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자폐인 협의회 로고(좌측), 지도 상의 유럽 자폐인 협의회 회원단체 분포 국가(우측). ⓒ유럽 자폐인 위원회 사이트

올해 3월 하순 진행되었던 UN 장애인권리협약 제27조 ‘근로와 고용’ 일반논평 초안 논의와 관련, 장애인권리위원회 온라인 공식 석상에서 의견을 발표하기 위한 전 세계의 많은 장애계 단체와 장애인 당사자, 시민단체들의 경쟁은 치열했다. 서면 의견을 낸 단체들이 상당히 많았고 그 가운데는 내가 소속된 estas도 있었다. 자폐성 장애인 당사자 단체들이 공식 석상에서 구두발표(Oral Statement)를 하지 못한 점은 아쉬웠지만 어쨌든 의견을 냈다는 데는 의의를 두련다.

내가 자폐성 장애인이라 자폐인 고용 현실이 어떤지 관심이 가긴 했었다. 그래서 이와 관련한 의견을 낸 단체를 찾아봤는데, 유럽 자폐인 협의회(European Council of Autistic People) 딱 한 군데였다. 유럽 자폐인 협의회는 회원 대부분을 이루는 자폐인 당사자가 운영하며 16개의 유럽 NGO들을 포괄하는 상위조직이다. 이 협의회의 서면의견서에 나타난 자폐인 고용 현실은 이랬다.

먼저 전체 장애인과 비교해 자폐인 고용수준은 일반적으로 훨씬 낮았고, 고등교육 받은 사람 포함해 취업한 자폐인들 가운데는 파트타임 근로, 저소득, 사회수당 의존 등이 흔하다고 보고했다. 수십 년 동안의 캠페인, 프로젝트에도 이런 현상은 계속되고 있다.

의무고용과 관련해서는 스페인의 경우 채용절차는 지체장애, 감각장애, 지적장애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며, 이탈리아에선 자폐가 낙인이 많이 붙는 장애임은 물론, 자폐인의 취업 알선이 상당히 어려우며, 프랑스에서는 자폐성 장애인의 고용전망이 최소임을 지적했다. 공통적으론 장애인 고용보다 미고용으로 벌금을 내는 성향이 강함도 지적했다.

정부‧지자체로부터 자폐 장애 인정을 못 받는 사람들이 많아, 이들은 고용 시 적절한 지원‧서비스나 합리적 조정(편의)을 받지 못하고 이런 사례는 종종 발견된단다.

자폐인 고용의 합리적 조정과 관련해 자폐성 장애인 개인 간엔 시간, 장소, 맥락 등에 따라 필요와 요구조건 등이 달라 노동환경‧조건의 유연성이 필요하고, 자폐 직원들이 비자폐 동료들과 같은 목표 기준을 이루려면 고용주들에겐 자폐성장애 직원들에게 치르는 비용이 더 많이 들어간다.

그런데, 자폐인이 지원자와 함께 고용주와 협상할 강력한 위치에 있지 않기에, 고용주 등이 장애를 인정치 않을 때 자폐인 등의 합리적 조정(편의)와 관련된 요구를 합리적인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거다. 따라서 고용주 등의 이해관계자들에게 합리적 편의 이행을 지원해 일터를 접근성 있게 하자는 의견이 서면의견서에 나타난다.

자폐인식 단어 퍼즐. ⓒPixabay

자폐인이 근로‧고용에 뛰어들기 전엔, 자폐 학생이 배우면서 재정적 생존을 위한 학생수당 연장, 자격증 취득 기간을 1~2년 연장하거나, 학습 기간의 연장 등이 필요하다, 하지만 자폐성 장애에 대한 인식 부족으로 유럽 여러 나라에서 이런 합리적 조정(편의)을 제공하지 않는단다.

이로 인해 학습을 부분적으로 완수한 자폐 학생이 많으며, 고용 가능성을 계속 증진할만한 자원이 없다는 것이다. 이런 유럽의 현실을 보며, 자폐 학생의 합리적 조정 제공 관련 지원을 학생수당 주는 기관, 고등교육기관, 직업교육기관 등에 할 필요가 있음을 유럽 자폐인 협의회는 지적했다.

자폐 인식과 관련해 일터에선 경영진, 수퍼바이저, 직장동료 등이 자폐에 대한 일반적 지식 부족으로 힘들어하며, 직업 건강 인력부서, 전문가들은 자폐 관련 지식이 불충분하고, 자폐를 고립과 지적장애로만 보는 편견으로 자폐인 관련 결정을 단순히 한단다.

자폐인의 흥분, 특이함을 다른 소통방식으로 보는 대신 무례함, 약점으로 보고, 특정 업무에서 일정소통기술이 필요 없는 직업에서도 소통을 강조하는 등 소통의 차이로 고용에 심각한 장벽을 겪는 유럽 자폐인들이 많다고 했다. 유럽에선 심지어 소리‧표현‧행동 차이에 근거, 자폐인과 상호작용 피하고 부정적 인상을 받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 장애 수용훈련은 자폐에 대한 편견과 부정적 생각 줄이기에 효과 있음이 장기간 밝혀졌단다. 그래서 채용 결정자들이 이런 훈련을 하며, 소통 차이로 인해 자폐인들이 느끼는 장벽을 줄이도록 하자고 유럽 자폐인 협의회는 권고했다. 아울러 이와 관련해 이탈리아의 한 비영리단체는 자폐성 장애인의 활발한 참여가 중요함을 역설했다.

한편, 자폐성 장애가 있음을 알지 못한 채 성장‧학습하고 경력을 시작하는 자폐인들이 많고, 이들은 일터에서 종종 직면하는 문제가 장애와 연관됨을 알지 못한다고 한다. 자폐인들은 비장애인보다 시간과 노력, 에너지 소비가 많고 일터 접근성이 낮기에 결국 스트레스, 피로, 번아웃 등의 근로 관련 건강문제로 인해 손상이 나타난다고 언급했다. 이런 문제들은 종종 이들에겐 장애진단으로 이어진단다.

구직과정에서 심리적인 문제 등이 많고, 직장에선 비장애인보다 2배나 많은 따돌림, 과로 관련 압박, 생산성이란 이상으로 인해 자폐인 권리가 위협받는다. 이에 일보다는 장애수당 선택하는 유럽 자폐인들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유럽 자폐인 협의회에선 자폐인을 포함한 모두가 수당에 대한 적절한 접근권이 없는 것을 심각한 인권 이슈로 봤다.

이와 관련, 능력(무능력)이란 개인과 사회와의 관계 표현임을 전제로 개인이 처한 환경에서 개인의 사실적 상황과 경험한 현실을 적용, 지속된 유료 고용에 관여할 수 없는 걸 근로 무능력으로 이해해, 이를 공식용어로 사용하길 장애인권리위원회에 제안했다.

스페인의 한 슈퍼마켓에 취업해 일하는 자폐여성(좌측), 헝가리 슈퍼마켓에서 일하는 자폐남성(중간), 영국에서 사무직으로 일하는 자폐여성(우측). ⓒAutismEurope

자폐인들은 중증장애, 높은 자살률, 보건의료서비스 이용 시 장벽 등으로 인해 비장애인보다 기대수명이 낮다는 점도 보고되었다. 자폐인에 관한 이런 정보들을 알리고 교육함에도 자폐인이 일반적 학습장애나 눈에 보이는 중증장애 없이도 상당한 장애 상태에 있을 수 있단 인식으로 가고 있지는 않음이 유럽에서의 현실이라고 했다.

이에 자폐성 장애를 단순한 심리 사회적 장애가 아닌 신경학적, 인지적, 감각적, 심리사회적 차원에서의 복잡한 발달상태와 관련된 장애로 인정해야 함을 유럽 자폐인 협의회 서면의견서에선 피력했다. 그러면서 근로와 고용 맥락에서 학습장애, 혹은 심리 사회적 장애로 제한하지 않고, 일과 가족, 일상적 삶을 조합함으로 나타나는 스트레스, 긴장을 고려해 자폐성 장애를 사정해야 함을 아울러 언급했다.

자폐인 협의회에선 지적장애‧심리사회적 장애를 중심으로 한 프로그램 제안을 환영하지만, 프로그램을 운영할 자원이 충분한 민간기업, 비영리단체가 유럽 어느 나라에도 존재하지 않고, 이런 프로그램을 운영한 결과는 실망적이었음을 지적했다.

그래서 당사국과 유럽연합과 같은 국제기구에서 프로그램의 효과성을 점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이런 프로그램 규모는 충분히 커야 하고, 진단서비스 및 적절한 필요 사정에 접근 시 어려움이 있는 사람들을 포함, 많은 이들에게 접근 가능한 프로그램을 설계해야 함을 역설했다.

장기간의 고용, 재정상태, 삶의 질에 대한 분리 데이터 수집하도록 프로그램들을 설계해 중요하고도 영속적인 변화를 초래할 수 있는 새 고용모델에 관한 실질적 정보를 제공해야 함을 언급했다. 이와 관련해 비영리단체의 긴밀한 참여를 주문했다. 그렇게 하면, 고용수준 포함한 자폐인 상황 관련 데이터의 체계적 수립이 가능할 것이라 본다.

이외에도 자폐인 당사자와 비영리단체와의 긴밀한 협력, 장애인 고용을 통해 자폐인이 국가/지역 고용시스템 내에서 일하도록 함으로 자폐인의 경험에 기반한 전문지식을 고용서비스에 광범위하고도 영구적으로 통합시킬 것을 자폐인 협의회는 권고했다. 마지막으로 자폐인 고용의 좋은 선례로 네덜란드, 벨기에 등의 경우를 들었다.

네덜란드의 경우 Autisme Ambassade란 자폐성 장애단체가 네덜란드 정부 각 부처 및 공공서비스 기관과 협력함으로 자원을 긍정적으로 이용한단다. 자폐인 경험에 기반한 전문지식으로 회사, 구직자에게 다 이득을 줌으로 장애인은 장기간 활동적 역할을 하게 되고, 이에 자폐인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은 변화되고 있다는 사례를 소개했다.

벨기에 헌법 옛표지(좌측), 벨기에 문양(우측). ⓒMemim encyclopedia

유럽 자폐인 협의회의 서면의견서를 읽으면서, 우리나라와 유럽 간에는 별반 다를 바 없는 점이 있다는 게 느껴졌다. 일단 저소득, 사회수당 의존 등은 공통된 현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의 경우 자폐인 월평균 소득이 2017년 기준으로 34만 5,400원으로 당시 최저임금 135만 원에 훨씬 못 미치고 지금도 이런 경향은 거의 변화가 없다.

또한, 우리나라는 단기간 계약직에 근무하는 자폐인들도 많아 유럽에서 파트타임 근로 등이 흔하다는 현실과 어느 정도는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채용공고가 자폐인들에겐 거의 드물거나 아예 없는 등 고용 현실이 열악하다는 점도 참 비슷하다. 의무고용도 자폐인 포함한 모든 장애인과 관련해 고용 대신 벌금으로 때우려는 현상도 비슷하다.

그리고 고용과 관련해 합리적 조정이 자폐인에게 잘되지 않는 현실 등도 참 많이 닮아있다는 느낌이 든다. 자폐인의 특성을 다양성이 아닌 무례함으로 인식하는 등 자폐 관련 장애인식이 정말 열악한 점도 그렇다.

하지만, 다른 점도 분명 있다. 올해 3월 11일, 벨기에 헌법엔 합리적 조정을 포함한 장애인의 동등한 권리 조항이 추가됐다. 벨기에 사회가 합리적 조정을 장애인의 권리로 인식한다는 거니 긍정적이다. 이는 장애인 고용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하리란 생각에, 앞으로 자폐인 고용이 전보단 양과 질 다 나아질 거란 생각이 들게 만든다.

유럽엔 합리적 조정을 권리로 인식하려는 움직임이 있지만, 우리 사회는 그런 게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선 장애인차별금지법에서 정당한 편의로 되어 있는데, 이와 관련한 편의 증진예산이 올해 배정되지 않은 건 이를 반증한다고 본다.

자폐인들이 직장에서 일을 잘하기 위해 합리적 조정이 필요할 텐데, 이런 상황이라면 일하는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스트레스에 버티기 힘들어질 것이 분명하다, 개인에 따라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고용, 교육 등에서의 합리적 조정을 권리로 인식하려는 우리 사회의 노력이 필요하단 생각이 다시금 들게 된다.

또한, 네덜란드의 Autisme Ambassade란 자폐성 장애단체에 있는 자폐인들이 공공서비스 기관 및 정부 각 부처와 협력해 회사, 구직자에게 이득을 준다는 점도 생각해볼 지점이다.

네덜란드 자폐인의 고용현실 등에 대해 비르센 바사르씨의 발언을 통역자가 통역하는 모습. ⓒ이원무

네덜란드 자폐인이 고용정책에 적극적 참여를 한다는 건데, 이는 장애인권리협약 일반논평 7호에서 고용정책 시 장애인 참여는 중요하다고 언급한 지점과 맞닿아 있다. 여기에 자폐성 장애 등 장애에 대해 존중하는 문화도 네덜란드 내에 있다. 자폐인 의견을 존중하는 문화가 있기에 고용정책에 이들의 참여가 활발하단 생각이 든다.

이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고용정책 시 자폐인의 의사를 존중하거나 묻지 않고 공급자 중심으로 정책을 추진한다. 장애인직업교육정책에서도 자폐인, 지적장애인의 욕구를 반영한 게 아닌 제공자 중심의 정책이다. 여기에는 자폐인의 당사자성이 인정되지 않음은 물론 자폐를 치료의 대상으로 하는 우리 사회의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자폐인 보호의 목적하에 자폐인의 요구를 진지하게 듣지 않고 자폐인을 통제하에 두려는 부모들도 많은 것도 문제다. 이것 또한 자폐인의 당사자성을 막는 한 요인이다. 요즘엔 자폐인들 요구를 경청하려는 부모들이 늘어나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려나?

우리나라에서 자폐성 장애인 당사자 단체도 estas 등 2개라 상당히 적고 이 단체에 대한 지원을 법률로는 명시하였으나 실질적인 지원은 없다. 그래서 부모와 사회 등이 전반적으로 장애에 대한 인식 제고를 위해 노력해야 하고, 국가‧지자체 차원의 권리옹호, 자기옹호 체계에 자폐성 장애인 등의 의견이 반영되고 자폐인 단체에 대한 국가 지원이 필요하다.

또한, 자폐성 장애인 당사자들로 이루어진 단체에서 당사자들이 서로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이해해가려는 리더십을 키우는 것도 필요하다. 이것을 통해 당사자 단체의 힘이 강해질 수 있고, 정부가 자폐인의 요구를 들을 수밖에 없는 현실로 갈 수 있다고 본다. 그런 분위기라면 자폐인의 활발한 고용정책 참여는 가능하지 않겠는가?

자폐인의 열악한 고용 현실은 전 세계적으로 자폐인들이 연대해 해결해야 할 이슈지만, 유럽에서 자폐인의 의견을 존중하고, 자폐인을 고용정책에 참여시키는 사례, 합리적 조정을 권리로 인식하는 건 배워야 함을 필자는 유럽 자폐인 협의회의 서면보고서에서 강하게 느끼게 되었다.

이를 잘 소화해 현실로 만드는 것은 필자를 포함한 우리 자폐인들의 몫이 될 것이다. 자폐인들이 이 몫을 잘 감당해 정부에 제대로 요구하고, 고용정책에서 자폐인의 발언‧참여 기회가 많아지길. 그래서 우리 사회의 자폐인 고용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좋아질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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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팝송 감상, 월드컵 등을 즐기고 건강정보에 관심이 많은 반백년 청년이자, 자폐성장애인 자조모임 estas 회원이다. 전 한국발달장애인가족연구소 정책연구팀 간사였으며,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정부심의 대응을 위해 민간대표단의 일원으로 2번 심의를 참관한 경험이 있다. 칼럼에서는 자폐인으로서의 일상을 공유하고, 장애인권리협약, 장차법과 관련해 지적장애인, 자폐성장애인과 그 가족이 처한 현실, 장애인의 건강권과 교육권, 접근권 등에 대한 생각을 솔직하게 나눌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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