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인들의 '밥 한 끼 먹자'라는 진심 어린 약속을 농담처럼 받아들인다. 특히 장애를 가지고 있지 않은 지인들과 장애를 가지고 있는 나의 밥 한 끼는 으레 하는 인사치레로 받아들인다.

나는 그들이 어렵다.

변명거리를 만들어보자면 어렸을 때부터 비장애인과 친구가 된 경험이 거의 없다시피 해서인지 알 수 없는 거리감이 한몫한 것 같다. 얼마나 어려워하고 거리를 두었으면 오래 만난 또래 비장애 지인들에게 까지도 자꾸만 선생님, 선생님 하면서 극존칭, 극존대을 하려 하니 나와 편하게 대화를 하기 어렵단다. 

나에겐 꾸준히 연락하고 지내는 비장애 지인은 다섯 손가락에 들어갈 정도로 많지 않지만 전부 다 복지기관에서 처음 만났다. 그러다 보니 선생님이라는 호칭에 매우 매우 익숙해졌다.(회사에서 맺은 인연은 스쳐 지나가는 바람일 뿐)

코로나19가 세상을 덮치기 전, 장애를 가지고 있지 않은 지인이 밥 한번 먹자고 연락을 해왔다. 내 또래인 지인은 장애인 복지관에서 사회복지사로 근무하고 있었다. '네 좋아요.' 하며 반갑게 약속 시간을 잡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 좋으련만 이때 나는 의례 하는 인사치레로 받아 들었다. 

장애를 가진 나와  단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복지관 밖에서 만난다? 나와 같은 수많은 장애 당사자를 복지관에서 매일 보시는 분이 어째서?

'밥 한번 먹자'라는 사회복지사분의 말 한마디에 생각이 깊어지다 못해 땅굴을 파고 내려간 나는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밥 한 끼 약속은 성사되지 않았다.

 

며칠이나 지났을까? SNS 피드에 밥 사진이 올라왔다. 알고 지내는 발달장애 당사자분과 내게 연락을 해왔던 사회 복자사분이었다. 그들은 밥 한 끼에 티키타카 하는 편한 사이가 되어 있었다. 여러 가지 감정이 내 마음을 휘감았다.

'맙소사 그럼 그때 진짜로 밥 먹자고 한 거였단 말이야?' 사실 나도 그분과 밥 한 끼 하고 싶었다. 내 장애 이야기, 취업에 대한 고민, 앞으로 어쩌면 좋겠느냐는 말과 같이 뻔하고 당장 해결도 안 될 질문들만 쭉 늘어놓기보다는

'복지관 일 힘드시죠? 제가 사회복지단체에서 홍보 서포터즈로 활동하잖아요. 복지관에서 일하시는 분들 고생하신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힘내세요.'

라는 심심한 위로(?)의 말도 건네고, 장애가 있건 없건 비슷한 나이 또래끼리 공감할 수 있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이후 코로나19가 우리의 일상을 덮치기 전까지 SNS에는 장애를 가지고 있는 지인과 장애가 없는 지인의 밥 약속이 성사됨을 알 수 있는 게시물이 종종 올라왔다.

언젠가 참석한 오프라인 모임에서 나이가 엇비슷해 보이는 장애 당사자와 비장애인이 서로 형, 동생하고 있음을  목격(?) 하게 되었다. 내 귀를 의심할 정도로 신선한 충격을 안겨다 주었다. 곧이어 매우 부러움의 감정이 앞섰다. 

나는 오랜 시간의 만남을 가졌어도 내 또래들에게도 '선생님' 하며 극존칭을 쓰는데, 이런 나의 태도가 무척이나 불편하다는 성화를 듣고 나서야 '누구누구님'이라는 호칭으로 정말 어렵게 바꿨는데..,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장애인과 비장애인도 밥 약속을 잡을 수 있는 편한 사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지인이 밥을 사면 내가 커피를 사고, 다음 만남 때는 내가 밥을 사는 것, 그들의 밥 약속은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희생이 아니었다. 

그들은 장애가 있는 나를 불편해하지 않았다. 불편해한 건 나였다. 혹시나 나를 불편해하지 않을까? 하는 전혀 하지 않아도 될 염려로 내가 먼저 벽을 쳤었다.

나는 지나가는 말로 하는 '조만간 밥 한 끼 먹자!'라는 헛갈리게 만드는 약속은 별로 달갑지 않다. 나는 진심으로 받아 들었는데 상대방은 딱히 할 말이 없어 그냥 해본 소리였다면? 아, 이 뻘쭘하고도 난감한 상황, 상상만 했을 뿐인데 주변에 쥐구멍이 있다면 들어가고 싶다.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 오미크론의 확산세로 ‘밥 한끼 먹자’ 라는 말은 정말 인사치례가 되고 말았다. 하루빨리 코로나19 상황이 많이 누그려져서 나와 같은 장애 당사자 지인이건, 비장애 지인이건 구분 짓지 않고 그들과 맛있는 밥 한 끼 나누고 싶다. 

모두가 마스크를 벗고 맘 편히 하하 호호하며 밥을 먹을 수 있는 그날을 위해 방역수칙을 철저히 지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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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리 칼럼니스트 평범한 직장인이다. 어릴 때부터 글을 꾸준히 써왔다. 꼬꼬마시절에는 발달장애를 가진 ‘나’를 놀리고 괴롭히던 사람들을 증오하기 위해 글을 썼다. 지금은 그런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해 글을 쓴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발달장애 당사자로 살아가는 삶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걸 보여주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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