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은 평등하지 않은 것이다. 평등은 기회가 균등해야 하고, 조건이 형평성이 있어야 하며, 결과가 평등하게 나타나는 것이 기대되어야 한다. 차별이 완전히 배제된 사회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법으로 보호를 해야 하는 차별금지의 범위는 정할 수 있다.

미국 메릴랜드 헌법학자 데버리 헬먼 교수가 쓴 “차별이란 무엇인가”를 통해 법적으로 차별의 기준은 무엇인지, 차별의 원인은 무엇이며, 차별 행위에 대한 대안은 무엇인지를 알아보자.

차별에는 퍼즐이 있다. 퍼즐이 맞추어졌을 때 차별이라고 할 수 있다. 부모가 자식에게 차별을 하여 상속을 하였을 때, 차별로 소송을 할 수 있을까? 이는 기회균등이라는 점에는 위배될 수 있고 상속권을 침해받은 것일 수는 있으나, 차별은 아니다.

어떤 대학에서 알파벳 A로 시작하는 이름을 가진 사람은 입학 사정에서 불합격 처리를 했다고 하거나, 특정 정당인인지를 합격 기준에 포함시켰다면 불공정 하지만 차별은 아니다. 입학사정의 목적에 위배 되는 행위이므로 월권을 행사했다거나, 공정을 저해하여 업무방해는 될 수 있다. 이는 가치에 대한 위배이다.

차별은 부정적인 의미로 보이나 문학이나 예술 등에서 차별화는 극찬의 의미로 사용된다. 차별은 구별 짓기의 행위에서 비도덕성이 개입하는 것이다. 이는 부당함이다. 호감도를 기준으로 구별했다면 차별이 아니지만 비호감을 기준으로 구별했다면 차별일 수 있다. 차별의 기준은 부당한 대우를 받은 자가 구별의 기준에서 사회적 지위가 고립되고 분리된 역사(관행)를 가지고 있는가, 구별 짓기가 반복적이고 지속적인 계급을 형성할 가능성이 있는가, 비하의 의미를 담고 있는가이다. 그리고 불리의 가능성이 균등한가이다.

비하는 말하는 사람, 듣는 사람의 인식, 시점의 맥락으로 판단된다. 집단을 형성하는 속성을 가진 개인을 동등한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비하이다. 그러므로 차별금지법은 장애, 성별, 출신, 연령, 인종 등과 같은 차별을 금지할 수 있으나, 개인적 호감의 차별을 금지할 수는 없다.

이름이 기억에서 시옷으로 시작하는 사람은 오른쪽에 앉고, 이응에서 히읗까지는 왼쪽에 앉도록 하는 것은 차별이 아니다. 하지만 흑인은 버스 뒷자리에 앉도록 하는 것은 차별이다. 청년들이 뒷자리를 선호한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주택임대에서 연령, 성별, 가족 여부에 따라 거부하는 것은 차별이다. 하지만 여학교에서 남학생을 선발하지 않는 것은 차별이 아니다. 성적이 낮은 학생에게 청소를 시키는 것은 차별이다. 여성에게 인형을 선물하는 것은 차별이 아니지만, 로봇을 가지고 놀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차별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 감옥에서 흑인은 반바지를 입게 하였는데, 여름에 더 편할 수 있으나 반바지가 열등한 사람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어 이는 차별이다. 한정된 자리나 서비스에서 분류는 어쩔 수 없고 피할 수 없다. 가질 수 있는 재원이나 서비스, 자리, 기회는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집단을 달리 대우하여 낙인을 만들고 그 낙인이 비하와 연관될 경우 차별이 발생한다.

카지노 회사에서 여성에게 화장을 강요하면 비하의 의미가 있어 차별이다. 화장을 허용하면 차별이 아니다. 여성 양로원에서 남성조무사를 쓰지 않는 것은 차별일까? 비하의 의미가 없는지, 수요자의 선호도가 인정되는가에 따라 달리 해석될 수 있다. 데이트 상대를 찾는 광고에서 날씬하고 어리고 얼굴이 예쁜 여자를 구한다고 하면 차별일까? 이는 구별하는 자가 권력자가 아니므로 차별로 보기 어렵다.

존중과 평등은 다르다. 하지만 평등은 존중의 기초적 방법이다. 처벌도 차별인가 의문을 가질 수 있다. 형벌옹호주의는 비하의 의미가 없다. 6세끼지 보육수당을 주고 7세에게는 주지 않는 것은 연령을 차별한 것일까? 필요성이나 삶의 품위가 아닌 차별이 되려면 비하가 있는가가 기준이 된다.

2005년 미국 FDA는 아프리카계 인종을 대상으로 한 비딜이라는 심부전약을 승인했다. 혜택이냐 비하가 조장하는 차별이냐 논쟁이 일었다. 구분이 객관적인가를 따지는 유형적 객관성(저격성)과 상징적 객관성(성과 객관성) 논쟁이 대두되었다. 객관성은 패션과 같이 다수가 동의하는 최소 객관성, 일정 범위의 색을 무슨 색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완화된 객관성, 강력한 객관성으로 나뉘는데, 객관성은 편향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구별 짓기에는 가치가 작용한다. 가치는 선택을 내리는 실체의 필요, 욕구, 또는 목표를 충족시키는 특성의 집합체이다. 가치에는 비하가 개입되지는 않는다. 가치는 욕구의 충족 유용성이다. 가치는 상식적 가치가 있고 구성된 가치가 있다. 가치는 자격을 만들기도 하지만, 자격이나 보상이 가치를 정확하게 반영하는지는 별개일 수도 있다. 비하는 가치의 개념을 제한하는 역할을 한다.

구별 짓기의 합리성은 구별의 효과가 합리적인가가 아니라 특정 집단의 역량에 지속적 영향을 미치는가가 기준이 되어야 한다. 다른 능력을 가진 이들에게 가치를 동등하게 인정하는가는 구별의 합리성이 아니라 사회적. 법적 합리성이 우선한다.

월마트 여성 직원들은 승진의 재량권이 관리자에게 지나치게 많다고 하여 고소했다. 일부 학자들은 장애인차별금지법에서 편의시설의 비용부담으로 장애인을 고용하지 않는 것은 차별과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홈즈 대법관은 ‘개조차도 걸려서 밟히는 것과 걷어차이는 것은 구별할 줄 안다’고 했다. 이는 부당한 의도가 있는지 여부를 말한다. 차별을 의도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차별이 일어나지 않도록 적극적 조치를 하지 않는 것 역시 차별이다. 구별 짓기에 있어 위험을 제거하지 않은 것은 도덕적 책임이 따른다.

이 책에서 다루지 않은 점도 논의해보자. 가치의 비하가 없는 구별 짓기가 아닌 불편을 주는 것도 차별일까? 우리는 이를 정당한 편의 제공이라고 한다.

고용주는 비장애인에게는 화장실과 컴퓨터, 책상 등을 제공한다. 역량을 발휘하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할 책임이 고용주에게 있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는 소비자에게도 해당된다. 평등이 침해되고 자격이 제한된다.

앤더슨은 그의 저서 ‘평등은 핵심은 무엇인가’에서 “평등은 구별을 금지하는 것이 아니다.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평등에 실패하는 것이다”라고 썼다. 평등의 의무는 공공만이 아니라 국민 전체이기 때문에 공공 위주로 책임을 정하고 있는 편의 제공이나 환경의 문제는 이제 민간 영역까지 확대하는 법적 조치가 일어나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도덕적 가치의 존중은 성공할 수 없다.

구별 짓기의 권력자나 행위자가 철학자도 아니고 도덕군자도 아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애매하고 어려운 차별의 문제를 도덕에만 맡길 수 없다. 그래서 법으로 판단기준을 정하고 차별행위를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강제하여 평등을 실현하고자 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한국에서 인권위나 사법부의 차별의 판단기준은 장애인차별금지법에서 분리, 거부 배제, 제한이라는 판단기준이 제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차별의 명확한 한계나 차별하지 않기 위한 구체적 조치를 규정한 것을 위반하였는지를 보고 있다.

예를 들어 접근성을 위배하여 차별을 하여도 어디까지 차별로 보는지 기준이 위반되어야만 차별로 판단한다. ‘티비 리모컨에서 채널을 음성으로 나타내어야 한다.’라는 법 조항이 없으면 접근성이 되지 않아도 차별이 아닌 것이다. 이에 반해 불법의료 행위는 의료법에서 정하지 않아도 판례의 축적으로 기준을 법원이 스스로 만들고 있다. 사법부가 헌법에서도 금하고 있는 차별에 관하여는 판단의 고유 권한을 스스로 포기하고, 수동적 집행관 역할만 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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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환 칼럼니스트
현재 사단법인 장애인인권센터 회장,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 고용안정지원본부장을 맡고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아·태 장애인, 장애인운동 현장의 소식을 전하고 특히, 정부 복지정책 등 장애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슈에 대해 가감 없는 평가와 생각을 내비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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