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전, 섬에 팔려가 도망갈 수 없었던 한 시각장애인이 구출해달라는 편지를 그의 어머니가 읽고 이 편지를 경찰에게 넘기면서 염전노예는 수면 위로 드러났다. 대한민국 사회는 공분의 물결에 휩싸이며 가해자들의 강력한 처벌을 요구했다.

하지만 분노는 그때뿐이었고, 염전노예와 같은 축사노예 등의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언론의 자극적 보도는 계속 이어졌지만, 판결로 돌아온 것은 낮은 형량과 벌금, 집행유예 등이었다. 피해자를 돌보았다거나 숙식을 제공해주었다는 것 등이 판결의 이유였다.

이에 대한 해결방안을 모색하고자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가 주관하고, 장애인법연구회, 국회의원 최혜영, 대한변호사협회 등이 공동주최하는 장애인 노동착취 근절을 위한 수사 및 처벌의 개선방안 토론회가 지난주 화요일 오후 유투브를 통해 개최되었다.

발제를 통해 발제자들은 형식적인 발달장애인 전담조사제도, 장애인의 취약성에 대한 고려 없음, 법정형이 높지 않고 권고형도 낮은 등의 양형상 문제 등을 지적했다. 토론자들은 장애인의 특수성, 취약성을 감안해 법이 해결책을 가졌으면 좋겠다. 장애인 노동력 착취문제는 노예와 인신매매 관점으로 접근 시 해결 가능하다는 등의 의견을 내놓았다.

경찰 측에서는 자신을 보호‧감독하는 보호자에 대한 의존성이 높고, 학대 피해를 인식하지 않는 것 등으로 인해 피해 장애인이 보호자를 찾는다며, 섣불리 이들에게 학대로 인한 피해가 없다고 판단해선 안 된다는 의견도 내놓았다.

3시간 동안 발제와 토론을 듣다 보니 집중력이 떨어질 때도 있었지만, 워낙 중요한 사안이라 끝까지 들으려고 노력했다. 들으면서 필자도 사법부가 장애인을 이해하는 게 부족하다는 발제자와 토론자의 공통된 지적사항에 마음에서 동의했다.

잠실야구장과 흑산도 노예 사건에서는 지적장애인 개개인에 대한 몰이해, 곡성 품앗이 사건에선 사건에 대한 통합적 접근 부재, 후견인에 의한 노동력 착취 사건의 경우엔 방임 관련 규정을 너무 엄격하게 적용했던 면에서 이들의 지적사항에 동의한 것이다. 이외에도 5~6가지 사건이 더 있었지만 여기서는 지면상 네 사건에 대해서만 말해보겠다.

2014년 가해자인 염전업주의 엄중처벌과 법적 대책을 촉구하는 염전노예대책위 모습. ⓒ에이블뉴스 DB

먼저 잠실야구장 노예사건의 경우 가해자인 친형에 대해 피해자는 고소했지만, 검찰은 피해자의 지적장애를 이유로 고소능력을 인정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지적장애인도 문자 많이 접하고, 세상 돌아가는 것에 대해 사람들과 소통할 기회를 주고 경험하게 하며, 의사소통을 잘할 수 있도록 옆에서 지원하면 충분히 자신의 책임을 다하고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 그런 가운데 고소능력도 조금씩 쌓을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이들의 고소능력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건 지적장애가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이해능력이 떨어질 거란 편견 속에 지적장애인 개개인이 겪는 주위환경과 거기서부터 오는 경험이 각기 다르고 충분한 지원을 받으면 지적장애인도 능력자가 될 가능성을 부정한다는 느낌이 든다.

흑산도 노예 사건의 경우엔 지적장애를 겪는 노동 착취 피해자가 장애 정도가 경미하고, 일부 생필품을 구매할 수 있다고 해 일상생활에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 검찰에선 판단했는데, 실은 계획성 있는 금전 관리나 저축 통한 재산형성 등의 장기 재정 관리엔 어려움을 겪었다.

더군다나 피해자가 임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적극적 문제 제기가 없었는데 여기에 대한 중점적 수사 및 판단이 없었다. 피의자는 피해자가 자주 도망간다고 진술했으나 실은 피해자 거처가 피의자 거주지에서 걸어서 5분 이내 거리에 있었음을 사법부는 깊게 생각 안 하고 사실상 피해자를 실력적 지배했다는 걸 인정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가해자에게 유리한 판결로 가게 되었다. 결국, 흑산도 사례와 잠실야구장 노예 사건의 경우를 통해 사법부는 장애인의 지적능력을 가해자에게 유리하게 판결하는 것으로 이용하고, 장애의 몰이해는 물론 장애인 개개인의 삶을 종합적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장애인 노동착취 근절을 위한 수사 및 처벌의 개선방안 모색’ 온라인 토론회 발제자들, 토론자들, 사회자의 모습. ⓒ함께걸음 Youtube영상 캡처

다음으로 곡성 품앗이 사건을 보면 이웃주민인 피의자는 피해자와 피해자 배우자가 지적장애가 있음을 악용, 17년 동안 피해자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성폭행까지 저질렀다. 관련 죄명은 장애인복지법 위반, 근로기준법 위반, 성폭력특별법 위반, 노동력 착취유인이다.

죄명은 다르지만, 연속 선상에서 일어난 사건이라, 단순 근로기준법 위반 이상의 인신매매 맥락으로 통합적으로 피해 장애인의 삶의 관점에서 이 사건을 처리해야 한다. 하지만 이 사건에선 단순 퇴직금 미지급으로 한정해 수사하고, 그 결과 피의자 농사일을 도와줬다는 품앗이 개념이라 근로 제공이라 볼 수 없다고 판결, 불기소 처분이 내려졌다.

게다가 장애인이 노동력을 줬는데도 피의자는 정당한 대가를 제공하지 않아 부당이득을 챙겼지만, 이에 대한 검찰의 검토는 없었다. 여기에 근로관계법률 위반은 노동청, 검찰청 공안부에서, 나머지 혐의는 일반 경찰 등에서 수사하는 등 노동력 착취와 성착취 피해를 분절적으로 수사하며, 관련 규정을 단편적으로 적용했다.

심지어 근로감독관은 노동력 착취사건의 진상이 드러나야 한다며, 피의자와 피해자들을 같이 대질조사를 했다.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노동력 착취를 당해 종속적 관계가 된 것은 고려하지 않은 채 조사를 강행했다. 피해자 대리인, 옹호기관이 대질조사를 반대함에도 말이다. 결국 ‘장애인의 삶’을 통합적으로 바라보는 관점에서 이루어진 수사가 아니다 보니 제대로 된 판결, 정당한 배상을 받을 리 만무했다.

장애인단체에서 염전노예 이슈를 발표하자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장애인 인권침해 사례로 보았던 장애인권리협약 1차 국가심의 전 당시 태국의 몬티안 분탄 위원과 유엔장애인권리협약 Ngo보고서 연대와의 간담회 모습. ⓒ유엔장애인권리협약 Ngo보고서 연대

마지막으로 후견인에 의한 노동력 착취사건에서는 후견인이 기와공장 대표에게 피해자를 맡겼고, 대표는 피해자에게 공장 청소, 집안일을 시켰지만 외국인 노동자들이 냄새가 난다고 하는 등 항의한 끝에 임시 컨테이너에서 혼자 지내게 됐다. 3년 동안 일한 대가는 지급이 안 됐고, 후견인은 월 1~2회 피해자를 방문했으나 얼굴만 보고 돌아갔다.

제대로 된 거주공간 아닌 임시 컨테이너에서 지냈고, 얼굴만 보고 후견인이 돌아갔으니 후견인의 방임 죄를 묻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교통사고를 당했을 시 후견인이 한약을 지어줬다는 등의 피해자 진술만으로 검찰은 방임이 아니라고 판단해 불기소했다. 생명이나 신체의 현저한 위험이 없이는 방임죄로 인정하는 사례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를 보며, 검찰 등의 사법부가 노동 착취 장애인의 삶에 진정 관심을 가지는지 의문이 들었다. 아니,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는 느낌마저 받게 된다. 그러니 장애인 삶을 통합적으로 바라보며 수사‧판결하는 것을 기대하는 건 애시당초 무리였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노동 착취 장애인의 종속적 관계과 취약성 등을 포함해 통합적으로 피해 장애인의 삶을 바라보는 관점으로 사법부가 수사‧판결한 게 아니다 보니 10건의 장애인 노동 착취사건 피해자들은 정당하고 합당한 판결‧배상을 받아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피해 장애인 삶을 단편적으로 이해하며 수사‧판결했기에, 노동 착취를 부추겼다고 본다.

노동착취 장애인 개개인의 삶을 중심으로 통합적으로 이해하려는 관점이 사법부에 존재하지 않는 한, 노동착취는 근절되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기에 장애인의 권리와 차별금지 내용을 중심으로 한 인식제고 노력이 사법부에 정기적으로 이뤄져야 함은 물론 판결에 대한 장애인 당사자와 장애계의 정기적인 피드백을 받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본다.

여성에 대한 폭력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장면. ⓒPixabay

그럴 때, 장애인의 취약성 등을 포함해 장애인 삶을 통합적으로 바라보는 관점의 판결이 나올 것으로 본다. 이를 통해 피해 장애인의 권리구제 및 인권증진으로도 이어질 것이고, 우리 사회에서 노동착취를 눈에 씻고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까지 될 것이라 본다.

그래서 노동착취 장애인들이 인간 이하의 삶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며 당당하게 살아가는 게 현실로 다가오길 바라마지 않는다.

토론회 막바지에 한 변호사는 연구소에서 제작한 울력과 품앗이 프로젝트 보고서를 연구소 측에서 일선 검찰에 배포하려 했지만, 검찰에서 난색을 표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법무부를 통해 일선 검찰청에 이 보고서를 배포할 수 있는 루트를 제공해주시면 어떨까 하는 제안을 했다.

이 얘기를 듣고 토론회가 끝난 후, 토론회 사회자와 필자, 연구소 인권정책국장 셋이서 잠깐 이야기를 나누며, 검찰의 태도에 상당한 분노를 표출했다. 검찰 태도에 빡치는 기분이 들었다.

보고서 받기 거북하시면 장애계 비판이 나오지 않게 검찰에서 평소에 제대로 장애인의 삶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전문성 있게 장애인을 이해하며 판결하면 될 것 아닌가? 제대로 수사하고 판결하지 못하니 연구소를 비롯한 장애계에서 도움을 주겠다는데 무슨 가부장적이고 권위주의적인 태도인지 참으로 가관이다. 피해 장애인도 국민이다. 검찰의 주인인 국민은 안중에도 없나?

검찰의 권위주의적인 태도를 보며 화가 났지만 그래도 검찰 등의 사법부가 바뀔 때까지 장애인 당사자와 장애계의 끈질긴 노력은 계속될 것이다. 최종 목적지인 피해 장애인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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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팝송 감상, 월드컵 등을 즐기고 건강정보에 관심이 많은 반백년 청년이자, 자폐성장애인 자조모임 estas 회원이다. 전 한국발달장애인가족연구소 정책연구팀 간사였으며,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정부심의 대응을 위해 민간대표단의 일원으로 2번 심의를 참관한 경험이 있다. 칼럼에서는 자폐인으로서의 일상을 공유하고, 장애인권리협약, 장차법과 관련해 지적장애인, 자폐성장애인과 그 가족이 처한 현실, 장애인의 건강권과 교육권, 접근권 등에 대한 생각을 솔직하게 나눌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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