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독일 연방의회 선거 관련 이미지. ⓒ 독일 연방의회 홈페이지(www.bundestag.de)

남자: "이번에 누구 뽑을 지 결정했어요?"

여자: "메르켈"

남자: "메르켈은 이번 선거에 출마하지 않는데요?"

여자: "아니, 뽑는다는 게 아니라"

남자: "메르켈이 그동안 마음에 들었던 거예요?"

여자: "응"

독일 연방의회 선거(Bundestagswahl)가 실시되기 며칠 전, 공원 산책을 하다가 엿들을 대화이다. 중도중복장애가 있어 보이는 중년의 여성과 그녀의 휠체어를 밀고 있는 젊은 남성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의 대화를 자세히 듣진 못했지만 남성의 한 마디가 귓가에 오래 맴돌았다.

"당신의 생애 첫 투표네요."

2021년 9월 26일은 독일 연방의회 선거가 치러진 특별한 날이었다. 쉽게 말해 우리나라로 치면 대통령과 국회의원이 선출되는 매우 중요한 날이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국민이 연방의회 의원들을 직접 선출하고, 선출된 의원들이 연방총리를 결정하는 방식이다.

또한 이 날은 수만 명의 장애인에게 매우 특별한 날이었다.

삶의 전영역에 걸쳐 법적 보호자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는 장애인들, 소위 지적장애인 및 중도중복장애인들은 독일에서 오랫동안 투표에서 배제되었다. 이들이 자신만의 정치적 의견을 가지지 못할 것이며, 이들의 우편투표가 보호자에 의해 조작될 수 있다는 생각이 아주 오랫동안 팽배했던 탓이다.

이에 독일의 최대 장애인복지기구이자 지적장애인총연맹인 레벤스힐페(Lebenshilfe)는 이들의 선거권 배제를 연방정부에 고소하며 오랫동안 싸웠다.

그 결과 2019년에야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법적 보호자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는 장애인을 선거권에서 배제하는 것이 기본법이 규정하는 보통선거 원칙과 차별금지 원칙에 위배된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후 이들에게 선거권을 허용하는 법이 공표되었다. 이로써 약8만5천명의 장애인이 2019년부터 선거권을 갖게 되었다.

또한 연방선거법은 선거권이 있는 사람 중 글을 읽지 못하거나 장애로 인해 투표에 지장이 있을 경우 타인의 지원을 받으며 투표에 참여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독일은 이번 선거 기간 동안 국민이 각 정당의 특징과 공약 등을 보다 쉽게 파악하도록 모든 정보를 쉬운 언어로 제공하는 등의 다채로운 노력을 선보였다. 일례로 레벤스힐페는 선거 및 정당 관련 정보를 쉬운 언어(Leichte Sprache)와 소위 "어려운 언어"(Schwere Sprache)로 제공했다.

2021년 선거 관련 정보를 ‘쉬운 언어‘와 ‘어려운 언어‘로 제공한 레벤스힐페. ⓒ 레벤스힐페 홈페이지(www.lebenshilfe.de)

중도지적장애가 있는 아들을 둔 어느 어머니는 자신은 아들을 대신하여 투표권을 행사하지 않을 거라고 말한 적이 있다. 만약 그럴 경우 자신은 투표권이 2개가 있는 셈인데, 그것은 투표조작과 마찬가지라는 게 그녀의 의견이다.

물론 장애인 당사자의 정치적 견해를 물어보지 않고, 함께 고민해보지 않은 채 보호자가 장애인의 투표권을 행사하는 일은 분명 투표조작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아무리 지적 능력이 제한된 사람일지라도 이들의 정치적 의견을 물어보고, 함께 고민하는 일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장애인도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자신만의 의견이 있고, 자신만의 욕구가 있고, 정치와 정치가를 향한 요구가 있기 때문이다.

2021년 9월 26일 독일에 사는 수만명의 장애인들은 자신의 권리, 생애 첫 선거권을 행사했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번 선거는 "성공적"이었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민세리 칼럼니스트 독한 마음으로, 교대 졸업과 동시에 홀로 독일로 향했다. 독한 마음으로, 베를린 훔볼트 대학교에서 재활특수교육학 학사, 석사과정을 거쳐 현재 박사과정에 있다. 독일에 사는 한국 여자, 독한(獨韓)여자가 독일에서 유학생으로 외국인으로 엄마로서 체험하고 느끼는 장애와 장애인에 대한 이야기를 독자와 공유하고자 한다.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