더 많은 혜택이 주어지지만, 집에만 있어야 하는 중증장애인에게는 아무런 혜택이 없지 않느냐고 불만을 토로하기도 하는데, 돈을 많이 사용하는 사람에게 혜택을 더 주는 것이 무슨 문제이냐, 수당과 같이 균등한 기본적 지원과 지출을 많이 해야 하는 사람에게 혜택을 더 주는 두 가지 정책이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고 반박한다.

버스 이용 무료화로 편의시설 확충이 방해를 받는 것이 아니라 무료가 되어 이용자가 늘어나면 장애인의 불편해소를 위해 저절로 편의시설 확충은 이루어지는 것이 기대된다고 주장한다.

장애인의 이동권을 주장해야 하므로 저상버스 도입을 주장하기는 하지만, 마을버스로 갈아탈 수 없는 이상, 버스 정류장과 목적지 또는 집과의 이동 수단이 없는데 버스를 어찌 이용할 수 있느냐, 현재 저상버스도 전동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에게는 고난의 길이라는 문제를 주장하면서 버스 요금 무료화는 결국 경증 장애인에게만 혜택을 주고 중증장애인은 나 몰라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비판한다. 이에 대해 버스 요금 무료화는 장애인 70퍼센트 이상이 이용하는 수단으로 중증장애인 이동지원과는 별개로 추진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서울시의 경우 기존 지하철 무임 교통카드로 버스를 이용할 수 있겠지만, 지방 장애인이 상경하여 버스를 무료로 이용하기에는 문제가 있다. 서울에서 통용되는 교통카드가 없기 때문이다. 버스 무임 티켓 발급기는 없다. 서울 시민에게 혜택을 주는 것이라는 원칙이 적용될지, 전산 처리상 어쩔 수 없이 서울시민만 이용할 수밖에 없는 것인지도 따져 봐야 한다.

지하철의 경우 중증장애인은 보호자까지 무료이용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버스는 보호자까지 무료이용이 가능할까? 장애인은 자신의 일을 보기 위해 무료로 타는데, 장애인을 위해 버스를 타는 보호자는 오히려 비용을 내어야 하니 불공정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보호자까지 혜택을 적용할 경우 운전기사는 모든 버스 승하차 지원을 보호자의 책임으로 미룰 수 있고, 승하차 지점이 같은 출근 시 지하철까지의 버스 승차 등에 이웃 무료 카풀이 등장하여 부정 이용이 성행할 것이라는 의심을 장애인에게 품어 예비범죄자 취급을 당하는 수모를 겪어야 할지도 모른다.

장애인 이동권을 주장하는 이들도 찬반론으로 나누어지고 있고, 버스 요금 무료화도 모두 장애인 이동권 운동의 노력 덕분으로 전체 장애인들이 혜택을 보는 것이라 실적으로 챙기자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장애 유형, 장애 정도, 광역 버스가 없는 농어촌 지역 장애인 등 장애인 사이의 복지 시책의 격차를 해소해야 하는 문제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고령화되고 농촌 지역이라 환경도 열약한데 버스 무료 이용도 할 수 없으니 격차는 벌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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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환 칼럼니스트
현재 사단법인 장애인인권센터 회장,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 고용안정지원본부장을 맡고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아·태 장애인, 장애인운동 현장의 소식을 전하고 특히, 정부 복지정책 등 장애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슈에 대해 가감 없는 평가와 생각을 내비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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