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에게 온 코로나19 관련 안내 문자. ⓒ정현석

“전화할 때부터 목소리가 안 좋아 보였는데, 누나 무슨 일 있어요?”

지하철역 인근 커피전문점에서 1년 반만에 이제는 편한 누나이자 전 직장 동료를 만났다. 얼굴을 마주 보고 앉았지만, 해를 넘겨 만났다는 것이 무색할 정도로 희미한 웃음만 지을 뿐, “ 무슨 일 있느냐”는 물음에도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았다.

“무슨 일 있는 게 맞네. 이런 시국에 불러낼 정도면 나름대로 심각한 일 같은데.” 그렇게 물었음에도 별 대답이 없던 그녀는 스피커에서 노래 한 곡이 다 끝날 때쯤에야 어렵게 입을 열었다.

“둘째언니 조카가 코로나 증상이 있어서 내일 PCR 검사를 받으러 간다는데, PCR 결과 나올때까지 내 집을 격리공간으로 내달라고 하네. 만약 양성이 나오면 그 기간 동안 쭉 머물러 있어야 할 것 같다고. 나한테 엄마 집으로 가라고 하더라. 둘째 언니는 피아노 학원을 하고 있으니 가뜩이나 요새 애들도 없는데, 조카 때문에 자기가 확진되면 그나마 있던 애들 다 떨어지고 학원 문 닫아야 한다고. 미안한데 당분간 엄마 집에 있으라고.”

“둘째 언니 조카 작년에 군 복무 끝났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러면 충분히 코로나 확진자 격리시설 알아보고 들어갈 수 있지 않나? 근데 왜 그런 곳을 두고 이모네 집에 있겠다는 건지 납득이 안 되네. 누나네 부모님은 뭐래요?”

오늘 만난 사람과 나는 전 직장에서 만났다. 학교도 아닌 사회에서, 그것도 풋풋한 사회 초년생이 아닌, 직장인의 희노애락을 충분히 겪은 나이에 첫인사를 나누었지만 장애인이라는 것을 알게 된 순간 말하지 않아도 알게 되는 공통점을 통해 어느 정도 가까워진 터였다.

그 후 독립을 희망하며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때로는 가족이나 지인들과도 나눌 수 없는 고민을 공유하며 각자의 위치에서 서로를 격려하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서로의 가정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고, 가족 구성원이 어떻게 되는지도 알게 되었던 것이다.

“본가에서도 네가 혼자 사니까 양보하라고 하시고, 큰언니는 애들이 있어서 안된다고 하고, 따로 돈을 내서 시설에 들어가는 것보다 가정집이 편하지 않겠느냐고 말야. 내가 반대한다고 말해도 소용이 없어. 좋은 게 좋은 거라고 하는데 그건 아니지. 내 집이고 내 공간인데 당사자의 허락 없이 부모의 의견만으로 결정하는 건 아닌 것 같아. 낼 모래면 금방 50인 나이에 내 의견도 무시당하니 내가 이상한 건지 부모님이 맞는 건지 모르겠다.”

자신의 집을 코로나 확진자인 조카를 위해 비워주게 되었다는 것 보다, 혼자 살지 않고 가정을 이루었다면 중고등학생인 자녀가 있을 나이에, 가족들에게 자신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못했다는 부분에 대해 당사자는 심한 자괴감을 느끼고 있었다. 급여가 적으니 부모님이 살아있을 때까지는 함께 있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고 자신만의 공간을 찾아 꾸려가던 공간이 한순간에 다른 사람의 공간이 되었으니 그럴만도 했다.

“조카가 돌아가고 나면 그 집 청소나 소독은 해 준다고 해요? 그냥 들어갈 수는 없잖아.”

침구류와 옷 등의 세탁은 물론이고 사용하는 공간에 대한 환기 및 소독까지 이루어져야 하는 청소 작업은 일반적인 그것보다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한다. 허리가 좋지 않아 긴 시간 동안 업무를 하지 못하는 몸 상태를 자신도 알고 있기에, 조카의 격리가 풀리고 나가기 전 청소를 부탁했으나 “코로나로 힘들었던 애를 더 힘들게 할 필요 없다”며 부모님이 대신 청소와 소독을 담당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고 했다. 그러나 70대 후반이라는 부모님이 청소를 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당사자의 마음은 편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집에 사고 있던 당사자는 공간만 빌려주고 끝이 나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건 이상한 것이 아니라 당연한 거지. 앞으로는 본인 뜻대로 하는 게 제일 나을 거 같아. 적어도 후회는 없잖아.”

그녀는 앞으로 자신이 이기적이라고 욕을 먹더라도 자신의 허락 없이 누군가가 집을 빌려 쓰는 것을 다시는 허락하지 않겠다고 했다. 자신이 편안함을 누려야 하는 공간을 누구에게도 내주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가 보였다. 그러나 그 과정은 쉽지 않을 것이다. 이미 한 번 경험이 있기 때문에 가족들부터라도 “그때는 되고 지금은 왜 안 되느냐”는 말을 들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힘든 시간이 지나면 그때부터는 오롯이 자신의 의지대로 적어도 본인의 공간은 지킬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 확신한다. 커다란 여행용 가방을 끌고 부모님 댁으로 가기 위해 밖으로 나가는 그녀의 발걸음이 무거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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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석 칼럼니스트 집에서만 살다가 43년 만에 독립된 공간을 얻었다. 새콤달콤한 이야기보다 자취방을 얻기 위한 과정에서 겪었던 갈등들과 그것들이 해결되는 과정이 주로 담으려 한다. 따지고 보면 자취를 결심하기 전까지 나는 두려웠고, 가족들은 걱정이었으며, 독립 후에도 그러한 걱정들은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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