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내가 썼던 [장애인 고려없는 아파트 승강기 교체 공사]라는 글에서 알 수 있듯이, 나는 정말 끝까지 대처할 거라고 마음을 먹었다. 김해의 선례를 얘기하며 법적으로 어쩌고 하니 우호적인 태도로 말을 하긴 했지만, 입주민 대표 회의를 2월에 할테니 기다려 달라고 했었다.

차일피일 미루는 느낌이 계속 들어서 몇 번 전화로 관리사무소장을 압박을 했다. 그랬더니 2월에 한다던 입주민 대표 회의를 1월에 임시회의를 열겠다고 말을 했다. 그때 나에게 참관을 하면서 입주민 대표들에게 의사표현을 하라고 했다.

나는 그 임시회의에 입주민 대표들에게 조금이라도 어필할 수 있을만한 자료와 나의 요청사항을 문서로 작성했다. 지난 11월 김해의 휠체어 장애인 분은 자립홈 거주비(거의 없다고 했다)와 생활비, 피해보상비를 받았다고 들었다. 나는 아직 피해를 본 것도 없고, 생활비까지는 아닌 것 같아서 한 달 동안 있을 방의 월세만을 요청할 생각이었다.

입주민대표들에게 전달된 나의 요청서와 자료 문서. ⓒ박혜정

1월19일에 입주민 대표 임시회의가 열렸고, 내 의견을 작성한 문서가 그 전날, 대표들에게 전달되었다. 나는 참관을 하면서 보니 내 의견에 우호적인 대표가 한 2/3이고, 1/3 정도는 내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대표들인게 보였다.

우호적이지 않은 대표들의 주장은 역시 나도 우려했던 부분을 말하고 있었다. 나의 입장과 고충은 분명히 공감하고 요구 사항을 해주고 싶지만, 우리 아파트에 거동이 불편한 다른 사람들까지 요구를 한다면 아파트 재원의 문제가 있으니, 당신만 어떻게 해줄 수 없다는 게 요지다.

​나는 처음에는 나처럼 아예 전혀! 거동이 안 되서 원천적으로 이동이 차단되는 사람과, 부축을 받거나 어렵지만 거동이 되는 사람과는 다르다는 주장을 했다.

근데 사실 이런 문제를 겪으면서 생각해보니, 나 같은 사람 뿐만 아니라 힘들게 거동을 하는 사람이라도 십 몇 층 이상에서 왔다 갔다의 문제는 아예 안되는 것까지는 아니지만, 힘든 게 마찬가지고, 이건 앞으로 함께 더 고민해봐야 할 부분인 것 같다.

​1월 19일 나의 의사를 피력하고 집으로 왔고, 다음 날 관리사무소장이 전화가 와서 하는 말은, 역시나 결론이 나지 않았으니, 또 기다려 달라였다. 설날 연휴가 지나고 2월 8일에 원래 입주자대표회의에서 다시 논의를 하겠다고 했다.

나는 그 전화를 받고 화가 났지만, 결론이 나지 않았다는데 어쩔 수가 없어서 알았다고 하고 끊었다. 근데 하루 이틀 생각을 해보니 그냥 알았다고 할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딱! 언제까지 기한을 정해서 그 날짜까지 답을 안주면 나도 법적인 조치를 시작하겠다고 엄포를 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내용증명을 띄울까 하다가 문자나 메일 등의 문서만으로도 내용증명에 준하는 효력이 있다고 해서 관리소장에게 메일을 보냈다.

2월 8일 회의 후, 다음 날 9일까지 답변을 주지 않으면, 공사중지 가처분 신청과 피해 소송 절차를 바로 시작하겠다고 메일을 보냈다. 그 메일을 보내고, 2월 9일 아침에 관리 소장의 전화가 왔고, 저녁에 우리 집에 대표 회장과 감사, 소장이 오겠다고 했다. 어떤 답변을 가지고 올까 걱정 반 기대 반이었고, 남편에게 일단 알렸다. 우리 신랑은 그래도 내가 믿을 수 있는 내 편이기 때문에ㅋ, 옆에서 말 좀 잘 거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퇴근을 하고 와서 그들을 기다렸고, 와서 한다는 말이 대표들끼리 계속 의견을 조율했지만, 당신만 어떻게 해주기는 힘들다는 게 대표들의 의견이고, 결국 결론이 안났다는 얘기를 계속 돌려서 말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자기들도 너무 힘들다는 말을 반복했다.

아무런 소득 없는 말을 듣고 있던 남편이 욱! "그래서 결론이 안 된다는거 아닙니까?! 계속 쓸데없는 말 하지 마시고요, 알겠으니까 저희는 법적인 절차에 들어갈거구요, 이미 다 준비해놨으니까 내일 바로 접수하고 진행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최고의 장애인 신문에 우리 와이프가 지금 칼럼니스트로 글을 쓰고 있고, 우리 큰형님이 서울의 신문사에 계십니다. 이 문제를 언론에 공론화도 시킬 겁니다!!" 언성을 좀 높히며 말을 했다.

그랬더니 말을 하던 대표 회장과 감사가 당황을 하면서, '아니 사장님, 진정하시고요, 이러 저러한 상황을 말씀드리는 건데, 왜 화를 내십니까, 저희 말도 좀 들어보십시오~'라고 했다.

남편은 계속해서 "내가 자영업을 하는데 무슨 공사든 구청에 민원이 들어오면 업체에서 해결을 하고, 요즘은 법이 무서운 세상이다, 당신들도 지금 우리 와이프가 민원을 넣은 건데, 그에 대한 해결을 해야지, 당신들 힘든 걸 왜 우리한테 얘기하느냐, 우리 와이프 출근 못해서 직장에서 짤리면 누가 책임질거냐! 우리가 대단한 걸 해 달라고 하느냐, 한 달 월세만 해 주라는 거 아니냐!!!"

나중에 얘기를 들으니 일부러 막 언성을 높이며 말을 했다는 남푠~ 고마웠다~ 어쨌든 그로 인해 다음 날 관리소장이 월세에 해당하는 돈을 입금하겠다고 전화가 왔다. 그리고 드디어 입금이 되었다.

드디어 한 달 월세를 받아내다. ⓒ박혜정

나의 요구사항은 한 달 동안의 월세였으니, 내가 원하는 부분이 해결은 된거다. 근데 내가 월세를 받아냈다는 사실이 중요한 게 아니라, 다른 장애인 분들이 겪는 어려움을 해결까지는 아니어도, 김해 분처럼 나도 좋은 선례를 남기고 싶었다. 도움이 조금이라도 될 수 있도록 말이다.

나는 정말 법적인 조치까지도 생각했었기 때문에, 관리사무소와 입주민 대표들과의 전화나 대화 내용을 녹음도 일일이 다 해 놨었고, 내용증명에 준하는 문자메세지, 메일로 증거를 일부러 남겨 놓기도 했었다. 또, 변호사 상담도 여러 번 했고, 실제로 공사중지 가처분 신청 서류와 소송 서류를 어느 정도 준비해 놨었다.

그리고 알아보니 법률구조공단에서 소득 요건은 있지만, 중증장애인의 경우 무료 변호사 선임을 해준다고도 했다. 끝까지 대처해서 사회적 약자가 계속 피해를 받고만 있는 게 아니라, 약자도 정당한 권리를 요구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나 혼자의 힘으로는 절대 안되겠지만, 앞으로 많은 분들이 용기를 내셔서 부딪혀보고 노력을 한다면, 분명히 조금씩이라도 바뀌는 세상이 될 거라 희망해 본다.

내가 준비했던 법적인 조치를 위한 신청 서류들. ⓒ박혜정

※ 혹시 똑같은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분들이 계신다면, 제가 준비했던 모든 자료들을 공유할 생각이 있습니다. 미약한 힘이지만 도움이 된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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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정 칼럼니스트 글 쓰는 휠체어 여행가, 현혜(필명), 박혜정입니다. 1994년 고등학교 등굣길에 건물에서 간판이 떨어지는 사고로 척수 장애를 입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29년 동안 중증장애인으로 그래도 씩씩하고 당당하게 독립해서 살았습니다. 1998년부터 지금까지 혼자, 가족, 친구들과 우리나라, 해외를 누비던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또, 여성 중증 장애를 가지고도 수많은 일을 하며 좌충우돌 씩씩하게 살아온 이야기를 통해 누군가에게 용기와 희망을 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전)교육공무원으로 재직했고, <시련은 축복이었습니다>를 출간한 베스트셀러 작가, 강연가, 글 쓰는 휠체어 여행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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