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tism Awareness Puzzle. ⓒPixabay

작년 말에 유럽자폐인협의회(EUCAP) 측에서 내가 소속된 모임의 지인에게 이메일로 연락했다. 자폐 치료를 주장하는 의학지 란셋(Lancet) 논문에 공동대응을 하자는 것이었다. 지인이 이 사안에 대해 공동대응하자고 했고, 이를 들은 나는 일단 취지는 좋다는 생각이 들어, 지인과 함께 논문 관련 사안을 논의하는 것에 동참했다.

유럽자폐인협의회에 소속된 단체들과 아시아, 북중미 등의 자폐 당사자들이 유럽 시간대에 맞춰 줌(Zoom)으로 모여 사안에 대해 논의했다. 다들 영어를 잘하는지라, 영어 실력이 짧은 나로선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영국에 거주하는 우리 모임 소속 회원이 논의 초반 이들이 말하려고 하는 취지에 대해 통역하고 이에 대해 내가 이해한 게 맞는지 확인했다. 그 회원 통역 덕에 어떻게 대응할지 윤곽이 조금씩 잡혀갔다. 이들이 논의한 내용을 잠시 소개하자면 이렇다.

당사자들은 ▲자폐 스펙트럼을 장애가 아닌 질환(disorder)으로 표현하고 자폐인들의 어려움은 사회보단 개인에 대한 치료행위에 전가 하는 것 ▲자폐성 장애를 감각이나 사고의 차이가 아닌 행동 차이에 기반한 시각을 갖는다는 점 ▲ 자폐성 장애를 18세 이하 아동 질환으로만 보고, 성인 자폐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며 논문을 비판했다.

또한 격심한 자폐(Profound Autism)란 용어로, 자폐인 당사자에게 새로운 라벨을 붙이며 타자화할 우려가 있고 논문 저자들 대부분이 대학 소속 임상 전문가들이고 2명의 자폐 당사자는 구색 맞추기용이라는 것도 지적했다.

이외에도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자연적 변이나 유전적 다양성으로 이해한다면, 자폐성 장애인 당사자들이 의료행위나 치료기관을 접하는 게 좀 어려워질 것으로 본다는 뉘앙스의 문장도 있는데, 당사자들은 이런 주장은 자연적 장애로 자폐를 이해한다고 해도 그 부분이 영향받을 이유는 없다고 논문에서 호도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자폐성 장애가 있다고 치료기관을 접하는 게 어려워질 거란 이들의 주장이 넌센스라는 데는 나도 공감했다. 왜냐면 영양도 부족하고 칼로리 과잉인 음식을 좋아하며 비만해지는 자폐성 장애인이 늘어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우리 사회에서 건강에 대한 정보 접근성이 열악하고, 장애특성 상 관리가 쉽지만은 않아, 잘못된 생활습관으로 인한 비만 등의 성인병으로 병원 찾는 자폐성 장애인은 늘어날 여지가 농후하다고 예상할 수 있다.

자폐 친화적인 듯하지만, 실제로는 자폐성 장애인 행동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지적 사기 형태의 Lancet 논문 중 일부. ⓒLancet

이 하나의 경우만 봐도, 자연적 변이로 자폐성 장애를 이해할 경우 치료기관을 접하는 게 어려워질 거라는 거는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본다. 오히려 자폐인을 행동치료란 굴레 속에 빠뜨리려는 치료세력의 음모가 명백히 드러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자폐성 장애를 개인에 대한 치료행위로 전가하고 이 장애를 감각이나 사고의 차이가 아닌 행동 차이에 기반한 시각을 갖는다는 점은 우리 사회에서 이 장애와 관련해 만연한 현상이기도 하다. ABA치료 등을 계속 소개하면서 자폐성 장애인을 치료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오랜 시간 동안 형성되고 지금도 퍼져나가는 것을 생각하면 말이다.

당사자들은 과거 사회 분위기와 연구 미흡으로 인해 30~40대에 가서야 자폐성 장애를 진단받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논문에서 무시되었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필자도 사실 그와 관련된 경험이 있다. 어머니 당신께서 내가 장애가 있으면 사회에서 배제 받는 분위기를 눈치채셨는지 내 장애를 숨기고 2%만 고치면 너는 완벽하단 얘기를 계속하셨다.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솔직히 화가 난다. 내가 자폐성 장애가 있는 사람인 걸 일찍 알려줬더라면, 장애를 고치느라고 그렇게 애쓸 필요는 없었을 텐데. 물론 사람들에게 멸시받겠지만, 그래도 나 자신을 전보다 조금은 더 알게 되니, 나의 장애를 보며 혐오하는 사람은 적정거리를 두고, 그렇지 않은 사람과 관계를 계속 맺으면 되는 거고.

이후의 논의에선 통역 미제공으로 이해가 어려웠지만, 그래도 당사자들이 무엇을 말하려는지 느꼈기에, 하나라도 뭔가 표현하고 싶긴 했다. 그리고 자폐인이 다른 사람과 동등하게 사회에 참여하며 살아가는데 필요한 합리적 조정(정당한 편의) 관련 내용이 논문에 없고, 자폐 진단 서비스는 장애인 기본권 일환으로 봐야 한다는 점을 이야기했는데, 줌 상의 당사자들은 이에 동의했었다.

이 논의를 통해 자폐인 삶의 질 향상을 위해선 임상연구에서 자폐성 장애인 학자들이 개발한 개념을 적용하는 것이 필요하고, 모든 나라에 자폐 진단에 대한 연구, 그리고 차별, 불공정 대우, 가난 및 적절한 서비스에 대한 접근 부재 등 자폐인의 건강에 미치는 구조적 요인도 연구해야 한다는 등의 결론을 당사자들은 Lancet지의 내용을 반박하는 논문에 실었다.

자폐계가 ABA(응용행동분석)에 대해 강력반대하는 모습을 상징한 그림(좌측), ABA에 반대하는 미국 자폐당사자 시위모습(우측). ⓒReward and Consent blog

나라, 언어가 달라. 때론 이해가 어려웠지만, 자폐성 장애인이 겪는 어려움과 공감대는 비슷하기에, Lancet지가 말하는 자폐 치료를 반박하는 논의에 같이 참여하고 거기에 의견을 냈다는 자체가 나로선 스트레스가 조금은 풀리며 신선하고 좋았다, 그래서 앞으로도 이런 논의 있으면 또 참여하고 싶긴 하다. 물론 영어 실력이 늘어야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제대로 장애 개념을 알며,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고, 자폐 치료에 대한 논리를 합리적으로 반박하는 자폐성 장애인이 유럽에 상당히 많음을 줌에서 보고는 상당히 부러웠다. 유럽이나 영국도 자폐성 장애인 차별이 있는 현실이지만, 그래도 자폐인 당사자가 참여하는 연구, 논문들이 유럽에선 우리나라처럼 극히 드물지 않고 많아, 당사자들이 자폐 치료세력에 맞서는 힘을 키우며 싸우고 있음을 느끼게 되었다.

이번 모임만이 아니더라도, 실제로 영국의 어느 자폐성 장애인 모임에선 장애 당사자가 자신이 연구하는 걸 논문 형식으로 발표하는 시간을 갖는데, 잘 알아듣진 못했지만, 수준 높아서 영어를 열심히 하면 그 사람이 발표한 내용을 나도 배워 써먹고픈 생각이 들게 되었다. 자폐 치료세력에 맞서거나 교수직 등 사회활동을 열심히 하는 자폐성 장애인이 많은 걸 보며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이런 모습과 달리 우리나라는 자폐성 장애인이 주도적으로 연구하는 모습을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있어도 극히 소수에 불과하고, 유감스럽게도 자폐성 장애를 고쳐야 한다는 치료세력들의 논문과 연구결과는 우리 사회에 차고도 넘친 게 현실이다. 이전에도 Lancet지 논문을 번역하려는 시도가 치료세력 사이에 있었던 것으로 안다.

자폐인은 배제 받고, 부모들은 치료세력의 말에 현혹돼 자폐인을 행동치료 등의 치료에 끌어들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에선 자폐인을 키운 부모들과 그 관계자들이 노고를 치하받고 자폐인이 상을 받아도, 구색 맞추기인 ‘자폐인의 날’ 행사를 매년 맞이하고 있다. 물론 부모님들의 노고 치하는 좋지만, ‘자폐인의 날’에 주인공이 되어야 할 자폐인은 부모나 관계자 들러리에 머물며, 치료라는 명목으로 상처를 많이 받고 있다.

이렇게 자폐인 관련 인식이 부정적인 우리나라 상황을 보면 자폐인에 대한 인지된 차별을 반영한 날이 ‘자폐인의 날’이란 세계 자폐성 장애인 당사자들 지적이 정말 가슴에 와닿고 적극적으로 동의한다. 나에겐 무의미하고 무력감을 주는 ‘자폐인의 날’은 이제 그만 보고 싶다.

5년 전 4월 2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자폐인의 날’ 콘서트 시작 직전 블루라이트 이벤트를 하는 장면. ⓒ이원무

다시 자폐 당사자 참여연구와 관련해 얘기하면, 이런 연구가 활성화되지 않은 데는 어려서부터 자신이 흥미가 있으면서 원하는 걸 공부할 수 있도록 자폐성 장애인에게 자기결정권과 선택권을 부여하는 환경이 잘 마련되어 있지 않은 것이 문제라고 본다.

대학진학 전엔 장애인식 교육과 장애인을 포함한 인간의 권리를 알려주는 과정 등을 포함한 실질적인 통합교육을 받지 못한 것도 문제지만, 대학진학을 위해 대학입시를 치러도, 지적·자폐성·정신장애 등의 정신적 장애 있는 사람들과 관련한 합리적 조정이 없다. 대학 내에도 자폐인이 수업을 잘 따라가고 공부하도록 하는 지원도 드물거나 없다.

대학 내 장애학생지원센터라는 곳도 있는데, 거기서는 자폐성 장애를 포함한 장애가 있는 연구자에 대한 지원도 없다. 그러다 보니 일반대학/대학원에 입학해 공부하거나 자기 주도적으로 공부·연구하는 자폐성 장애인을 찾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설사 자폐성 장애인이 대학이나 대학원을 졸업하더라도 연구직 일자리가 없거나, 있어도 드문 것으로 알고 있다. 연구직 등을 포함해 연구직이 아닌 다양한 직업군에서 면접자들이 말은 안 하지만, 자폐성 장애를 이유로 면접에서 떨어뜨리는 게 관행인 것으로 알고 있다. 설령 합격한다 해도, 합리적 조정이 있는 연구직을 찾아보기란 하늘의 별따기인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자폐인들이 어려서부터 자신이 흥미 있는 것을 공부하고 잘할 수 있도록 부모가 시키는 대로 하는 억압적인 환경 아닌 자기결정권과 선택권을 증진하는 환경이 필요하다. 물론 억압적이지 않은 부모들이 전보단 조금은 늘어나긴 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통합교육을 진행할 시 장애인식 교육 및 장애인을 포함한 인간의 권리를 알려주며 토론과 역할극 등을 통해 다양성을 존중하는 걸 배우는 과정이 필요하다.

Diversity(좌측), Inclusive Education을 상징하는 그림(우측). ⓒPixabay

초중고와 대학교, 대학원, 졸업 후 연구직에서 자폐성 장애인이 공부할 수 있도록 합리적 조정을 우리 사회에서 권리로 인식하고, 이를 제도화해 제공하는 게 필요하다, 그리고 연구직이나 설령 연구직이 아니더라도 다른 직종에서 말을 하지는 않지만, 자폐성 장애를 이유로 면접에서 떨어뜨리는 관행과 법률, 제도는 사라져야 한다.

채용 시엔 거의 신체장애인만 찾는 경향에서 탈피해, 자폐인, 정신장애인에게도 연구직 등의 직종에 문을 열어야 하며, 면접 때도 자폐성 장애인의 강점을 업무에만 결부시키는 식의 면접과 관련한 질문 등의 매뉴얼이 나오는 게 필요하다. 직장 내 장애인식개선교육 시에는 장애인 개인이 느끼는 직장과 삶에서의 차별, 이와 관련한 장애인의 권리가 무엇인지를 면접관과 고용주에게 알려주는 게 필요하다고 본다.

그래서 치료세력에 맞서 싸우며 자신의 권리를 증진하고 자기 주도적으로 참여 연구하고 심지어 논문까지도 발표하는 등 자폐인 당사자 참여연구가 활성화되어 치료세력의 자폐 치료 입김을 눈 씻고도 찾아볼 수 없게끔 되는 그날을 꿈꾼다.

자폐성 장애가 다양성으로 인정되고, 자폐인이 주도하는 행사를 자주 많이 치르는 등 다른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며 살아가는 날을 꿈꾼다. 내가 소속된 모임 회원들과 신경다양인들이 주체가 되어 작년에 신경다양인 모꼬지를 개최했고 올해엔 신경다양인 컨퍼런스를 개최했지만, 앞으로도 그런 행사가 더욱 많아지길 꿈꾼다. 사족이지만 연구직이 아닐지라도, IT, 변호사, 의사 등 다양한 직종에서 일하는 자폐인이 많아지길 꿈꾼다.

앞으로는 자폐 차별을 강화하는 게 아닌, 자폐성 장애인의 정체성을 긍정하며 자폐인이 된 것을 축하하는 6월 18일의 ‘자폐인 긍지의 날’이 ‘자폐인의 날’이 되길 바라고 꿈꾼다. 이런 것들이 현재 ‘자폐인의 날’을 맞아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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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팝송 감상, 월드컵 등을 즐기고 건강정보에 관심이 많은 반백년 청년이자, 자폐성장애인 자조모임 estas 회원이다. 전 한국발달장애인가족연구소 정책연구팀 간사였으며,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정부심의 대응을 위해 민간대표단의 일원으로 2번 심의를 참관한 경험이 있다. 칼럼에서는 자폐인으로서의 일상을 공유하고, 장애인권리협약, 장차법과 관련해 지적장애인, 자폐성장애인과 그 가족이 처한 현실, 장애인의 건강권과 교육권, 접근권 등에 대한 생각을 솔직하게 나눌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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