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대표 (오른쪽)과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 (왼쪽)이 지난 13일에 진행한 JTBC 토론회 시작 화면. ⓒJTBC 유튜브 화면 갈무리

이번 장애계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이하 직함 생략)와의 충돌 지점의 근원을 철학적으로 생각해보면 또 어떤 생각이 들까요? 장애계가 말하는 장애인의 위치는 ‘옆’이라고 말하지만, 이준석이 말하는 장애인의 위치는 ‘앞’이라는 점이 결국 충돌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장애인이 ‘옆’에 있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장애인은 우리 곁에 있는 존재이지, 너무 낯선 존재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고 실제 장애인식개선교육의 끝에 가면 모든 이야기는 “장애인은 ‘옆’에 있습니다!”라는 메시지로 마무리되는 것이 보통 벌어지는 일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통해 장애인이 ‘옆’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고, 이제 세상에 장애인이 ‘옆’에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줄 시점이 되었습니다.

이준석은 과연 어떨까요? 이준석은 성장하면서 장애인의 존재를 제대로 학습할 기회가 없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준석이 초등학교 졸업 시점인 1998년에는 제대로 된 장애인 통합교육이 이뤄지지 않았던 시점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늦게 잡아도 그가 고등학교를 졸업했던 2003년 즈음에 훗날 이준석 자신이 혐오하던 장애인 이동권 시위가 본격화된 시점이었습니다. 이준석이 미국에 있었던 2007년(이준석은 하버드 대학교를 2007년에 졸업했습니다.) 즈음에는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투쟁의 막바지였습니다. 결국, 2007년에 장애인차별금지법이 국회를 통과했으니 결과적으로 이준석의 성장 과정에서 장애인의 존재를 학습했을 리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준석이 본 장애인은 결국 ‘앞’에 있었습니다. 자신의 정치적 야망을 실현하기 위한 ‘장기판의 졸’ 아니면 ‘투표용지 한 장’ 같은 존재로 장애인을 바라봤습니다. 장애인을 ‘앞’에서 봤던 것과 ‘옆’에서 본 것은 근본적으로 다른 출발선에 놓여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장애인을 ‘옆’에서 보는 것은 우리 곁에 있다는 점을 내포한 것입니다. 일상 속에서 장애인 문제를 생각하고, 장애인의 삶에서 우러나오는 이야기를 논의의 출발로 삼고 있습니다. 그것이 끝에 이르러 예산 정책 문제까지 이르게 된 것은 이제 장애계가 그 극한을 알아내는 데 성공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마치 수학에서 무수한 수열의 끝이 있는지를 알아내는 이른바 ‘수열의 극한’의 극한값이 ‘장애인 문제 수열’에서는 ‘예산 정책 문제로 수렴하는 극한값’이 나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통해서 우리 ‘옆’에서 벌어지는 문제를 이제 세상에 알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충돌과 갈등, 연대와 화합 등 수많은 이런저런 소통을 경험하게 된 것은 사실입니다.

역사를 살펴보면 역사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충돌과 갈등, 연대와 화합이 교차했고 문명과 제도, 패러다임의 갈등과 교류 등 다양한 이야기들이 있었고 우리가 배우는 역사는 결국 이러한 이야기 중 ‘옛날에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에 대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준석은 결국 자신의 정치적 삶에서 ‘다른 세계’를 만나본 적이 없었을 것입니다. 자기들의 세계에서만 지냈고, 그런 ‘다른 세계’ 속의 사람들을 외계인 취급했습니다. 자기들의 세계에서 자리를 잡은 이준석은 결국 차기 여당이자 국회 제2당의 당수가 되었고 그제야 ‘다른 세계’에 제대로 직면하게 된 셈입니다.

이번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투쟁 과정에 대한 공격적인 태도는 ‘앞’에서만 봤던 ‘장애인’이라는 ‘다른 세계’의 존재를 ‘눈앞에서 바라본 사건에 대한 반응’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치 외국인들이 한국에 처음 와서 겪는 문화충격이나 갈등을 보는 것 같아서 매우 공격적인 언사와 그 신분의 특성 때문에 분개했었던 것이지, 일개 부잣집 ‘도련님’이 저런 소리를 했으면 그냥 ‘저 한심한 것들’ 정도로 넘어갈 수 있었던 이준석의 언사였기 때문입니다.

사실 제가 “살면서 가장 인상 깊게 본 TV 프로그램이 무엇입니까?”라고 질문받으면 당장 외국인들의 한국에서의 문화충돌이나 갈등 이야기를 한국 방송에서 처음으로 대중적으로 풀어낸 “KBS 2TV ‘미녀들의 수다’”라고 답했을 테니 말입니다. 사실 ‘미녀들의 수다’의 첫 방송은 2006년 추석특집으로 맛보기를 하고 그 이후 정식으로 첫 방송을 했는데, 그 시점에는 한국사회에서 외국인의 존재와 다문화사회가 ‘앞’에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렇지만 이 방송을 계기로 대중들도 웃고 떠들고 저도 그랬지만 ‘미녀’(즉 출연 패널. 주: ‘미녀들의 수다’는 한국에서 생활하는 외국인 여성들이 패널로 출연한 토크쇼였습니다.)들을 좋아하게 되는 와중에 외국인과 다문화사회를 ‘옆’으로 끌고 오게 된 것은 이 프로그램이 남긴 성과였을 것입니다.

이 영향으로 이후 한국사회에서 외국인을 더 가까이할 수 있게 되었고 한국사회도 다문화사회로 진입하는데 갈등을 점점 줄여나갔습니다. 그래서인지 이제 대중들에게 외국인의 존재는 이래저래 익숙한 존재가 된 것입니다. 그렇게 외국인들은 ‘앞’에서 ‘옆’으로 온 것입니다.

제가 일본제품 불매운동과 제 정보도 들어있는 게임 데이터가 있던 다음 게임(현재의 카카오게임) 서버 연결 서비스(게임 용어로는 '채널링')가 종료되기 이전에 즐겼던 일본 온라인 게임 ‘대항해시대 온라인’이라는 게임에서 ‘자물쇠 따기’라는 기술은 게임 속 자물쇠에 잠긴 보물상자를 풀거나 함정을 깰 때 쓰는 기술이었습니다.

저도 즐기면서 그 기술을 써봤는데, 그렇게 낯설고 진귀한 것을 찾아내기도 했습니다. ‘앞’에 있던 보물이 ‘자물쇠 따기’ 기술로 ‘옆’에 온 것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자물쇠 따기’ 기술은 명령어를 입력하거나 버튼을 클릭해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자동으로 작동되는 기술이었습니다.)

우리 장애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옆’에 있기를 원하지만, 사회적으로 ‘앞’에 있었던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한 현실이 최근 일련의 투쟁들과 장애계의 장애인식개선활동 등 다양한 요인이 계속 맞물려 대중 ‘옆’으로 가고 있습니다. 이준석이 대표적인 장애인을 ‘앞’에서 바라본, 우리에게는 ‘앞’에 나타난 존재였습니다.

이준석으로 상징되는 장애인을 ‘앞’에서 바라본 이들을 점점 우리 곁으로, 점점 ‘옆’으로 다가오게 합시다. 앞으로, 장애계가 해야 할 과제는 결국 장애인의 존재와 행동 방식과 삶 이런 것들을 대중 ‘옆’으로 옮기게 하는 것입니다.

장애계의 과제는 결국 이준석을 시작으로 장애인과 장애인의 삶을 ‘앞’에만 뒀던 이들의 인식 체계라는 ‘자물쇠를 따서’ 그들 ‘옆’에도 장애인과 장애인의 삶이 있음을 확실하게 만나고 확인하게끔 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에게 2022년에 주어진 과제입니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2015년 계약 만료로 한국장애인개발원을 떠난 것은 시작일 뿐이었다. 그 이후 장지용 앞에 파란만장한 삶과 세상이 벌어졌다. 그 사이 대통령도 바뀔 정도였다. 직장 방랑은 기본이고, 업종마저 뛰어넘고, 그가 겪는 삶도 엄청나게 복잡하고 '파란만장'했다.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파란만장했던 삶을 살았던 장지용의 지금의 삶과 세상도 과연 파란만장할까? 영화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는 픽션이지만, 장지용의 삶은 논픽션 리얼 에피소드라는 것이 차이일 뿐! 이제 그 장지용 앞에 벌어진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읽어보자!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