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식개선 교육을 진행하고 있는 필자. ⓒ최충일

요즘은 인권교육들이 다양하게 파생되어 법정의무교육으로 자리잡고 있다. 장애인식개선 교육이나 성희롱 예방교육, 직장 내 괴롭힘 예방교육 등이 그것이다. 공무원, 사기업 직장인, 학생 등 너나 할 것 없이 최소한 1년의 한 번씩은 들을 수 밖에 없도록 국가가 나서서 제도화 시켰기 때문이다.

3년 전 <조효제 교수의 인권 오디세이> 읽으며 조효제 교수님을 꼭 내가 근무하는 복지관 직원교육 강사로 모시고 싶었던 기억이 난다. 그 책은 나에게 인권의 역사, 맥락, 시대적 변화 등이 잘 정리된 인권의 바이블과도 같다.

지금으로 부터 20년 전, 그러니까 내가 20살 때는 인권이라 하면 법을 잘 지키고 윤리적으로 흠이 없는 상태나 그 것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모든 것이 인권이라 생각했다. 전혀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 누구도 인권에 대해서 설명해 주는 사람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명쾌하지 않았다. <조효제 교수의 인권 오디세이>를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인간답게 살 권리’ 또는 ‘인간답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설명한다.

세계인권선언문을 봐도 감흥 없던 것들이 나의 삶과 연결 했을 때 ‘나의 권리는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된 순간부터. 휠체어에 앉은 내 몸에 권리는 무엇인가. 남들에게 의지할 수 밖에 없는 일상 속에 있다고 믿었던 특수학교 다니던 유년기와 지금의 나는 그 차이를 경험하면서 스스로에게 질문하던 것들이다.

그런데 그 질문의 대상이 내가 아닌 타자, 넓게는 지역사회라고 한다면 나의 권리에 대한 질문에 대답은 그저 메아리처럼 돌아오고 모든 문제는 나에게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장애인 인권도 마찬가지다. 2001년 오이도역 리프트 추락 사고 이후 장애계는 쉬지 않고 저항했다. 그 저항은 인권. 즉 인간답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아닌 우리 사회에 묻는 행위들이라고 보여진다.

지난 12월 3일 공덕역 인근에서 투쟁하는 장애인 단체.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12월 3일은 UN이 정한 세계 장애인의 날이다. 에이블 뉴스에서도 보도한 바와 같이 <‘세계장애인의 날’ 절박한 장애인들 밖으로>라는 제목의 기사를 볼 수 있다. 장애인들이 밖으로 나가는 것이 특별한 것이 아님에도 제목과 같이 쓴 이유는 단순히 ‘밖으로 나갔다’를 넘어서 ‘나가서 무언가를 했다’ 포인트다. 매년 으레 있는 행사처럼 지하철과 엘리베이터, 시청 등 앞에서 농성하던 활동들이 요즘은 SNS와 유튜브를 타고 장애혐오를 가중시키는 것들로 재가공되고 있다.

관련 보도자료 “장애인단체 지하철 시위.."이동권 보장하라" 댓글 갈무리. ⓒ최충일

관련 뉴스 기사 댓글만 봐도 옹호 성격의 글들 보다 비판적 성격의 글들이 훨씬 많아졌다는 것을 느낀다. 공공을 위한 지하철 이용시간을 방해하는 행위는 범죄 행위로 볼 수 있다. 그것을 두둔하고 싶지는 않다. 또한 요즘같은 코로나19에 따른 사회적 거리 두기 상황에서는 예민할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애인 활동가나 그 단체들이 매년 버스와 지하철을 점거하고 도로에 눕는 행동들을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필자는 이것을 권리가 아닌 이권의 충돌이라고 본다.

장애인이기 때문에 억압받고 차별 받았던 삶을 앞서 말한 ‘나의 권리는 무엇인가’, ‘내 몸의 권리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있어 허공 속 메아리처럼 돌아왔던 비극적 삶의 축적이 낳은 행동들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이를 인권을 위한 행동이 아닌 이권을 위한 행동으로 바라보는 순간. 충돌이 생긴다.

관련 뉴스 댓글들처럼 우리는 매번 반복된 권리 실현을 위한 질문에 지쳐 밖으로 나와서 무언가를 할 수 밖에 없음에도 이것을 ‘장애인이기 때문에’가 아닌 ‘장애인 때문에’로 변질되고 있는 것이다. 장애인들이 몸으로 보여주는 일련의 투쟁들을 침묵으로, 거짓으로만 일관하는 우리사회 정치가와 행정가들의 모습이 반복된다면 ‘절박한 장애인들 세상 밖으로’라는 기사 제목들 밑으로 달리는 댓글들은 인권이 아닌 이권으로 바라볼 것이고 더 확장될 개연성이 높다.

필자는 ‘역지사지’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장애인을 위한 에티켓, 배려의 이유가 ‘역지사지’가 되어서는 안된다. 또한 장애인들의 저항과 투쟁 또한 마찬가지다. 권리를 이권으로 변질시킨 우리사회 기득권과 자본주의 사회 구조가 낳은 장애혐오다. 편견은 누구나 있을 수 있지만 편견을 넘어 차별과 혐오가 발생된다면 국가는 개입해야 한다. 장애인 차별금지법은 편견이 아닌 차별과 혐오 방지를 위해, 국가가 개입하기 위해 만든 법이다.

에이블 뉴스나 비마이너 등 대안 언론에서만 나오던 장애인 운동 보도자료 들이 메이저 언론사에서 다루고 있는 것은 장애인 당사자의 책임과 동시 인권 운동을 이권 운동으로 만든, 아이러니 하게도 장애인차별금지법을 만든 국가가 나서야 할 타이밍이다. 법에 묶여 영상으로 보여주는 일방적인 법정의무교육을 넘어 지금은 그것을 논해야 할 시기다. 장애계를 넘어 대중 속에서 말이다.

보통의 삶을 말하기에 보통을 경험하기 어려운 한국사회 장애인들. ‘장애인 때문에’ 라는 댓글들은 오늘도 권리가 아닌 이권으로,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가 되고 있는 것 같다. '장애인 때문에'가 아닌 ‘장애인이기 때문에’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모두가 행복한 세상 만들어요’ 라고 쓰여진 어느 장애인식개선 캠페인 문구들 스처지나가며 잊혀졌던 그 문구들이 어렵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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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충일 칼럼니스트 중고등학교를 특수학교에서 졸업, 대학생활 힙합에 빠졌고 지금도 사랑한다. 직장이 있고 결혼하여 아빠가 되었다. 삶의 행복이 무엇인지 탐구하는 중이다. 장애인이 아닌 아빠, 남편, 래퍼, 사회복지사로서 삶의 다양성과 일상을 타이핑할 것이다. 그것은 삶의 행복을 탐구하기 위한 나만의 재료들이다. 지난 2009년 방영된 SBS '스타킹' 프로그램에 출연해 국내에서 가장 빠르고 정확한 랩을 구사하는 '아웃사이더'와 함께 프리스타일 랩 실력을 발휘한 바 있다. 현재는 우리사회 장애인의 희로애락을 담은 본격 유튜브 토크쇼 '수다장인'을 운영하고 있으며, 인권활동가로서 장애인식개선 교육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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