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곳이 한 군데도 없는데 내가 사는 동네에서 가장 큰 병원에 다녀온 이후 중학생이던 나에게 프리패스 카드 한 장이 생겼다.

병원에서 검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엄마와 나는 병원 정문 앞에서 출발하여 지하철역으로 향하는 서틀버스에 올라탔다. 버스에 함께 탄 아주머니 한분이 엄마에게 물었다.

"어린 학생이 어디가 아프데요?"

"검사만 받았어요."

나는 아주머니가 왜 그런 질문을 하는지 의아했다. 무엇보다 나는 아픈 곳이 한 군데도 없는데 왜 병원에 간 건지 궁금했다. 엄마는 왜 아주머니의 질문에 말을 아끼신 건지도 궁금했다.

엄마는 나에게 오늘은 학교는 물론이거니와 방과 후 교실에도 가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다. 나는 방과 후 교실에서 몇몇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고 있던 터라 가고 싶지 않았는데 잘됐다 싶었다. 학교를 땡땡이 칠 생각에 잔뜩 신나 있는 나와 달리 엄마 눈이 요즘 들어 굉장히 슬퍼 보였다.

혹시 내가 병원에서 수학 문제를 잘 풀지 못해서일까? 나는 왜 학교에서 풀어야 할 수학 문제를 병원에서 푼 것일까? 엄마에게 질문하고 싶은 게 많았지만 묻지 않았다. 이 질문을 하면 요 며칠 사이 그렁그렁해진 엄마의 눈에서 눈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질 것만 같았다.

병원에 다녀온 지 두 달 후쯤 엄마로부터 카드 한 장을 받았다. 그 카드로 지하철을 공짜로 타고 부모님께 용돈도 더 받게 돼서 좋다며 한동안 희희낙락 거리며 다녔다.

얼마나 지났을까? 지하철에서 카드를 꺼내는 나를 보고 몇몇 아이들이 수군대고 있음을 알아챘다. 샘이 나서 일까? 자신들은 현금을 내야 하는데 나는 내 이름과 사진이 새겨진 카드를 보여주면 프리패스였으니까!

그제야 내 손에 들린 카드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카드에는 휠체어 탄 사람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고 그 옆에는 복지카드라고 쓰여 있었다. 하지만 당시 나는 복지카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지 못했다.

마음만 먹으면 우주도 정복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중학생이던 나에게 복지카드는 용돈을 더 받게 해 주던 마법과 같은 카드였을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적어도 카드의 진실을 알기 전까지는...<3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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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리 칼럼니스트 평범한 직장인이다. 어릴 때부터 글을 꾸준히 써왔다. 꼬꼬마시절에는 발달장애를 가진 ‘나’를 놀리고 괴롭히던 사람들을 증오하기 위해 글을 썼다. 지금은 그런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해 글을 쓴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발달장애 당사자로 살아가는 삶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걸 보여주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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