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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 아동의 엄마, 때론 본능과 배짱 믿어 보길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21-03-12 16:48:29
아이의 장애가 눈에 확 드러나면 좋겠어, 생각하는 엄마가 존재하기는 할까? 어이없지만 내가 그랬다. 정신 나간 소리 같지만, 차라리 아들 벤이 누가 봐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장애를 지녔으면 좋겠다고 한두 번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그러면 최소한 동정이라도 얻을 수 있을까? 무심코 내뱉는 수많은 판단과 우월을 가장한 조언들, 호기심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들이 너무 아팠다.

멀쩡하게 생긴 아이가 느닷없이 수퍼마켓에서 떼를 쓰고, 기저귀 뗀지가 한참 됐는데도 대중 화장실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완강하게 버티며 집에 가자고 엄마와 실랑이를 하는 모습을 보면,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몰려들고 충고나 타박의 말들을 하나 둘 얹었다.

차에 타면 불만과 짜증이 터져 나오거나 계획된 일정이 조금만 틀어지거나 없던 변수가 생기면 화를 내는 아이 때문에 가족들 모임에 벤의 동행이 점점 어려워졌다. 진단을 받기 전, ‘뭔가 발달에 이상이 있다’는 엄마의 본능적 예감만 있던 시기였으니 벤이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도 이해하기 어려웠고, 상황을 수습하는 방법들도 알지 못해 식은땀이 흐르곤 하던 나에게 주변의 넘치는 관심은 독이었다.

또한 가까운 지인이나 가족들에게 엄마의 양육 태도를 비판 받을 때는 신뢰가 무너졌고, 최후의 보루로 찾아간 의사들에게서 ‘애가 문제없어 보이는데요.’라는 말을 들을 때는 또 다른 절망과 낙담에 휩싸였다. 그래서 발달장애 아동들의 부모에 삶은 계속해서 제한되고 옹색해지고 고립되는 경우가 많다.

“Unfortunately, the ASD diagnosis is not uncommonly missed by pediatricians and other professionals.” (불행하게도 자폐성 장애Autism Spectrum Disorder 진단은 소아과 의사나 다른 전문가들이 종종 진단을 놓치곤 한다.)

“Caring for Autism, Practical Advice from a Parent and Physician” 책의 저자인 미국의 의사 부부이자 자폐 아동을 키우는 저자인 Michael 과 Ellis가 말했듯이, 자폐 특히 벤처럼 고기능인 아동들은 흔하게 진단을 놓치거나 오진을 받곤 한다는 것을 혼자 독학을 하면서 깨달았다. 그리고 내가 경험한 “진단 찾아 삼만리”의 고단한 과정은 나만의 고유한 경험도 아니고, 나라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결코 한국에서만 일어나는 속 터지는 일이 아니란 사실도 알았다.

참고로 ‘고기능 자폐’란 용어는 혼란을 불러일으킨다. 저기능 아동들보다 상대적으로 지능/언어/사회성 /운동 측면 등이 좋다는 뜻이지, 비자폐 또래 아이들과 비교하면 사회적 언어, 또래와의 관계 맺기, 운동기능, 감정이나 정서적인 발달 면에서 주변의 이해와 지원이 절실하다.

가령 자폐적 특성을 잘 이해하고 지원하는 경험 많은 교사를 만나면 벤은 학습이나 또래 관계에서 놀랍게 발전하고, 그렇지 않은 교사를 만나면 발전에서 속도가 더뎌진다. 현실적으로는 전세계 공통으로 고기능이어서 눈에 확연히 드러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자폐의 광범위한 스펙트럼을 이해하지 못하는 부모, 교사, 전문가들에게서 진단을 놓치기 쉽고 부당한 대우와 과도한 기대로 당사자나 가족의 삶에 질이 하락하기도 한다.

“우리 아이도 교사도 알아채지 못했고, 몇몇 의사들이 진단을 놓쳤어요.”

소아과 전문의를 소개해준 벤의 일학년 때 호주 담임교사도 나와 비슷한 경험을 공유한 분이었고, 호주에서 만난 한 지인도 몇 년간 소아과 의사를 만나면서도 정확한 진단을 받지 못하다 결국 의사를 바꾸고 나서야 곧바로 자폐성 장애 진단을 받았다. 지인은 말하곤 한다. 정확한 진단을 받고, 점점 아이를 이해하기 시작하고, 다양한 도움을 받기 시작하니 이제야 숨이 좀 쉬어 진다고.

“지피(GP, General Practitioner, 호주의 일차 진료기관)도, 소아과 전문의도, 심리 상담사도 우리 아이들이 문제가 없다고 해.”

발달이 달라 보이는 두 아들의 엄마인 니키가 한숨을 폭폭 내쉬며 말했다. 그녀의 무력감과 낙담으로 얼룩진 한숨의 무게가 어떤 것인지를 알기에 먹먹하다. 일 년여 전부터 니키의 아이들이 자폐인이라고 의심을 하고 있었지만, 요청받지 않은 조언은 상처가 되거나 오해를 불러 일으키기 쉬워서 애만 태우며 지내고 있는 터였다.

몇 달 전에 니키는 아이의 발달 관련 진료 예약을 했다며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이들의 발달에 무슨 이유가 있지 않고서야 양육과 일상 유지가 이렇게 고될 수가 없다고 했다.

“엄마의 추측처럼 고기능 자폐가 의심되네요. 얼른 진단 들어가서 벤에게 적절한 지원을 시작합시다.”

벤의 담임교사가 추천해준 소아과 의사 캐서린이 벤과 10여분 면담을 한 후에 말했다. 눈맞춤은 가능하나 눈맞춤의 시간이 또래보다 짧다는 점, 대화가 핑퐁처럼 자연스럽게 주고 받고 되지 않는다는 점, 질문에 대한 대답이 약간씩 지연된다는 점, 흥미거리가 아주 제한적이라는 점, 처음 만나는 사람이나 장소에 대한 불안이 높다는 점 등의 특이점을 언급하며 필요한 진단 과정을 설명해 줬다.

너무 여러 번 거부당한 나는 아들이 자폐인이라는 진단보다 마침내 의사가 내 말에 귀를 기울인다는 사실, 즉 나의 하소연이 누군가에게 연결되었다는 사실이 좋았다. 이제부터는 혼자서 공부하고, 판단하고, 결정하는 외롭고 막막한 길이 아니라 전문가와 함께 동행한다는 사실 자체가 든든했고, 벤과 내가 어딘가에 소속된다는 사실 자체가 안심이 되었다.

10여분, 이 분야를 잘 알지 못하는 전문가는 한 시간을 보아도 보이지 않는 세계가 누군가에게는 10분 만으로도 명료하게 보이기도 한다. 영어 진단명이 ‘자폐스펙트럼’이 듯, 자폐의 세계는 이처럼 미묘하고 다양하고 폭이 넓다는 반증이기도 하고, 부모가 처음으로 접하는 의료진들의 자폐에 대한 이해와 인식이 그만큼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진단 앞에서 여러 번 낙담한 이 분야 선배로서 니키에게 말해 줘야겠다.

“때로는 전문가의 판단보다 너의 본능적 예감과 배짱을 믿어야 할 때도 있어. 바로 네가 너의 아이들을 가장 오래 보고 잘 아는 사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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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이루나 (bom022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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