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지체장애인의 일하는 모습. ⓒAndi Weiland/Boehringer Ingelheim (Gesellschaftsbilder.de)

따끈한 모닝커피 한 잔을 들고 소파에 앉아 평소 즐겨 듣는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을 틀었다. 음악이 끝나고 "이번 주제는 사회통합과 노동시장입니다."라는 진행자의 멘트가 나왔다. 순간 귀가 솔깃해진 나는 얼른 라디오 볼륨을 높였다. 이야기는 어느 장애 여성의 인터뷰에서 시작한다.

"면접이 끝날 무렵에, 제가 장애로 인해 팔을 제대로 들 수 없다고 솔직하게 말씀드렸어요. 그러자 면접관 중 한 명이 제게 그러더군요. '죄송하지만 우리 회사에서 일하기 힘들 것 같네요. 진작에 알았다면 당신을 면접에 초대하지 않았을 텐데요. 당신은 고객들을 응대할 때 샴페인잔도 제대로 못들 거 잖아요.' 실제로 저는 이런 식의 반응을 수도 없이 경험했어요."

여성은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어 나간다.

"솔직히 저는 비장애인 중에 직무능력이 많이 떨어지는 사람도 자주 봤어요. 지원서에 허위 경력을 써넣는다든가 능력에 미치지 않는 일을 맡고서 고생하는 사람들 말이죠. 그런데 제 역량을 직접 검증해보지도 않고, 고객응대 시 샴페인잔을 제대로 들지 못한다는 이유로 면접에서 떨어드리는 게 도대체 말이 되나요?"

나는 라디오 볼륨을 다시 줄였다. 역시 이 나라도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구나 하는 답답함이 밀려왔다. 커피잔에서 모락모락 피어 나오는 김과 나의 한숨이 뒤섞이며 공기 중으로 고요히 사라진다. 그리고 나는 깊은 생각에 잠긴다.

장애가 있는 사람은 일상에서, 특히 노동시장에서 수많은 장벽에 부딪힌다. 상당수의 장애인은 기업이 요구하는 비장애인과 동등한 취업자격조건을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장애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취업의 문턱에서 거절당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장애 유무를 떠나 모든 사람이 동등하게 취업하고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으려면 무엇이 바뀌어야 할까? 나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지난 수 년간 독일에서 찾고 있다.

독일에 산 지도 어느덧 14년이 다 되어 간다. 선진국의 특수교육과 장애인복지를 직접 보고 연구하고 싶어 부산교육대학교를 졸업하자 마자 무작정 독일행 비행기에 탔다. 그리고 베를린 훔볼트 대학교에서 재활특수교육학을 전공하고 현재 장애인 고용을 주제로 박사과정을 진행하면서 몇 년째 독일 장애인고용의 성공 노하우를 연구하고 있다.

어느 지체장애인이 직장 내 이동하는 모습. ⓒAndi Weiland/Boehringer Ingelheim (Gesellschaftsbilder.de)

연구 초기에 나는 독일의 성공 노하우가 무엇보다도 체계적인 정책과 제도에 기인한다고 확신했다. 왜냐하면 독일에는 장애인의 직업훈련과 기업실습 단계부터 취업, 근무 그리고 퇴직에 이르기까지 기업이 받을 수 있는 혜택이 매우 다양하고 체계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독일에는 직업훈련생 고용혜택(장애가 있는 직업훈련생 1명을 고용하면 중증장애인 근로자 2명을 고용한 것으로 간주된다), 시범고용제(장애인을 3개월간 시범 고용하면 기업은 노동청과 통합청을 통해 장애인 고용비를 전면 지원받는다), 사회통합지원금(기업은 장애인 고용 후 최대 60개월까지 임금수당의 최대 70퍼센트까지 지원받는다), 기업실습지원(직업훈련 전 장애인은 기업에서 6~12개월 실습을 할 수 있고 실습생 임금은 노동청이 지원한다), 고용안정지원금(중증장애인의 업무수행능력이 근로계약서에 명시된 수준보다 현저하게 떨어질 경우, 기업은 그에 대한 재정적 손실을 보상 받는다) 등의 다양한 제도와 체계적으로 조직된 협력 네트워크가 가동 중이다.

이를 바탕으로 독일에는 소위 '코로나 시대' 이전만 하더라도 일반 노동시장에 종사하는 중증장애인이 130만명 이상이나 있었고, 현재 독일 전역 3천개 이상의 장애인보호작업장에 약 32만명의 장애인이 고용되어 있다. 장애인고용 환경이 여전히 열악한 우리나라에 비하면 독일의 상황은 마치 빛처럼 밝아 보인다.

하지만 괴테는 말했다, 빛이 있는 곳에는 그림자가 있다고.

독일에는 여전히 중증장애인의 실업률이 비장애인보다 현저하게 높다. 수십만명의 장애인이 장애인보호작업장에 종사하는 현실은, 장애인의 일반노동시장 진출이 여전히 힘들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실제로 장애인보호작업장에서 일반 기업체로 진출하는 장애인이 1퍼센트도 안 되니 말이다. 게다가 독일에서 중증장애인 고용의무를 전혀 이행하지 않는 기업은 무려 25% 나 된다. 물론 우리나라 보다는 훨씬 낮은 수치이다.

장애인고용을 위한 정책과 제도가 우리나라보다 더 탄탄하게 갖추어 졌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많은 기업이 장애인고용을 꺼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장애인고용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 때문이다. 여전히 많은 기업이 장애인고용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정보가 부족하다. 장애인을 고용해본 경험이 전혀 없거나 장애인과 개인적으로 접촉해 본 경험 자체가 부족한 사업주들은 사회 전반에 깊게 뿌리 박힌 편견 때문에 장애인고용을 꺼리고 있다. 그래서 고객응대 시 샴페인 잔을 높게 들지 못한다는 이유로 장애인을 면접에서 탈락시키는 일이 독일에서도 버젓이 발생하는 것이다.

장애인고용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독일인과 한국인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편견 유형이 몇 가지 발견된다. 진실을 왜곡하는 편견은 바로잡아야 한다. 그래서 나는 이번 연재 칼럼을 통해 대표적인 6가지 편견에 대한 진실을 파헤쳐보고자 한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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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세리 칼럼니스트 독한 마음으로, 교대 졸업과 동시에 홀로 독일로 향했다. 독한 마음으로, 베를린 훔볼트 대학교에서 재활특수교육학 학사, 석사과정을 거쳐 현재 박사과정에 있다. 독일에 사는 한국 여자, 독한(獨韓)여자가 독일에서 유학생으로 외국인으로 엄마로서 체험하고 느끼는 장애와 장애인에 대한 이야기를 독자와 공유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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