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보다 커진 아들의 키, 성장하는 만큼 아들의 고민도 커지는 것 같다. ⓒ최충일

초2, 9살 된 아들이 7시까지 놀다 온다 했는데. 집에 오지 않아 놀이터에 갔다.

아들 친구: 재, 재 지성아, 친구 왔어

아들: 친구 아니야, 아빠라고!

씩씩대며 내게로 오는 아들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집에 가는 동안 울먹이는 아들을 보며 말했다.

나: 지성아, 친구는 아빠가 아빠인지 모를 수 있는 거잖아?

아들: 왜 난 아빠를 일일이 설명해줘야 해?

나: 지성아, 그게 아빠의 몫인데 네가 그렇게 힘들어 하는지 몰랐다.

그럼에도 아빠가 아닌 친구에게 화를 내는 것을 보면 예전과 다른 지성이다. 일일이 설명해 주지 않고서도 아빠가 아빠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그것이 인식개선이라면 내 존재를 증명하는 것과 다름없다. 장애 정체성이고 나발이고 현실은 그렇다.

아들 지성이가 성장하면서 아빠의 다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다. 나는 그것의 가장 큰 이유로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라고 보여진다. 왜냐하면 이들의 반응은 아빠의 존재가 아니라 아빠의 장애를 강조하기 때문이다.

싫든 좋든 간에 이는 우리 사회가 장애를 바라보는 관점과 다르지 않다. 아들이 태어나서 줄 곧 아빠의 휠체어, 아빠의 작은 키, 걷지 못하고 기어 다니는 모습 등을 보며 자라왔다. 긍정적 장애인식 단계에서 주변 사람들의 반응에 따라 부정적인 것으로 바뀔 수도 있는 것 같다.

장애인식개선 교육 중 아들은 친구의 손을 잡고 점자유도 블럭을 따라 걷고 있다. 진지하다. 장애체험은 아들, 친구에게 유익한 시간이 될 수 있을까. 장애체험은 장애만을 강조한다. ⓒ최충일

장애유형이 어떻고 특성이 어떻고 하는 것은 정보제공일 뿐이지 인식개선 교육을 위한 과정 중 하나라고 보기 힘들다.

아들 지성이가 친구에게 '아빠는 지체장애인으로서 전동휠체어를 타며 이동하는 장애 특성을 갖고 있어'라고 하는 것은 아빠를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아빠의 장애만을 설명하는 것이다. 이는 장애와 사람을 분리시킬 뿐이다.

아빠를 증명한다는 것은 아빠의 삶이 다른 아빠의 삶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일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것은 휴먼 다큐멘터리 속 '주인공'도 아니고 장애 극복한 '영웅'도 아니다. 아빠의 증명이 그렇게 되는 순간 나는 아빠로서의 나를 포장한 것 뿐이다. 나는 여전히 그 방법을 몰라 헤매고 있다.

나를 포함한 장애인 당사자들의 역할은 자신의 삶이 보통의 삶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것이 곧 권리로 작동한다면 앞서 말한 '장애 정체성이고 나발이고'라고 하며 스스로를 비판하지 않을 것 같다. 그것이 늘 고민이다.

나 또한 그 접근 방법을 고민하고 있지만 나 혼자만의 고민으로 접근하는 순간 또다시 비판으로만 끝나게 된다. 그 악순환을 아들과 아들이 함께하는 친구들과의 접촉부터 시작해야겠다.

감사한 것은 이러한 고민들을 아들과 함께 나눌 수 있을 만큼 성장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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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충일 칼럼니스트 중고등학교를 특수학교에서 졸업, 대학생활 힙합에 빠졌고 지금도 사랑한다. 직장이 있고 결혼하여 아빠가 되었다. 삶의 행복이 무엇인지 탐구하는 중이다. 장애인이 아닌 아빠, 남편, 래퍼, 사회복지사로서 삶의 다양성과 일상을 타이핑할 것이다. 그것은 삶의 행복을 탐구하기 위한 나만의 재료들이다. 지난 2009년 방영된 SBS '스타킹' 프로그램에 출연해 국내에서 가장 빠르고 정확한 랩을 구사하는 '아웃사이더'와 함께 프리스타일 랩 실력을 발휘한 바 있다. 현재는 우리사회 장애인의 희로애락을 담은 본격 유튜브 토크쇼 '수다장인'을 운영하고 있으며, 인권활동가로서 장애인식개선 교육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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