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도 버스를 타면 라디오를 들을 수 있을까? 라디오 소리가 시끄럽다며 민원이 들어오는 일이 왕왕 벌어진다는 소식을 인터넷 검색을 통해 알게 되었다. 어찌 댔거나 나는 버스에서 들리는 라디오 소리를 좋아한다. 흔들리는 버스와 라디오에 몸을 맡기다 보면 어느새 어릴 때 기억 한편으로 가 있다.

나는 초등학교 때 경기도에서 서울시로 이사를 왔다. 당시 나는 동네 치과병원에서 교정치료를 받고 있었다. 이사를 갔어도 꽤 오랜 세월 치과는 옳기지 않았다. 치과치료를 빌미로 한 달에 한, 두 번씩은 예전에 살던 동네 구경을 하곤 했다.

서울시에서 경기도로, 경기도에서 서울시로 넘나들었던 이동수단은 버스였다. 버스에서 흘러나오는 라디오 방송을 들으며 차창밖 넘어 내 유년기의 친구가 되어 준 동네 구경하는 즐거움에 푹 빠졌다. 마을버스는 음악소리에 장단을 맞추며 친구들과 뛰놀던 놀이터, 내가 다녔던 유치원과 초등학교를 모두 훑고 지나갔다.

어른이 된 지금도 어쩌다 가끔 버스를 타게 되면 버스에서 흘려 나오는 음악을 들으면서 시간 여행을 떠난다.

내가 버스를 좋은 이유는 딱 여기까지다. 이따금 버스를 타며 시간여행을 떠나기를 소원하지만 나는 버스를 타고 싶지 않다. 목적지가 지하철역에서 한참 떨어져 있어도 웬만하면 도보를 이용한다. 마지막으로 혼자서 버스를 타던 날이 언제였는지 한참을 생각해 봐야 할 정도로 나는 지하철 마니아이다. 나는 버스가 무섭다.

걷는 도중 버스가 눈앞을 스쳐 지나가더라도 '내가 버스를 타나 봐라'라는 심보가 앞선다. 한 푼이라도 아껴보겠다고 난데없는 구두쇠 코프스레를 펼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내가 버스를 이용하려면 정신을 바싹 차려야 하기 때문이다.

버스는 지하철보다 많이 흔들린다. 첫 번째, '반드시 자리에 앉거나 손에 쥐가 날 정도로 손잡이를 꽉 붙잡기'

요즘은 모든 버스에 전광판이 설치되어 있고 그것들이 까만 빛만 내뿜고 있지 않을까? 두 번째, '정류장을 알리는 전광판이 설치되어 있는지, 잘 작동하고 있는지 확인하기', 그렇지 않다면 침 한번 꼴딱 삼키고는 안내방송에 귀 쫑긋 새우기,

왜 버스 하차벨은 누르기 힘든 곳에 설치되어 있는 걸까? 세 번째, '하차벨 위치 찾아서 제때 누르기',

저 아직 안 내렸는데요? 버스는 이미 내가 내릴 정거장을 지나치고 버스가 완전히 멈춘 후 자리에서 일어나 주세요.라는 안내문구가 무색할 지경, 네 번째, '하차문 앞에 미리 서 있기'

마지막 관문인 다섯 번째, '카드단말기에 카드 찍기'까지 무사히 통과하면 버스 한번 탔을 뿐인데 녹초가 되어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다.

버스를 한번 타려면 이렇게 신경 써야 할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요즘엔 다행히 저상버스가 많이 다니는 덕에 타고 내리는 일에는 걱정을 덜게 되었다. 조금 더 많은 저상버스가 다니면 좋겠다는 바람을 내비쳐 본다.

반면 지하철은 역마다 정차하니 하차벨을 누를 필요도 없고 설치되어 있지도 않다. 지하철은 버스보다는 전광판 관리가 잘 이루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낯설기만 한 초행길, 지하철 소음 속에 안내방송을 듣지 못해 내릴 역을 지나칠까 봐 긴장하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나 같은 경우는 지하철을 타면 꼭 자리에 앉지 않아도 된다. 버스보다는 중심잡기가 수월하기 때문이다. 손잡이만 붙잡고 있으면 된다.

장애를 가진 나만 버스 타는데 불편을 겪는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닌가 보다.

농어촌 버스에 승하차를 돕는 직원이 계시다는 소식을 접한 적이 있다. 유튜브에 '버스 승하차'라는 키워드를 검색해 보면 버스 승하차 사고와 안전캠페인 영상이 수두룩 하다. 장애인이건 비장애인이건 버스는 모두에게 불편하다는 사실을 반증해 준다.

버스에 관한 추억만 A4용지 한 장 가득 서술할 수 있는 나는 버스도 마음 편히 타고 싶다. 한결 편리해진 버스에서 나오는 라디오를 들으며, 어릴 적 추억이 가득 담긴 동네로 추억여행을 떠나고 싶다.

이와 더불어 모든 지하철역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되기를 바란다. 보행에 장애가 없는 나는 계단뿐인 지하철역도 아주 가뿐히 이용한다. 하지만 엘리베이터가 없어 지하철을 이용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다. 내가 지하철뿐만 아니라 버스도 편하게 타고 싶은 것처럼 그들도 지하철 또한 자유롭게 이용하고 싶을 것이다.

모든 지하철 역사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되고 버스를 좀 더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다면 남녀노소 누구나 살기 편한 세상이 올 것이다. 장애인에게 편한 세상은 비장애인에게는 더 편하다는 사실을 많은 분들이 알아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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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리 칼럼니스트 평범한 직장인이다. 어릴 때부터 글을 꾸준히 써왔다. 꼬꼬마시절에는 발달장애를 가진 ‘나’를 놀리고 괴롭히던 사람들을 증오하기 위해 글을 썼다. 지금은 그런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해 글을 쓴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발달장애 당사자로 살아가는 삶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걸 보여주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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