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사이트 동아리 회원들. ⓒ서인환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운동을 하는 세계적인 조직을 가진 동아리로 인액터스라는 단체가 있다. 한국에서는 대학별로 별도의 이름을 가지고 이 단체 활동을 하고 있는데, 가천대학교 5명으로 구성된 리사이트가 그 중 하나다.

가천대학교 소셜벤처 동아리 소속인 ‘리사이트’팀은 이다빈(경영학과 3학년)을 대표로 문정현(한국어문학과 3학년), 신서연(심리학과 2학년), 허동준(경영학과 1학년), 김은결(경영학과 1학년) 등 5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은 “개성의 표현 수단인 패션을 모두가 즐길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걸까?”라는 의문을 품고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다. 시각장애인들은 패션을 접하는 데에 가장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는 점에서 착안했다.

시각장애인들이 불편함을 느끼는 부분을 파악하기 위해 이들은 시각장애인 10명을 인터뷰하였는데, 모두가 즐길 수 있고 이용 가능한 베리어프리를 접목해 보기로 했다. 의식주 중에 시각장애인이 베리어프리가 되지 않는 것이 의복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시각장애인 인터뷰에서 나온 말들은 다음과 같았다.

“시력을 잃기 전에는 빨간색, 흰색 등 밝은 색 옷을 즐겨 입었는데 이제는 안 보이고 또 잘 모르니까 어두운 색 옷만 입게 되더라고요.”

“어떻게 생긴 옷인지 파악하기 어려워서 주변에 물어보는 경우가 많죠.”

“혼자서 마음에 드는 옷을 구매하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것 같아요.”

“손으로 슬쩍 만지는 것만으로는 정확히 어떤 옷인지 구분하기 어려워요.”

실제로 대부분의 전맹 시각장애인들은 가족, 활동지원사 등 주변인의 도움을 받아 옷의 정보를 파악해야 한다. 때문에 옷을 구매하거나 코디할 때 어려움을 크게 느낀다. 그들은 옷의 색깔, 무늬, 핏 등 거의 대부분의 정보들을 주변인의 주관적인 설명을 듣고 상상해야 한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옷을 구매할 때 매번 색깔, 무늬, 가격 등을 일일이 물어보아야 하며 옷을 사서 집에 와서도 옷의 특징을 주변인에게 물어본 뒤 외워야 한다. 옷 코디할 때도 상하의 색이나 디자인이 잘 어울리는지 정하는 데에도 어려움을 겪는다.

리사이트는 직접 의류 개발을 목표로 삼았다. “시각장애인들에게 의류를 다시 볼 수 있는 기회를 선사하자”라는 신념으로 배리어프리 디자인부터 공부하였다고 한다.

리사이트가 개발한 시각장애인을 고려한 베리어프리 양말. 발바닥에 점자를 이용하여 미끄럼방지를 했고, 발목에 스냅단추의 개수로 색을 구분하도록 했다. ⓒ서인환

리사이트가 개발하기로 한 첫번째 의류 디자인은 양말이었다. 비교적 제작비가 적게 들기도 하고, 심플하기도 한 것이니 먼저 양말을 선택한 것이 아닌가 한다. 하지만 이들이 양말을 선택한 이유는 달랐다. 10명의 시각장애인분과 인터뷰 하는 동안 열 분 모두 기존 양말 디자인에 불만을 털어놓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큰 의미를 두지 않았던 양말이 누군가에게는 불편함을 가져온다는 점을 절감했다고 한다.

이들은 시각장애인들에게 양말의 불편함에 대해 다시 물어보았다.

“양말 같은 경우에는 구분하기가 어려워서 같은 색으로 여러 켤레를 사요.”

“저 같은 경우 색깔, 디자인 다 완전 똑 같은 걸로 열 켤레씩 사두고 바꿔가며 신어요. 그러면 왼쪽, 오른쪽 바뀌어도 되고 상관이 없으니까요.”

“(양말 좌우 구분) 그거 구분하기 되게 힘들어요. 촉감으로 구분도 안 되고요 곤란하죠.”

“양말 같은 경우는 색을 구분하기가 어려워요. 그래서 짝을 맞추기도 힘들어요.”

“앞이 안 보이니까 발로 앞을 더듬으며 가요. 그러다보면 미끄러지기 쉬운데 성인용 미끄럼 방지 양말은 잘 없어요.”

이 대목에서 시각장애인들은 장갑처럼 양말이 좌우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발가락 양말은 좌우가 있고 뜨개질로 짠 것은 좌우가 있지만, 기성 제품들은 사실 죄우가 없는 것이 대부분이다.

8개월 간의 연구 기간을 거쳐 시각장애인도 편리한 배리어프리 양말 개발을 완성시켰다. 배리어프리 양말은 제작 과정에서 시각장애인들의 의견을 반영해 가며 수많은 수정을 거듭하는 과정을 거쳤다.

리사이트의 ‘손끝으로 보는 양말’은 시각장애인들이 실내에서 걸을 때, 앞에 장애물이 있는지 알아보려고 발로 더듬으며 걷는다는 사실을 반영해, 실내 보행시에도 미끄러지지 않도록 미끄럼방지 기능을 하는 점자를 발바닥에 부착했다. 발바닥의 점자는 읽으라는 것이 아니라 이왕이면 미끄럼방지를 상징적으로 점자로 하는 것이 좋겠다고 여겨서이고, 점자의 내용은 ‘다시 보는 손으로 보는 양말 리사이트’라는 상표 같은 것이다.

시각장애인들이 색상을 구분할 수 있도록 색상별로 다른 개수의 스냅단추를 부착했다. 이는 세탁 후 양말들이 한 군데 뒤섞여 있을 때도 짝을 맞추어 구분하게 해주는 기능이다. 외국에서는 양말을 벗어 세탁을 할 때에 세탁기에 넣어도 되는 집게를 이용하여 짝을 맞추어 둔다. 발목 부분에 스냅단추를 하나 붙이면 흰색(화이트), 둘이면 검은색(블랙), 셋이면 진회색(차콜), 넷이면 연노랑(베이지), 다섯이면 노랑(머스타드) 등이다.

완성된 양말에 대한 시각장애인들의 반응은 다음과 같다.

“사실 이 스냅단추가 은근 신경 쓰이거나 아플 줄 알았는데, 생활 중에 거슬리지도 않고 불편하지도 않아요. 오히려 디자인적 포인트가 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스냅단추를 만져보고 색을 연상할 수 있는 게 너무 편하고 좋아요.”

리사이트는 배리어프리 양말 디자인 개발 완성과 동시에 제품 생산에 들어가, 펀딩을 오픈한다. 외디즈 펀딩 플렛폼을 이용해 7월 7일까지 펀딩을 모으고 생산 판매에 들어갈 예정이다.

장애인을 위한 베리어프리 제품이 왜 기성 전문업체에서는 손을 대지 못하고 순수한 대학생 동아리에서 만들어져야 하는지 안타까움도 있지만, 이들이 앞으로 사업으로 성장시켜 차세대 디자인계의 주역이 되면 세상이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하는 희망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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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환 칼럼니스트
현재 사단법인 장애인인권센터 회장,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 고용안정지원본부장을 맡고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아·태 장애인, 장애인운동 현장의 소식을 전하고 특히, 정부 복지정책 등 장애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슈에 대해 가감 없는 평가와 생각을 내비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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