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가족이 애용하는 자동차가 말썽을 일으켜 수리센터로 들어갔다. 수리비가 엄청 나왔다고 한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1년 주기로 교체하는 정수기 필터 점등이 깜박깜박거린다. 앞으로 한 달 안에 가격이 꽤 나가는 새 필터로 갈아주지 않는다면 제 일을 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자동차 수리비용과 정수기 필터비용을 제외하고도 다섯 식구 살림에 돈 나갈 구멍이 줄을 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을 울고 웃게 하는 돈도 어찌 보면 종이조각일 뿐, 그깟 돈은 우리 가족 화목까지 깨뜨리지 못했다. 평일에는 바쁜 일상에 다섯 가족이 모두 모이지 못하더라도 휴일에는 모두 모여 소박하게 홈파티도 하고 도심 외곽으로 드라이브도 다녀온다.

"집에 있기 답답한데 꽃구경하러 드라이브나 갈까요?"

먼저 제안하는 쪽은 언제나 세 살 터울의 동생이었다. 동생처럼 나도 부모님을 도심 밖 경치 좋은 곳으로 드라이브시켜드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하지만 운전에 운자도 모르는 자식이다. 부모님 호강시켜 드리려다 되러 기사 노릇만 시켜드릴 것이 뻔하다.

며칠 전 포털사이트 메인화면을 둘러보다가 무료로 가족사진을 찍어 준다는 문구가 눈에 띄었다. 내가 사는 지역주민 선착순 100명에게 가족사진을 촬영해 준단다. 이거다 싶었다. 100명이 모집되면 신청서 창도 닫힌다길래 냉큼 접수했다. 거실 벽면 한편이 커다란 가족사진 하나 없이 휑하다는 것이 평소 마음에 걸렸다.

며칠 후 사진관에서 가족사진 무료 촬영 이벤트에 당첨됐다는 문자와 전화를 받았다. 촬영 가능한 날짜가 거의 꽉 찼다며 가능한 빠른 시일 내에 가족들과 협의해 달라고 했다. 나는 앞뒤 재보지도 않고 서둘려 가족 단톡방에 메시지를 남겼다.

"지난번에 신청했던 가족사진 촬영 이벤트에 당첨됐어, 다들 시간 언제 돼? 모처럼 온 기회를 놓치기엔 아깝잖아, 일요일도 가능하다데"

"5월 8일 어버이날 찍을까?"

"좋아."

"알았다. 그날로 해라."

촬영 날짜와 시간을 정하자 업체에서는 그제야 예약금 5만 원을 입금해줘야 한다는 말을 꺼냈다. 무료다 보니 예약만 해놓고 말없이 안 오는 사람이 많아서란다. 촬영이 끝나면 예약금은 환불해 준다고 했다. 나는 가족 단톡방에 이 소식을 알렸다.

"돈 보내지 마, 좀 더 알아보자."

"맞아! 알아보니까 그거 사기인 경우가 많다네."

"사기까지는 아니고 상술."

처음엔 '다들 속고만 살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사는 지역엔 장애인 사진관이 있다. 장애를 가진 고객이 이용하기 편하도록 만든 사진관이다. 그 사진관은 사회적 기업인데 한 달에 한번 장애인가족 한 팀에게 의상 대여, 헤어와 메이크업은 물론 사진 촬영을 무료로 해 주고 맛있는 식사도 대접해 주는 이벤트를 진행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나는 코로나19로 지친 지역주민들을 위해 위로와 힘이 되고자 무료 가족사진 촬영을 주최하게 되었다는 이벤트 안내 문구에 마음이 동했다. 내가 알고 있는 사회적 기업 사진관과 비슷한 일을 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알아보라는 말을 듣고서야 인터넷 검색을 해보기 시작했다. 평소라면 해봤을 사전조사를 이벤트 응모 전후는 물론 당첨이 됐다는 전화를 받고 나서도 전혀 해보지 않았던 것이다. 가족을 위해 난생처음으로 무언가를 해 줄 수 있다는 기쁨에 휩싸여 날짜 잡기에만 급급했다.

실제 무료 가족사진 촬영을 경험해 본 사람들의 후기에 의하면 이렇다. 이벤트 페이지에는 커다란 액자를 줄 것처럼 해 놓고 막상 가보면 A4 사이즈도 안 되는 조그만 액자를 준다고 한다. 2~ 3시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포즈를 열심히 취해가며 사진을 수십 장 촬영하게 해 놓고 사진 한 장만 딸랑 준단다.

큰 액자와 다른 사진, 원본 파일을 요구하면 시중가보다 몇십 배는 비싼 값을 부른다고 한다. 그 상황이 되면 그간 노력했던 시간과 사진들이 아까워 지갑을 열 수밖에 없다. 무료인 줄 알고 가서 그렇게 비싼 값을 지불한 사진을 보고 마냥 흐뭇한 미소를 지을 수 없을 것이다. 팍팍한 살림살이에도 화목만은 잊지 않았던 내 가족도 예외는 아닐 테다.

선착순 100명이 되면 닫겠다던 무료 가족사진 이벤트 접수창은 지금도 여전히 열려 있다. 지역주민만을 대상으로 하는 이벤트라면서 가족의 나이만 물었다. 예약 날짜를 잡은 후 폭포수처럼 쏟아지던 문자 중에는 수십 컷 촬영한 사진 중에서 딱 한 장만까지만 무료이고 원본 파일은 제공하지 않는다는 문구가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당했다던 수법과 똑같았다. 요즘처럼 각박한 세상에 내가 당첨된 사진관만은 정직할 거라는 생각을 하면 안 됐다.

어버이날 부모님께 잊지 못할 추억 만들어 드리려다 큰일 벌일 뻔했다. 예상치 못한 큰 지출, 혹은 빼앗긴 시간에 집안 분위기는 싸늘한 정적만 감돌 것이 눈에 선하다.

"에이 또 개인정보만 새 나갔네, 다음에 기회 되면 돈 주고 멋진 사진 많이 찍어요."

"누나 제안대로 5월 중에 가족사진 한번 찍는 거 어때요?"

내가 벌인 가족사진 촬영 기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하지만 나는 내가 자랑스럽다.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지 않고 내가 직접 업체와 통화해 예약까지 잡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지금까지는 다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을 얹어 뒤꽁무니만 졸졸 쫓아다니던 나였다. 비록 실패로 기록되었지만 이번 경험을 계기로 어떤 것을 기획하고 추진할 수 있는 능력이 나에게도 충분히 갖춰져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이번에 확실히 알았다. 이 세상엔 공짜란 없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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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리 칼럼니스트 평범한 직장인이다. 어릴 때부터 글을 꾸준히 써왔다. 꼬꼬마시절에는 발달장애를 가진 ‘나’를 놀리고 괴롭히던 사람들을 증오하기 위해 글을 썼다. 지금은 그런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해 글을 쓴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발달장애 당사자로 살아가는 삶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걸 보여주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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