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18일, 세바다와 한국후견·신탁연구센터의 주최로 ‘제1회 신경다양성 포럼’이 열렸다. 프로그램 중에는 세바다의 1년을 돌아보고 비평하는 세션이 있었다. 그곳에서 우리 단체(세바다)의 모 활동가께서 뼈아픈 비평을 하셨다.

“신경다양성 운동은 (중략) 신경다양인 친화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같이 활동하는 활동가들이 단체 활동으로 인해 일상생활과 생업을 못 할 정도로 시간을 빼앗기지 않아야 하며, 업무가 소수의 활동가들에게 과중돼 있지 않아야 합니다. (중략) 활동가들이 지치는데 활동을 계속하겠다고 하면 신경다양성 운동은 그 결실을 맺기 힘들어질 것입니다.”

단체의 대부분 업무가 소수 활동가들에 쏠려있는데, 그 활동가들이 일상생활과 생업에 종사하지 못할 정도로 업무가 지나치게 많다면 문제가 된다. 세바다는 열악한 재정 상황으로 인해 상근활동가 없이 전원 비상임 상임활동가(단체 운영의 중요 사항을 담당하나 정기적인 출퇴근과 수입이 없는 활동가)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단체가 활동가의 생계를 책임져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생업에 투자할 시간까지 빼앗는 것은 과도한 처사이며 어쩌면 ‘착취’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과중한 업무가 왜 소수의 활동가에게 전가되는가? 내가 대표를 맡은 단체인 세바다의 상황을 예로 들어보자.

저명한 정신장애 활동가 주디 챔벌린에 따르면 당사자 단체의 운영 모델은 분리모델과 지지모델, 파트너십 모델로 나누어진다. 분리모델은 조직의 운영을 오로지 당사자만이 주도하는 모형이고, 지지모델은 당사자와 비당사자의 동등한 위치를 전제로 하여 비당사자의 참여를 허용하는 모형이다. 파트너십 모델은 전문가(비당사자)와 당사자가 함께 일하는 모델이다.

주디 챔벌린은 파트너십 모델이 당사자에 대한 전문가의 간섭과 통제를 용인한다는 이유로 비판하면서 분리모델을 ‘진정한 대안’으로 꼽았다(배진영, 〈[주디 챔벌린의 On Our Own] 정신장애 당사자단체에서 비당사자 활동가의 역할은 무엇일까?〉, ≪마인드포스트≫, 2022.03.04.).

세바다의 경우는 회칙이나 운영규칙 상으로 비당사자의 참여를 막지 않는다. 그러나 현재 운영위원(활동가)의 100%가 당사자로 이루어져 있다. 조직의 설립부터 운영·활동·미래 전망 제시까지 모두 당사자가 주도하니 분리모델의 훌륭한 예시처럼 보인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세바다는 정신장애·자폐성 장애·지적장애 당사자들이 모인 단체이다. 그러나 활동가들의 면면을 보면 정신장애와 ADHD 당사자 활동가들이 활동 전반을 주도하고 있다. 대표와 부대표가 정신장애 당사자이고(두 사람은 법외정신장애인이기도 하다), 실무를 담당하는 활동가 역시 ADHD 당사자가 과반수를 차지한다. 자폐성 장애와 지적장애 당사자의 참여는 실질적으로 많지 않으며, 활동 역량도 크지 않다.

주디 챔벌린이 말한 비당사자 활동가와 당사자 활동가 간의 권력 불균형이 정신장애 및 ADHD 당사자 활동가와 자폐성 장애 및 지적장애 당사자 활동가 사이에서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각 영역의 당사자들을 모두 아우르는 ‘통합된 신경다양성’을 주창했던 세바다와 대표인 나로서는 뼈아픈 결과이다.

세바다에서는 대표와 부대표, 일부 활동가(앞에서 말한 정신장애·ADHD 활동가)들이 거의 90% 이상의 업무를 처리하고 있다. 그 이유는 업무 능력과 역량이 정신장애·ADHD 활동가들에게 편중되었기 때문이다. 발달장애 활동가는 업무 처리가 느리고 서툴며, 정신장애 활동가는 업무를 빠르게 잘 처리하니 업무를 잘하는 활동가에게로 업무가 편중된다. 업무가 편중되면 해당 업무를 처리하는 활동가의 권한이 더욱 강화될 수밖에 없다.

발달장애인 활동가가 절대적으로 적은 것 역시 큰 문제다. 현재 세바다에서 발달장애인 활동가는 재적 5명에 불과하고, ‘상임활동가’로 부를 수 있을 만큼의 업무를 배정받는 활동가는 단 한 명에 불과하다. 심지어 지적장애를 가지고 있는 활동가 역시 단 한 명이다. 한국은 발달장애 당사자 운동의 역사가 길지 않은 데다가 정신장애에 비해 당사자 활동가·지원가 제도가 많이 활성화되어 있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발달장애인 활동가 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권한과 책임의 형식적(수적 불리), 실질적(업무 편중) 불균형은 결국 일부 당사자만 과대표되는 결과를 불러오며, 발달장애인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일에도 한계가 생긴다. 이는 발달장애인 당사자에게도, 세바다 단체에도, 신경다양성 운동에 있어서도 큰 문제가 된다. 그렇다면 편중된 권력을 동등하게 되도록 하는 것이 세바다와 신경다양성계의 커다란 과제로 남게 된다.

해결 방안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것들을 몇 가지 들어보겠다. 우선 의결권의 재설정이 있다. 운영위원 누구나 1인 1표로 정해진 의결권을 발달장애인 활동가에게 2표를 부여하는 등 형식적으로 권력을 재구성해볼 수 있다. 이는 나머지 당사자에 대한 역차별로 이어질 수 있으니 신중해야 한다.

다음으로 업무 분배를 여유롭게 해야 한다. 발달장애인 활동가들에게 너무 크거나 어렵지 않은 업무를 부여하고, 기한을 충분히 줘야 한다. 그리하여 발달장애인 활동가가 타 당사자 활동가의 도움 없이도 스스로 업무를 처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회칙이나 운영규칙을 개정하여 발달장애 활동가 및 회원의 참여를 보장하는 방법도 있다. 개정 시 발달장애인 우대의 필요성을 타 당사자에게 설득하는 것이 필요하고, 발달장애인이 실질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는 것 역시 중요하다. 장애계에서 자주 언급되는 ‘합리적 조정’을 단체에 실질적으로 도입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모든 과정에서 대표와 임원진의 통렬한 반성이 필요한 것은 당연지사다.

이번 칼럼에서 단체 대표로서 하기 힘들었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그러나 문제를 제기하고 밝히는 과정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비합리와 불평등은 두려움을 먹고 자란다. 세바다를 포함한 모든 당사자 단체원들의 용기가 장애계를 바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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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회로가 비장애인과 다른 신경다양인들은 어떻게 살까? 불행히도 등록장애인은 '발달장애인' 딱지에 가려져서, 미등록장애인은 통계에 잡히지 않아서 비장애인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 신경다양인이 사는 신경다양한 세계를 더 많은 사람들이 상상하고 함께할 수 있도록 당사자의 이야기를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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