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혜영 의원이 지난 2020년 9월 28일 약사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장애인의 건강관리 및 보건의료 접근에 있어 비장애인과 동등한 접근성을 가질 권리가 있으며, 질병의 예방과 치료 등 건강한 삶을 위해 의약품의 안정 정보는 유형별 장애인 특성을 고려한 적절한 정보 제공을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법률안은 이달 16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했다. 안전상비의약품에 한하여 용기, 포장 등에 점자, 수화, 음성, 수어 영상 변환 코드를 표시하도록 의무화한 조정안이다.

현행법에는 제59조 기재상의 주의에서 ‘총리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읽기 쉽고 이해하기 쉬운 용어로 정확히 적어야 한다’라고 되어 있다. 여기서 총리령이란 의약품 등의 안전에 관한 규칙을 말하는데, 이 규칙 제59조 의약품의 표시 및 기재사항에서 ‘시각장애인을 위하여 제품의 명칭, 품목허가를 받은 자 또는 수입자의 상호 등은 점자표기를 병행할 수 있다.’라고 하여 점자표기가 권장사항으로 되어 있다.(2008년 개정).

그리고 2019년 개정된 식약처 규정 인 의약품 표시 등에 관한 규정 제9조 권장사항에는 ‘시각장애인의 올바른 의약품 사용을 위하여 안전상비약으로 사용되는 의약품은 제품명, 사용설명서 주요내용 등의 점자표기’라고 나온다.

16대 국회부터 지금까지 수차례나 약사법 개정을 통해 의약품에 점자표기를 의무화하기 위한 법안이 발의 되어 왔으나, 정부는 2008년 권장으로 하고 몇몇 의약품에 점자를 붙이는 이벤트 행사를 하였고, 식약처는 법안으로 되는 것을 대안으로 처리하고자 2019년 권장사항으로 규정을 미리 정하였던 것이다.

점자표기는 시각장애인을 위하여 오남용을 방지하기 위한 것인데, 최혜영 의원 법안은 장애인을 위한 표기에 안전상비의약품 및 식약처장이 정하는 품목을 대상으로 하면서 마스크와 소독제를 포함하도록 하고, 이에 대한 교육과 홍보 조항을 포함하면서 이를 어길 경우 1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하였다.

최혜영 의원 법안에 앞서 발의된 김예지 의원 법안은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와 음성 바코드를 의무화하는 것으로 하였고, 최헤영 의원 법안은 청각장애인을 위한 조치까지로 확대하고 홍보와 교육, 평가 실태조사, 연구 등을 포함한 것이지만, 발달장애인을 위한 쉬운 언어는 포함하지 못했다.

현재 의약품에 점자가 표기된 비율은 27%라는 의견도 있고 94종이라는 주장도 있는데, 상비약만을 대상으로 하느냐, 전체 의약품으로 확대해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는 있으나 몇몇 제품에 한하여 점자가 표기되고 있음은 분명하다.

유럽연합은 ‘Directive 2001 83 EC’ 56a조에서 2005년 10월 30일부터 모든 의약품에 점자 표기를 의무화하고 있다. 미국과 캐나다는 Can-Am Pharmaceutical Braille Standard 규정이 있으며 의약품 회사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형태이다. 북미는 European Bralille Standard를 따르고 있다.

필자는 1997년 독일을 여행하던 중 몸이 아파서 약을 사게 되었는데, 용기에 점자가 표기되어 있는 것을 보고 상당히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이 당시는 의무적으로 점자를 표기해야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대부분의 의약품에 점자가 표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에서는 국어연구원의 지원으로 의약품에 점자표기 실태를 조사한 바 있는데, 표기된 점자가 크기나 점의 간격 등이 표준을 따르고 있지 않고 점자 해독이 어려운 것들이 많았다.

현행법대로 한다면, 국내 제약사들은 국내 판매용은 상비약만 점자를 표기하고, 수출용은 모든 의약품에 점자를 표기하여 수출할 것이다. 국내에는 추가 비용이 들어서 의약품 가격의 상승으로 비장애인에게 불리를 준다고 하면서 수출용에는 그러한 불만을 말하지 않는 것이다.

시각장애인들이 점자가 표기되지 않아 오남용한 사례들을 들어보면, 의약품 구입 당시에는 약사에게 의약품명을 물어서 외워 두었다가 시간이 지나 기억이 흐려지면 오용할 경우가 많기도 하고, 용기가 비슷하면 얼마든지 오용을 하게 될 가능성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이다.

의약품은 아니지만 음료 캔에는 음료라고 점자가 표기되어 콜라인지 사이다인지, 식혜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고 한다. 의약품과 화장품을 혼동하여 잘못 바르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리고 샴푸와 린스는 용기 모양이 같아서 구분할 수 없다.

해열제를 성인용을 먹어야 하는데, 아동용을 먹어서 아무런 효과도 보지 못하고 밤새 끙끙 앓아야 했다는 사람도 있고, 소독약을 눈물약으로 오인하여 눈에 넣었다가 빛 정도는 보던 것을 완전히 실명하게 되었다는 사람도 있다.

영양제를 먹는다는 것이 설사약을 먹었다는 사람도 있고, 구충제를 먹는다는 것이 피임약을 먹었다는 사람, 취사제를 먹는다면서 동물용 발정제를 먹고 혼이 났다는 사람도 있다. 드링크와 농약을 구분하지 못해 마셨다가 응급실에 가서 위세척을 하고 겨우 살아났는데, 만약 죽었다면 눈이 보이지 않아서가 아니라 자살했다고 소문이 났을 것이라고 했다. 주위 시각장애인들에게 어느 정도의 오남용 경험이 있는지 물어 보았더니 지난 10년간 평균 3회 정도가 오남용 경험이 있다는 것이다.

의약품 용기를 제작하면서 점자 형태를 금형으로 표기하게 하면 추가 비용은 거의 들어가지 않을 것이고, 바코드를 삽입하는 것 역시 현재도 하고 있는 것이어서 추가 비용이 들지 않는다.

미국의 경우는 용기를 올려놓으면 아래 바코드를 읽어 음성으로 알려주는 도구를 시각장애인에게 보급하고, 약사가 녹음을 하여 주는데 약간의 비용을 받도록 하고 있기도 하다. 점자 스티커를 부착할 경우 추가 비용이 들 수 있는데, 이 경우는 약국에 점자 스티커 인쇄기를 두도록 하여 시각장애인이 요구할 경우 점자를 표기하여 줄 수도 있다. 조제약의 점자 표기 방법으로 적절한 방식이다.

점자가 명확하게 인식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표준 점자를 사용해야 하고, 바코드를 표기할 경우 위치 등을 시각장애인이 인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바코드는 식약처의 약품정보 사이트에 연결하면 의약품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데, 이러한 앱이 이미 개발되어 있다. 문제는 시각장애인이 바코드가 어느 위치에 있는지 어떻게 알고 정확하게 스마트폰으로 촬영할 수 있는가이다. 바코드의 위치를 일정한 위치에 있도록 규정을 정하고, 시각장애인이 촉각으로 바코드 위치를 알도록 표시를 하는 방식이 필요할 것이다.

상비약은 비교적 가격이 저렴하다. 오히려 전문 의약품이 고가이고 고가이면 제조나 판매자의 수익도 높을 것이다. 상비약만 점자를 표기할 명분이 약하다. 그리고 시각장애인은 영양제, 안질환이나 당뇨 등 관련되거나 후유증으로 나타나는 증세 등에 다양한 의약품을 사용한다. 점자 표기가 일부 의약품에 표기가 의무화되는 것은 환영하지만 상비약 위주로만 표기하도록 한 것은 상당히 유감이다.

청각장애인에게 상비약 의약품을 판매하면서 수어 영상을 일일이 파일로 제공한다는 것이 어려울 것이다. 이를 위한 응용 앱과 연동시켜 줄 콘텐츠 개발과 제작을 장애인단체에 의뢰하는 방식이 타당해 보이며, 시각장애인 의약품 정보 역시 이와 유사하게 제공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그리고 과태료 금액은 실효성이 전혀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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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환 칼럼니스트
현재 사단법인 장애인인권센터 회장,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 고용안정지원본부장을 맡고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아·태 장애인, 장애인운동 현장의 소식을 전하고 특히, 정부 복지정책 등 장애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슈에 대해 가감 없는 평가와 생각을 내비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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