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동네에 있는 편의점 전경(좌측), 편의점으로 들어가기 위한 철제 턱(우측). ⓒ이원무

현대인의 삶이 더욱 바빠지면서 고객의 편의를 위한다는 편의점으로 김밥이나 컵라면 등 간단한 음식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사람들은 늘어만 간다. 그곳에선 식료품뿐만 아니라, 볼펜, 치약, 편지지 등 생활에 필요한 용품들을 판매하면서 사람들 소비생활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10여 년 동안 편의점 수는 급증했으며, 이제 편의점은 일상생활 한 부분으로 자리 잡고 있을 정도로 친숙하지만, 장애인들은 이런 친숙한 광경을 경험하는 게 쉽지 않다. 일단 편의점의 턱이 장애인의 출입을 가로막는다. 그리고 턱이 있어도 경사로가 설치되지 않아 지체장애인은 편의점 들어갈 때 어려움을 겪는다, 실제로 한 장애인 당사자는 편의점에 들어가서 물건을 사본 경험이 없었단다.

이는 편의점, 병원, 약국 등의 생활근린시설의 경우 300제곱미터 이상의 바닥면적인 곳만 편의시설을 설치할 의무가 있다는 장애인 등 편의법의 시행령 규정 때문이다, 편의점의 경우 그런 곳은 약 1.8%밖에 안 되기에, 운 좋은 경우 아니면 한 당사자의 고백처럼 장애인은 편의점에 들어가서 물건을 사보는 경험을 하기 어려운 거다.

이렇게 시설에 접근하기 어려움은 물론이고 장애인은 키오스크 등 기기에도 접근이 어려운 게 현실이다. 이런 현실을 개선하려는 취지 속에 이와 관련해 정당한 편의 제공에 대한 방향을 모색하고자 지난주 국가인권위원회와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이하 장추련) 공동주최로 토론회가 있었다. 토론회는 코로나 영향으로 온라인으로 진행됐다.

아까 말한 장애인 등 편의법에서 바닥면적 기준을 폐지하자는 의견, 장애인 접근권은 권리라는 인식이 확산되어야 한다는 의견 등 여러 의견이 있었다. 병원, 보건소, 약국, 은행, 레스토랑 등 생활근린시설에 장애인이 접근하기 위해 정말 필요한 것들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필자의 관심을 끈 건 토론회 맨 처음 발제자가 발표한 정당한 편의에 관한 유엔 장애인권리협약 일반논평 제2호와 관련된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3년 전 NGO연대 시절에도 공부한 적이 있었는데, 그 이야기를 최대한 간략하게 요약해보려 한다. 그리고, ‘정당한 편의’ 대신 ‘합리적 편의’라는 말이 나올 텐데 그 이유는 후반부에 말하겠다.

‘장애인 등 편의법’ 개정 대상인 별표 1 내용의 일부. ⓒ법제처

EU국가에서 장애인 고용에 한해 합리적 편의 제공 의무를 먼저 규정했고, 이후 장애인권리협약으로 인해 이 의무의 도입을 진행 중인 국가들이 많다. 이 의무는 일상적인 장애인 삶에서 접근성 확대에 상당히 기여할 거란 기대 속에 장애계의 큰 주목을 받았다.

그런데 이 의무에 대한 요건이 까다롭고 현실에서 의무, 권리 여부를 따질 때 논란이 있었단다. 또한, 합리적 편의 제공과 그 의무의 목적은 접근성이다. 그래서 장애인권리협약의 접근성 의무와 합리적 편의 제공 의무 간의 구분에 혼란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유엔이 논란 해결을 위해 7년 전 접근성 관련 일반논평 2호를 내놓으며, 합리적 편의 제공 의무와 접근성의 설정에 대한 원칙을 발표하며 아울러 두 의무도 구분했다.

합리적 편의 제공 의무는 필요할 때 특정 장애인에게 제공토록 하며, 어떤 상황에서 권리 제공과 관련해 효과적인 수단을 찾아야 하기에 사전에 준비할 필요는 없다. 필요한 사람이 요구하고, 그 요구에 필요로 하는 편의 제공이 무엇인지 의무가 있는 사람이 당사자와의 대화를 통해 밝혀내야 한다. 이것이 합리적 편의 제공의 절차적 요소다.

그런데 장애인이 어떤 곳에 접근할 경우, 필요할 때 특정 상황에서 필요한 접근방안이 취해져야 하는 것이 있지만, 사전에 준비해야만 접근할 수 있는 조치들도 많다. 이에 대해 나라 간 논의가 있었지만, 장애인권리위원회(이하 위원회)에서 사후적인 것은 합리적 편의 제공 의무, 사전적인 것은 접근성 의무로 개념적 구분을 내렸다.

그러니까 접근성이란 집단적 제공에 사전 준비적 성격의 것이고, 접근 조치의 표준화가 있어야 하며, 합리적 편의 제공 의무는 개별화된 조치에 사후 제공적 성격이 있다는 것이다. 장애인권리위원회에선 희귀한 장애가 있는 경우 사전적 준비나 어떤 표준에 의한 조치 이상이 필요할 때를 합리적 편의 제공 의무가 필요한 예로 들고 있다.

장애인권리협약에서는 합리적 편의 제공의 경우, 불균등하거나 혹은 과도한 부담을 부과하지 않아야 하는 조건이 있다. 즉 과도한 부담이 없을 때 이 의무 이행 없으면 차별이다. 하지만 접근성의 경우에는 그게 분명치 않았는데, 일반논평 제2호에선 접근 거부, 접근성 미보장을 차별로 간주하라고 선언했다. 즉 접근성 보장 조치로 인한 부담을 이유로 접근성 미제공 행위가 있어선 안 된다는 거다.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일반논평 2호 내용에서 ‘정당한 편의’ 관련해 발표하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오욱찬 부연구위원. ⓒ국가인권위원회 Youtube 캡처

그런데 권리협약에선 장애인 접근성 확보를 위해 국가의 조치를 이야기할 때 점진적 이행을 이야기한다. 접근성 미보장 시 차별로 이야기하면서 점진적 이행하라? 보면 뭔가 모순된 것처럼 보인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위원회에서는 접근성의 최소기준을 설정해야 한다고 봤다. 최소기준을 설정해서 이 기준만큼 이행치 않으면 어떤 조건도 차별로 보고, 그 이상의 접근성 조치는 점진적 이행할 수 있다는 묘책인 거다.

그러면 합리적 편의 제공 의무 시 ‘과도한 부담’과 ‘합리적’이란 말이 나오는데, 이 말이 무엇이냐 말이다. 나라 간 논란이 있지만, 위원회에선 ‘합리적’이란 말을 장애인에 대한 관련성, 적절성, 효과성으로 해석돼야 한다고 했다. 의무 이행 제대로 했는지 확인 시 실제 조치가 장애인에게 효과적이었는지 판단해야 한다는 거다.

다음으로 ‘과도한 부담’이라는 것을 따지는데, 위원회에서는 비용을 이유로 편의 제공을 거부했을 때, 공적 지원의 가능성이 있음을 나 자신이 충분히 탐색했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며 이를 중요하게 여겼다. 합리적 편의 제공 부담이 국가 장애 정책으로 충분히 보상될 시 과도한 것으로 간주되선 안 된다는 EU 고용평등지침과 맥락을 같이 한다. 여기까지가 일반논평 제2호와 관련해 요약한 거다.

그러면 우리나라 실정법인 장차법의 ‘정당한 편의’는 어떻게 되어 있을까? 장차법 법률에서 제14조 교육과 관련한 정당한 편의 제공 의무 조항을 예로써 잠시 보자.

제14조(정당한 편의제공 의무) ①교육책임자는 당해 교육기관에 재학 중인 장애인의 교육활동에 불이익이 없도록 다음 각 호의 수단을 적극적으로 강구하고 제공하여야 한다.

1. 장애인의 통학 및 교육기관 내에서의 이동 및 접근에 불이익이 없도록 하기 위한 각종 이동용 보장구의 대여 및 수리

2. 장애인 및 장애인 관련자가 필요로 하는 경우 교육보조인력의 배치

3. 장애로 인한 학습 참여의 불이익을 해소하기 위한 확대 독서기, 보청기기, 높낮이 조절용 책상, 각종 보완ㆍ대체 의사소통 도구 등의 대여 및 보조견의 배치나 휠체어의 접근을 위한 여유 공간 확보

4. 시ㆍ청각 장애인의 교육에 필요한 한국수어 통역, 문자통역(속기), 점자자료 및 인쇄물 접근성바코드(음성변환용 코드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전자적 표시를 말한다. 이하 같다)가 삽입된 자료, 자막, 큰 문자자료, 화면낭독ㆍ확대프로그램, 보청기기, 무지점자단말기, 인쇄물음성변환출력기를 포함한 각종 장애인보조기구 등 의사소통 수단

5. 교육과정을 적용함에 있어서 학습진단을 통한 적절한 교육 및 평가방법의 제공

6. 그 밖에 장애인의 교육활동에 불이익이 없도록 하는 데 필요한 사항으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항

이 내용을 읽다 보면 여기 나온 6가지를 이행할 때 정당한 편의 제공 의무를 다한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는 주로 시‧청각장애인과 지체장애인을 중심으로 한 내용이다.

지적장애인이라면 문자 이해가 전혀 쉽지 않은 경우, 그림 자료를 달라고 요청할 수도 있다. 문자를 조금은 알지만 어려운 경우 쉬운 말로 된 교수수정 자료를 요구할 수 있다. 교실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색상별로 반이 표시된 픽토그램을 요구할 수도 있다.

자폐성 장애인이라면 맥락에 따른 정보가 담긴 교육자료, 차분한 분위기 조성을 위한 인력 배치를 요구할 수도 있는 거다. 차분한 분위기 조성은 정신장애인도 요청할 수 있는 거라 본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20년 넘은 낡은 장애인등편의법 전면 개정하라’ 피켓이 전동휠체어에 걸린 모습. ⓒ에이블뉴스 DB

장차법 제14조 교육과 관련된 정당한 편의 조항은 미리 사전에 준비되어 있고 표준화되어 있다는 느낌을 주는데 이는 장애인권리협약 일반논평 2호에 비춰보면 '접근성' 개념에 가까운 것이다. 합리적 편의 제공은 사전에 준비된 것이 아니고 장애인 개개인의 요구와 상황에 따라 장애인에게 필요한 걸 제공한다는 개념임을 기억한다면 말이다.

또한, 고용과 관련한 장차법 시행령 5조에서는 다음과 같이 나온다.

제5조(사용자 제공 정당한 편의의 내용) 법 제11조제3항에 따라 사용자가 제공하여야 할 정당한 편의의 구체적 내용은 다음 각 호와 같다.

1. 직무수행 장소까지 출입가능한 출입구 및 경사로

2. 작업수행을 위한 높낮이 조절용 작업대 등 시설 및 장비의 설치 또는 개조

3. 재활, 기능평가, 치료 등을 위한 작업일정 변경, 출ㆍ퇴근시간의 조정 등 근로시간의 변경 또는 조정

4. 훈련 보조인력 배치, 높낮이 조절용 책상, 점자자료 등 장애인의 훈련 참여를 보조하기 위한 인력 및 시설 마련

5. 장애인용 작업지시서 또는 작업지침서 구비

6. 시험시간 연장, 확대 답안지 제공 등 장애인의 능력 평가를 위한 보조수단 마련

이 내용 역시 읽다 보면 이것만 할 때 정당한 편의 제공을 다 한 것 같은 인상을 준다. 하지만 이 내용 또한 시‧청각장애인과 지체장애인을 중심으로 한 내용이다.

지적장애인에게는 작업실로 찾아가기 위한 픽토그램, 직무를 원활히 하기 위한 쉬운 지침이 담긴 자료, 자폐성 장애인에겐 작업 시 민감한 색상 회피, 조용한 분위기 등을 요구할 수도 있다. 정신장애인에게는 일을 잘하기 위해 상담을 요청할 수도 있다.

결국, 장애인권리협약의 개념으로 보면 장차법 시행령의 ‘정당한 편의’라는 개념 역시 ‘접근성’개념에 가깝다. 그러면, 법률이나 시행령에 열거하지 않은 조치를 편의 제공 의무로 봐야 할 터인데, 그렇게 인정하는 사례, 판례는 우리나라에서 거의 찾아보기 쉽지 않다는 게 문제다.

한편 편의와 관련해 ‘합리적’이란 말보다 ‘정당한’이라는 말을 쓴 것을 보면 정당한 편의는 권리임을 강조하기 위해 썼다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그 말에서 편의를 제공하면서 그 조치가 장애인에게 효과적인 것인가 하는 것은 잘 도출되지 않는다. 그래서 권리협약에서 ‘합리적’이라는 말을 쓴 것이고, 이는 발제자도 지적한 부분이다.

한 카페에 설치된 키오스크 모습. ⓒ이원무

일각에서는 편의라는 말보다는 조정이라는 말을 쓰는 것 낫지 않냐는 주장도 있긴 하다. 심지어는 ‘합리적 조정’, ‘합리적 수용’이라는 말이 더 낫지 않냐는 얘기도 있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조정’, ‘수용’이란 말이 ‘편의’라는 말보다는 권리적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 주장에 동의하는 면도 있다. 아무튼 이에 대해서는 활발한 토론이 있었으면 좋겠다.

다시 ‘정당한 편의’와 관련한 얘기로 돌아가면, 우리나라는 대부분 공적 지원 및 다른 조치 등을 다 고려하거나 탐색해보지도 않고 무조건 과도한 부담이란 이유로 장애인 요구에 맞게 경사로를 설치하라는 정당한 편의 등의 요구를 사업주 등이 경청하지 않는 게 현실이다.

그리고 장애를 이유로 한 직접차별 경우에도 과도한 부담을 따지도록 장차법이 되어 있는데, 직접차별에는 ‘과도한 부담’이라는 표현을 넣지 말아야 하는 게 맞다고 본다.

따라서 정당한 편의 제공과 관련해 정리하면 ▲ ‘각 호의 조치와 장애인의 요구에 따른 기타 이에 준하는 조치’ 등으로 규정, ▲ 그 조치가 장애인에게 효과적이어야 함을 명시하고, 아울러 ▲‘과도한 부담’ 판단 시 공적 자원과 기타 프로그램 이용 여부 등을 고려하며 판단해야 함을 장차법에 명시했으면 한다. 이렇게 권리협약에 맞게 정당한 편의 제공 관련해 장차법 개정작업이 이루어졌으면 한다.

이렇게 개정되면 편의점, 식당 등에서 일어나는 차별 사례를 보고하는 것이 전보다 더 많아지고 이는 판례로 이어져 장애인 편의 개선이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기대한다.

하지만 아무리 법 개정이 이루어져도 ‘정당한 편의’가 권리라는 인식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그도 그럴 것이, 올해 장애인 편의 증진을 위한 예산이 없다. ‘정당한 편의’가 권리라는 인식이 없으니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겠는가?

그래서 ‘정당한 편의’가 권리라는 인식이 우리 사회에 자리 잡힐 수 있도록, 장기적으로 국가‧지자체 차원에서의 인식 제고 계획을 세우되 장애인 당사자를 필두로 현장 전문가 등의 의견을 청취하는 기회를 정기적으로 자주 가졌으면 한다.

‘정당한 편의’에 대한 장차법 개정과 관련 작업이야말로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한 기반에서 당당한 사회 구성원으로 가는 계기이자 일환임을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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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팝송 감상, 월드컵 등을 즐기고 건강정보에 관심이 많은 반백년 청년이자, 자폐성장애인 자조모임 estas 회원이다. 전 한국발달장애인가족연구소 정책연구팀 간사였으며,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정부심의 대응을 위해 민간대표단의 일원으로 2번 심의를 참관한 경험이 있다. 칼럼에서는 자폐인으로서의 일상을 공유하고, 장애인권리협약, 장차법과 관련해 지적장애인, 자폐성장애인과 그 가족이 처한 현실, 장애인의 건강권과 교육권, 접근권 등에 대한 생각을 솔직하게 나눌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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