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스트레스로 인해 망막이 파열되면서 수술을 받게 되었다. 휴대폰으로 보면 카메라 렌즈가 깨진 것과 다름이 없는 일이었고, 이 증상을 그대로 방치할 경우 시력을 잃을 수 있었기에 검진 당일에 수술일자가 잡힐 만큼 긴급한 수술이었다.

수술 전 입원실 배정을 위한 상담을 받을 때, 가족들은 식판 이동 화장실 출입 등을 고려해 보호자가 있는 병동으로 가기를 원했지만 나는 간호통합병동을 고집했다. 70세가 넘은 부모님이 40세가 넘은 아들의 간병을 위해 병실에 있는 것은 우리나라 정서상 보기 좋은 일은 아니었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보호자의 병실에 상주하지 못하고, 식사, 진료실 이동 등의 전 과정이 병원 직원을 통해 이루어지는 간호 통합병동에서의 생활이 “작은 독립생활”이 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나 혼자 산다고 늘 말씀드렸었죠? 간호통합병동으로 가겠습니다.”

어렵게 꺼낸 말도 아니었고, 오래전부터 “기회가 된다면 가족이 지켜볼 수 없는 곳에서 혼자 지보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대단한 결심도 아닌 무덤덤하게 아무렇지도 않게 한 말이었다. 그러나 여기에서부터 늘 있었던 갈등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장애를 가진 몸으로 어떻게 병실에 혼자 있을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다리도 안 좋고 다른 곳도 아니고 눈 수술해서 제대로 보이지도 않을 텐데 왜 (혼자 있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거냐? 그러다 화장실에서 넘어지기라도 하면 그땐 어떡할래? 넘어져서 다른데 다치기라도 하면 또 고생이고, 병원에서 부모 욕해. 장애 가진 사람을 보호자 없는 병실에 두었다고 말야. 좋은 말로 할 때 식구들 의견대로 해.”

다른 때였다면 그 말에 조용히 가족들의 의견을 따르겠다고 이야기를 했겠지만, 웬일인지 그 때는 그렇게 하면 안 될 것 같았다. 뭔가 확실하게 말을 하지 못하고 식구들의 의견을 따라 부모님과 함께 입원 생활을 한다면 한동안은 독립 이야기를 꺼내기가 어려울 것 같았다.

“화장실의 경우는 장애인 화장실을 이용하면 문제가 없죠. 거기는 비장애인 화장실에 비해서 넓지 않아도, 손잡이가 설치되어 있으니 이동 중 넘어질 위험이 크게 줄어드는 곳이고, 상식적으로 장애인 화장실인데 보통의 화장실처럼 미끄러울 수 있겠어요? 그리고 다리를 다친 것이 아니고 눈을 수술하는 건데, 침대에 오르내리는 게 뭐가 어렵나요? 지금 부모님과 내 나이를 보면, 내가 부모님을 간호해야 할 나이에 왜 부모님이 나를 간병해야 하는데? ‘우리 아들 장애인입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이해는 하겠네요. 나도 다 계획이 있고 이번에는 가족들이 고생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에 이렇게 하자는 겁니다. 나중에는 나가 살아야지요.”

십여 년 전부터 다리 코 눈 등을 다쳐 수술을 하거나 입원을 고려하게 되면서, 장애인 화장실 덕을 많이 본 터였다. 특히 미끄러운 것에 취약한 내 다리의 상태와 수술 후 생길 시력 저하 등도 고민해야 할 숙제였지만, 물걸래로 청소하는 시간을 피하고 이동시에 속도만 조절한다면 크게 가족들이 필요한 사항은 없을 것 같았다.

마트 한 번을 갈 때도 장애인 콜택시로 바로 접근이 가능한지, 비가 올 때 택시 승하차에 문제는 없는 공간인지, 지하철역과 연계되어 있는 곳인지 등을 종합적으로 생각하고 안전을 최우선으로 움직이고 있었기에 입원을 앞두고 여러 가지 고려 사항을 생각해 본 것이었다. 독립 역시 “나 오늘 속 안 좋아서 밥 안먹어”처럼 쉽게 생각하고 한 말은 아니었던 것이다.

“식구들이 생각한 것보다는 잘 하고 돌아올 수 있으니 괜히 걱정하지 마세요.”

마지막 한 마디를 끝내고 나자 “네 생각이 그렇다면 잘 해봐라”는 대답이 들어왔다. 그렇게 약 5일 간의 입원기간 동안 마음만은 편하게 지낼 수 있었다.

퇴원 후 “평소와는 다르게 내 말을 바로 들어준 이유가 있느냐고 퇴원 후 물어보니 “네가 그렇게 애기하고 나서야 네 뜻을 알겠더라”고 했다.

더 이상 가족들에게만 머물러 있지 않겠다는 뜻이 식구들에게 전달된 때이기도 했다. 이 일을 계기로 나의 독립에 대한 애기들이 본격적으로 오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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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석 칼럼니스트 집에서만 살다가 43년 만에 독립된 공간을 얻었다. 새콤달콤한 이야기보다 자취방을 얻기 위한 과정에서 겪었던 갈등들과 그것들이 해결되는 과정이 주로 담으려 한다. 따지고 보면 자취를 결심하기 전까지 나는 두려웠고, 가족들은 걱정이었으며, 독립 후에도 그러한 걱정들은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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