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나는 태어나자마자 속기 시작했다’ 표지. ⓒ동양북스, 이원무

사회복지학과로 편입한 2년 동안 한국사회의 불평등하고 부조리한 모습을 볼 기회가 많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사회를 비판하는 책을 그때부터 읽기 시작했던 것 같다.

작년에도 사회를 비판하는 느낌이 나는 책을 보게 되었다. ‘나는 태어나자마자 속기 시작했다’라는 제목의 책인데, 사회학 박사인 오찬호 씨가 쓴 책으로 총 8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 사회는 다르다와 틀리다를 구분하지 못하기에 차별과 혐오가 팽배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나, 기업인을 처벌하면 경제가 위축된다는 논리 속에는 경제적인 것만 해결되면 다른 것도 해결되리라는 황금만능주의가 한국 사회에 종교처럼 작용하는 웃지 못할 현실이 있다는 내용은 필자의 마음에 상당한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이외에도 여러 내용에 공감 가며 집중했지만, 필자로 하여금 시선을 끌게 해 이 책에 더욱 집중하게 만든 건 6장의 다음 제목이었다.

‘순수한 내 마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이 제목 다음에 나오는 내용들을 하나하나씩 읽어보았는데,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한 예로 ‘국악은 정말 따분한 음악일까?’라는 소제목이 있었는데 그 소제목의 내용은 이렇다.

팝의 황제 Michael Jackson(1958~2009). ⓒpixabay

일제 식민지 시대 때 우리 문화 말살정책과 미군정 때의 ‘세계 으뜸국가 미국’ 알리기로 인한 영향으로 우리 전통문화는 찬밥 신세를 면치 못했다. 교과서의 세계지도도 경제적 잣대로만 구분되어 있을 뿐이라, 학교에서 배울수록 미국이 위대해 보인다고 말이다.

이 과정에서 미국의 입장으로 음악도 정리되며 음악은 서양음악을 지칭하게 되고, 이들에게 낮선 한국 전통음악은 ‘국악’이란 범주로 별도로 묶어버린다. 이 과정에서 서양음악은 ‘원래’의 이미지, 국악은 ‘변두리’의 이미지로 기억되고, 이렇게 특정 음악에 대한 익숙함과 낮섬을 경험하면 감정도 학습을 당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 내용을 보면서 나의 과거를 돌아보게 되었다. 작은 누나와 나하고는 어려서부터 상당히 친했다. 작은 누나는 팝송을 듣는 걸 무지 좋아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누나의 영향 때문인지 나도 당시 팝송을 듣게 되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음색을 듣다 보니 웬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서 자주 듣게 되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팝송은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 되었다. 팝송에 담긴 가사의 의미도 궁금했는데, 물어봤더니 누나는 ‘그냥 의미 몰라도 음악 들으면서 기분만 좋으면 되는 거 아냐?’라고 얘기했었다. 그 이후로 가사의 의미는 모른 채 팝송을 계속 듣게 되었다.

팝송을 너무 좋아하다 보니, 한국 트로트나 대중음악엔 상대적으로 덜 관심이 가게 됐고, 국악에는 아예 관심이 없었다. 팝송은 좋은 음악, 트로트는 그럭저럭한 음악이고, 국악은 따분한 음악이라는 느낌, 감정이 나에겐 그때부터 생겼던 것 같다.

팝송을 필두로 한 미국 문화란 위대한 것이고, 국악 등의 한국 문화는 변두리란 우리 사회 정서에 작은 누나가 영향을 받았고 나도 그걸 같이 받다 보니 내 안에 그런 느낌이 자라났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국악은 정말 따분한 음악일까?’란 소제목 내용을 통해 들었다.

이모티콘을 통한 여러 감정들. ⓒpixabay

그런데 요즘 한국 트로트 보면 인기를 끄는 음악이 많다. 김연자의 아모르파티를 들으며 잠시 흥이 날 때도 있었다. 드라마의 ost에 나오는 대한민국 대중음악이나 BTS의 음악을 들으면, 경쾌하고 발랄한 음색에 중독성이 담긴 목소리가 나의 기분을 좋게 한다. 팝송을 무지 좋아하는 것은 여전하지만 말이다.

K-Pop을 필두로 전 세계에 한류 문화가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되면 나도 팝송보다 K-Pop, 한국 트로트를 좋아하게 되는 날이 올 것 같단 생각도 해본다. 그러고 보니, 감정은 순수한 것이 아닌 사회적 산물이란 게 진짜구나!

감정은 사회적 산물이란 생각이 또 들게 되는 순간이 있었다. 7년 전, 유엔장애인권리협약 NGO보고서연대 활동을 하던 당시에 있었던 일이다. 연대에서 내가 소속된 워킹그룹 회의가 있었다. 국가심의 준비를 위한 워킹그룹 의장의 제네바 예비 참관기에 대한 브리핑을 듣고 보고서 초안을 잘 다듬기 위해 논의하는 자리였다.

회의를 마치고 나서 워킹그룹 의장과 부의장과 같이 이야기를 나누다 무심결에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기 위해 ‘절름발이’정책이란 말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 나랑 안면이 있었던 장애계 단체에서 일했던 분이 그 말을 듣고는 ‘절름발이’라는 말은 지체장애인을 비하하고 무시하는 말이라며 쓰지 말라고 나에게 주의를 주었다.

들으면서 나도 자폐성 장애를 겪는 사람인데, 지체장애인을 비하하는 말을 쓴다면 나도 장애인을 차별하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게 되었다. 그래서 그다음부터는 그런 말을 쓰지 않는다. 그런 말을 하는 정치인을 보면 오히려 분개하고 저러면 안 된다고 댓글을 쓰는 지금의 나 자신을 보게 된다.

내가 그분으로부터 그런 말을 들었을 당시엔 장애인을 비하‧차별하면 안 된다는 공감대가 장차법 제정 이후 우리 사회 내의 장애인단체, 그리고 특히 장애인 당사자들에게서 20~30년 전보다 많이 형성되어 있었다.

감정이라는 뜻의 영어 단어 ‘EMOTIONS’. ⓒpixabay

아마도 그분이 그런 공감대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았을 거란 추측을 해본다. 그 영향을 나도 받은 거고. 그런 의미에서 분개라는 감정은 사회적 산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분과의 상호작용으로도 ‘절름발이’라는 말에 분개하는 감정이 생기기 시작했으니, 그런 차원에서도 그 감정은 사회적 산물임을 보게 된다.

물론 사회가 장애인을 시혜와 동정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게 아직까지도 지배적이지만 말이다. 장애인을 비하‧차별하면 안 된다는 공감대가 정치권, 사회의 고위층, 지도층의 뼛속까지 파고 든다면, ‘절름발이’라는 용어를 이들은 나쁘다고 느끼게 될 거고, 그렇게 되면 이 용어가 법 없이도 우리 사회에서 사라지게 될 날이 오지 않을까?

이외에도 여러 좋은 내용이 있으니, 관심이 있으신 분은 책을 사서 읽어보시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이 한마디만 다시 하고 마무리하겠다.

‘감정은 순수한 것이 아닌 사회적 산물!’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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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팝송 감상, 월드컵 등을 즐기고 건강정보에 관심이 많은 반백년 청년이자, 자폐성장애인 자조모임 estas 회원이다. 전 한국발달장애인가족연구소 정책연구팀 간사였으며,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정부심의 대응을 위해 민간대표단의 일원으로 2번 심의를 참관한 경험이 있다. 칼럼에서는 자폐인으로서의 일상을 공유하고, 장애인권리협약, 장차법과 관련해 지적장애인, 자폐성장애인과 그 가족이 처한 현실, 장애인의 건강권과 교육권, 접근권 등에 대한 생각을 솔직하게 나눌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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