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추석이 다가오기 전, 같은 장애를 겪고 있는 지인으로부터 뉴스를 공유받았다. B회사의 자회사형 장애인표준사업장인 카페에서 지적·자폐성 장애인 정규직 직원을 괴롭히는 등의 인권침해가 발생했다는 내용 말이다.

지난 9월 29일 더인디고 기사에 따르면, 부모 A씨는 중증장애를 겪는 아들의 직장 동료가 카페를 그만둘 때부터 사업장에 인권침해가 있는 것 아닌가 하고 의심했었다.

얼마 후 카페에 다니는 아들과 같이 병원에 가는 길이었는데, 아들이 휴대폰 문자를 보더니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에 A씨는 그동안에 주고받은 문자 내용을 보게 되면서 사업장에 인권침해가 일어났음이 사실임을 알게 되었다.

그 내용에는 시험을 깜빡 잊었거나 지각하면 팀장이 정신 차리라고 말하고, 직원들은 긴장한 듯 ‘네’라는 답변으로 소통했던 것이 내용 대부분을 차지했다는 거다.

어떤 한 직원에게는 팀장이 재택근무 시 업무가 시험 보는 것 외엔 없는데 TV에 신경 쓴 나머지 그거 하나 집중하지 못하냐는 말을 했단다. 시험 치르겠다고 직원이 말했지만 이어서 팀장으로부터 ‘왜 집중하지 않느냐, 정신 안 차리냐?’ 등의 말까지 들었단다. 그 직원뿐만 아니라 다른 직원들도 근무시간과 상관없는 오전 10시에 시험문제를 풀도록 하는 등 재택근무를 강요받기까지 했다.

심지어 팀장은 31세의 직원에게도 “네 나이가 몇 살이냐? 여기가 어린이집이냐? 월급은 따박따박 받으면서 성인이면 똑바로 정신 차려”하며 스스럼없이 반말을 했단다. 이렇게 직원을 상대로 반말과 지시적인 말투 등을 사용하며 장애인들을 모욕했다는 거다.

B라는 카페는 팀장1인, 매니저 2인이 관리‧감독했으며 초반에는 직무지도원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 3개월 후 관리자들의 지시를 통해서만 업무를 했다. 거기서는 자유로운 휴가 사용은 없었고, 카페 업무와의 관련성 이유로 매일 시험문제를 내며 15분 내 풀지 못하면 사람들 보는 앞에서 질책했고, 이게 반복되었단다.

발달장애인 이 모 씨 등이 직장 괴롭힘을 호소하며 인권침해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에이블뉴스 DB

이 사건을 바라보며, 필자는 착잡한 마음이 들었다. 왜냐면 31세의 직원에게 반말하는 팀장의 태도에서, 아직도 지적‧자폐성 장애인을 어린아이로 생각하며 권리의 객체로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카페 관련 업무를 이유로 15분 내 문제를 풀라며 풀지 못하면 질책하고 이것도 매일 그랬다는 말을 들으니, 조금은 화가 나기도 했다. 의사소통과 자기옹호가 필요한 지적‧자폐성 장애인은 충분히 기다리고 여유를 가지며 강점을 지원하면 느리지만, 내적 동기가 살아나며 능력을 발휘하는 능력자라는 걸 직장생활을 통해 경험했기 때문이다.

알기 쉬운 권리협약 ‘나 여기 있어!’를 제작할 당시, 제작과정이 쉽지 않아 도중에 그만두는 당사자 위원들이 생겨나는 바람에, 제작을 제안했던 일본의 한 교수에게 조금 늦어질 수 있으니 양해를 구한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2번 이상 보냈던 것으로 기억한다.

교수님은 괜찮다고 했지만 이런 게 계속되니 미안한 감정도 들었다. 결국에 제작작업을 중단하자 이러다 알기 쉬운 권리협약을 언제 만드나 하는 걱정이 연구소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밀려왔다. 하지만 연구소는 제작위원 당사자들을 재촉하지 않고 이들의 결정을 존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위원 3명이 알기 쉬운 권리협약을 다시 만들겠다고 다시 돌아왔는데, 이유를 물어보니 일을 하는 것보다 장애인권리협약을 공부하고 제작했을 때가 더욱 좋았단다. 제작속도는 느렸지만, 존중받은 이들의 내적 동기 덕에 권리협약 제작은 탄력이 붙었고 결국 7년 전에 알기 쉬운 장애인권리협약 ‘나 여기 있어!’가 나왔다.

만약 팀장이나 매니저가 다그치거나 재촉하지 않고, 느리지만 여유를 갖고 직원들 각자의 강점을 존중하며 일을 반복할 수 있도록 지원했더라면, 장애인표준사업장에서의 인권침해 사단은 발생하지 않을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이용자 중심의 자기옹호가 필요한 부분이었는데 하는 아쉬움을 금할 수 없다.

'장애인고용 광고하더니 발달장애인 괴롭힘 즉각 사과하라'는 문구의 피켓을 든 발달장애인. ⓒ에이블뉴스DB

또한, 지적‧자폐성 장애인하면 단순조립 업무만 할 줄 알고 복잡한 것은 할 줄 모른다는 식의 생각이 우리 사회에서는 여전히 강하다. 고등학교, 전공과 등에서 단순 업무를 중심으로 직업교육이 이루어지는 게 요즘의 우리나라 현실이다. 대기업 취업에 도움이 되는 고등교육 정책에 지적·자폐성 장애인은 거의 배제되다시피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지적‧자폐성 장애인의 선호와 강점을 반영한 일자리 정책이 우리나라에선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단순업무 외에 다양한 직종에 강점을 보이는 지적‧자폐성 장애인이 대기업으로 들어가는 건 아예 꿈도 꿀 수 없는 현실이다. 외국에선 IT에서 특출난 능력을 발휘하는 자폐인들을 고용하는 회사인 오티콘 등의 사례를 보며 부럽기까지 하다.

선호와 강점을 반영한 일자리 정책이 아니다 보니, 카페 일에 흥미를 못 느끼는 지적‧자폐성 장애인의 경우 집중하지 못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내가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일을 하는 경우라면 엄연히 직장이니 하는 척은 하겠지만, 집중도는 떨어질 것 같다.

카페 일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지적·자폐성 장애인에게 집중하라고 다그친다면 이들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모른 채 이들에게 반인권적인 폭력을 행사하는 거나 다를 바 없다.

결국 이번 장애인표준사업장 인권침해는, 지적‧자폐성 장애인의 선호와 강점을 존중하지 않는, 다시 말해 이들의 자기결정권과 선택권이 박탈된 고용정책을 추진한 것에 그 근본원인이 있다고 본다. 또한, 자기옹호가 이용자 중심이 아닌 아직까지도 제공자 중심이라는 것도 한 원인이라고 본다.

따라서 장애인 당사자의 의견이 반드시 포함된 이용자 중심의 자기옹호 사례를 민간에서 공유하고, 이를 통해 정책으로 연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지적‧자폐성 장애인의 욕구와 선호, 강점을 존중하는 등 장애인 고용의 질 증진까지 고려한 고용정책이 필요하다.

국가‧지자체 당국자들은 장애인 고용정책 시 고용의 양에만 치중했던 건 아니었는지 스스로 돌아보아야 한다. 양과 질을 함께 중시하며, 지적‧자폐성 장애인의 삶의 질이 증진될 수 있는 장애인 고용정책은 물론 아울러 당사자 의견을 존중하면서 이용자 중심의 체계적인 자기옹호체계 수립에 대해 국가‧지자체 차원의 근본적 고민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이를 통한 정책을 수립‧시행해 세금을 당당히 내고 다른 사람과 함께 어울리는 지적·자폐성 장애인이 많아지는 사회가 현실로 다가오게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아무쪼록 인권침해를 한 팀장이나 매니저에게 정당한 처벌이 가해지는 등, 인권침해 사건이 잘 해결되길.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여행과 팝송 감상, 월드컵 등을 즐기고 건강정보에 관심이 많은 반백년 청년이자, 자폐성장애인 자조모임 estas 회원이다. 전 한국발달장애인가족연구소 정책연구팀 간사였으며,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정부심의 대응을 위해 민간대표단의 일원으로 2번 심의를 참관한 경험이 있다. 칼럼에서는 자폐인으로서의 일상을 공유하고, 장애인권리협약, 장차법과 관련해 지적장애인, 자폐성장애인과 그 가족이 처한 현실, 장애인의 건강권과 교육권, 접근권 등에 대한 생각을 솔직하게 나눌 예정이다.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