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2월에 친구, 동생과 갔던 대만을 10월에 또 한번 갈 기회가 생겼다. 아니 그냥 내 마음대로 갈 구실을 만들었다는 게 맞겠다. 휠체어 배드민턴을 운동 삼아, 취미 삼아 2003년부터 하게 되었는데, 대만에서 휠체어배드민턴국제대회가 열린다는 것이었다.

​나는 국가대표가 될 실력도 안되었지만, 우리 동호회에서 2명이 국가대표로 나간다고 했다. 나도 따라가면 안되냐고 했더니 공식적인 일정에 끼워서 같이 갈 수는 없고, 정 오고 싶으면 나보고 따로 비행기와 숙소를 끊고 오든지 알아서 하라고 했다. 까짓것 그것 하나 못할까봐?난 약간의 오기와 즉흥적인 여행 지름신으로 무작정 티켓을 끊었다.

​국가대표 선수와 코치, 감독들은 인천에서 가는 일정이었고, 나는 나혼자 김해에서 가는 비행기를 타고 따로 갔다. 타이페이 공항에 내려서도 나혼자 국제대회가 열리는 체육관으로 물어 물어 어찌 찾아갔다. 심각한 길치와 방향치인 내가 어떻게 그리 용감하게 잘 찾아 갔는지 지금도 의문이긴하다.

​도착한 첫 날은 체육관을 찾아가서 우리나라 선수들을 열심히 응원했고, 시합이 끝난 뒤 저녁을 같이 먹고 나는 나홀로 여행을 하기 위해 우리나라 선수들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다음 날부터는 혼자 여행이 시작되었는데...

2월에 친구와 동생들과 왔던 곳이 아닌 다른 곳들을 찾아다녔다. 용산사로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탔던 나는 휠체어를 타고 있는 대만의 한 여성장애인을 보았다. 말을 걸어볼까? 약간 망설이고 있는 찰나, 그쪽에서 먼저 말을 걸어왔다.

​중국어로 쏼라쏼라...ㅋㅋ 알아들을 수 없어서 ‘아이 돈 노’라고 웃으며 내가 영어로 얘기하자, 그 여자분이 '아~'하며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 '재팬?'이라고 묻길래 '노, 코리안'이라 대답하고, 나는 그때 가지고 있던 전자사전을 급하게 펼쳐서 찾아보기도 하고, 그 분에게 보여주기도 하며 우리는 짧은 영어와 온갖 바디 랭귀지를 동원해 대화를 이어갔다. 그 여자분의 이름을 한자로 적어 보여줬는데, 한자는 모르겠고, 그냥 루시(Lucy)라고 부르라고 했다.

웃는 모습이 너무 선했던 대만 장애인, 루시와 타이페이역에서. ⓒ박혜정

루시는 참 마음이 열려있는 사람인 것 같았고, 웃는 인상이 순박하고 너무 착해 보였다. 대화가 원활하지는 않았지만, 신기하게도 우리는 얘기가 참 잘 통하는 듯했다. 내가 혼자 여행 온 걸 알고, 얘기하다가 내가 바다에 가고 싶다고 이야기를 하니, 루시는 자기 집에 같이 가서 밥을 먹고 바닷가에 나를 데리고 가주겠다고 했다.

​나는 루시 집에 따라갔고, 진한 국물에 고기와 국수가 있는 우육면을 줬는데, 대만 맛이 나긴 했지만 이렇게 초대를 해주고 식사까지 차려준 성의가 너무 고마워 억지로 맛있는 듯 먹었다. 먹고 나서는 루시가 가자는 대로 따라갔다.

​사실 그 바닷가가 어디인지 지금도 정확히 잘 모르겠지만, 지하철을 타고 한 40분 넘게 갔던 걸로 기억한다. 사진을 찾아보니 타이페이 북서부에 있는 단수이였던 것 같다. 그 바닷가에 가서 루시와 좀 둘러보고 있으니 루시가 연락을 해서 또 다른 남성 장애인 한 분이 왔다. 그 남자분은 명함을 줬는데, 대만척수장애인협회 이사였다.

대만 여행 중 만난 대만척수장애인협회 이사와 함께. ⓒ박혜정

나도 척수장애인이라 더 반가웠던 것 같고, 우연히 만났지만 이것도 소중한 인연으로 기억되는 만남을 가졌다. 전동휠체어 둘, 수동휠체어 하나인 우리는 바닷가를 이리저리 다니며, 군것질도 하고 재밌는 오후 시간을 보냈다. 루시는 저녁이 되기 전에 나를 타이페이 역으로 데려다줬고, 우리는 연락처를 주고받고 아쉬운 이별을 했다.

​홍콩에 이어 대만으로의 나홀로 여행을 해보면서 비장애인들은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계단이나 턱이 있는 가게에 들어가서 뭐라도 하나 살려고 하면 손이 닿지 않는 문을 열기 위해 손을 뻗는 것부터가 나에게는 도전이다. 안되면 지나가는 사람 아무나에게 말을 걸어 도와달라고 해야한다.

버스나 지하철을 한번 타기 위해서도 용기를 내어 아무나한테 도와주세요!라고 말을 해야한다. 부끄러워서 겁이 나서 가만히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 어느 누구도 먼저 도와주지 않기 때문이다.

​혼자 하는 여행은 휠체어를 타고 만나게 되는 환경의 장벽들을 나 혼자 어떻게든 해결해 나가야 하는 과정이었고, 그런 작지만 새로운 도전을 하나 하나 해보면서 자신감이 조금씩 쌓여가는 시간이었다. 나 스스로에 대한 대견함이 더해지면서 자존감이 올라가고 나 자신을 더 아끼고 사랑하게 되었다. 별거 아닌 여행이었지만 나는 너무 너무 자유로웠고 행복했다.

홀로 대만 여행 중 추억을 남기며. ⓒ박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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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정 칼럼니스트 글 쓰는 휠체어 여행가, 현혜(필명), 박혜정입니다. 1994년 고등학교 등굣길에 건물에서 간판이 떨어지는 사고로 척수 장애를 입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29년 동안 중증장애인으로 그래도 씩씩하고 당당하게 독립해서 살았습니다. 1998년부터 지금까지 혼자, 가족, 친구들과 우리나라, 해외를 누비던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또, 여성 중증 장애를 가지고도 수많은 일을 하며 좌충우돌 씩씩하게 살아온 이야기를 통해 누군가에게 용기와 희망을 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전)교육공무원으로 재직했고, <시련은 축복이었습니다>를 출간한 베스트셀러 작가, 강연가, 글 쓰는 휠체어 여행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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