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진기와 스마트폰. ⓒPixabay

얼마 전 대한상공회의소(이하 대한상의) 샌드박스지원센터와 산업통상자원부(이하 산자부)는 재외국민에 대한 비대면진료 등의 8건을 의결했다고 발표했다. 발표한 대한상의 측에서는 코로나 시국으로 인해 힘들어하는 재외국민의 비대면 진료가 시급하다고 의결 이유를 들었다.

의결한 8건 중에는 ‘비대면 진료서비스’(인하대병원, 라이프시맨틱스)인 임시허가 2가지도 포함되어 있다. 라이프시맨틱스는 산재부가 허용한 의료 관련 온라인 플랫폼이다.

그 온라인 플랫폼은 사실은 ‘의료중개업’의 형태이고, 중개업 대상은 빅5 대형병원이며, 동네병원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대한민국의 경우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라 특정의료기관으로의 유인알선을 금지하고 있다.

여기서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란 모든 국민들이 어떤 의료기관에서 진료를 받든 건강보험의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말한다. 민영의료체계가 많이 발전한 우리나라의 경우 의료기관에서 봤을 때, 당연지정제는 달갑지 않다. 당연지정제를 폐지해야 의료기관은 진료비를 마음껏 결정해 환자에게 그 비용을 전액 청구할 수 있게 되니 말이다.

아무튼, 플랫폼을 통해 환자가 대상병원의 의사에게 비대면으로 진료받는 경우, 대상병원은 빅5 대형병원만이다. 그렇게 한 이유는 의료 플랫폼을 만든 기업의 생각엔 동네병원과 같이 할 때 이윤이 잘 나지 않고 수지타산이 맞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대형병원은 기업의 이윤과 수지타산에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테니까.

결국, 산자부가 발표한 비대면 진료로 인해 대형병원으로 쏠릴 가능성이 커지며, 이게 계속된다면 동네의원 등 1차 의료기관은 문을 닫게 되는 일이 빈번히 발생할 것이다. 이는 공공의료체계의 붕괴로 이어지는 것이리라.

또한, 비대면 진료를 위한 플랫폼 등을 이용할 때 기업은 이윤이 우선이니, 플랫폼을 이용한 비용은 의료비에 들어가게 될 것이고, 이용한 만큼 의료비는 증가하게 된다. 이윤을 극단적으로 추구하는 기업의 경우라면 의료비는 폭증 수준까지 가게 될 것이다.

비대면 의료 플랫폼을 이용한 진료는 또한 민감한 개인정보 공유까지 허용하는 거라, 기업은 이를 통해 돈벌이가 되긴 하겠지만 환자 개개인은 정보 유출로 인한 각종 인권 침해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여기에 재외국민에 대한 비대면 진단과 처방은 안전성과 유효성이 전혀 입증되지 않은 터라, 이는 재외국민은 물론 모든 국민의 건강권 위협으로까지 갈 수도 있다.

재외국민 비대면 상담진료 서비스 개요. ⓒ산업통상자원부

산자부 건과는 별개로, 이번 3차 추경에서 통과한 비대면 진료 예산과 관련해서는 동네의원 혁신형 건강플랫폼 구축 지원(6만 명, 33억 원), 보건소 ICT 활용 방문건강관리(60개소, 23억 원), 보건소 모바일 헬스케어(140개소, 11억 원) 등 ICT기기를 이용한 건강관리사업에 67억 원을 배정했다.

건강관리사업의 경우 ICT활용 방문건강관리는 그나마 낫지만, 동네의원 혁신형 건강플랫폼 구축 지원, 보건소 모바일 헬스케어 등의 경우 의원에서 파견한 간호사가 환자 집에 방문해 원격으로 의원에 있는 의사와 협진한다든지 등의 구체적 계획이 나와 있지 않고 오로지 기기 배분만 나와 있다.

방문해서 진료나 건강관리를 하는 것이 번거로우니 기기 배분만 할 가능성이 높다. 그게 거짓말이면 좋겠지만 말이다. 구체적 계획이 나와 있지 않는 한, 이는 특히 비대면 의료기기에 대한 접근성이 낮은 어르신, 장애인 등의 의료접근성을 후퇴시킬 게 뻔하다.

정리하면, 정부가 지금 이렇게 추진하려 하는 비대면 의료 시범사업이란 경제계의 이해관계만을 반영했으며, 시범사업을 통해 제도화될 경우 의료민영화로 갈 가능성이 상당히 큰 것이다. 정부는 비대면 의료이지, 원격의료 아니라고 하지만 원격의료가 맞으며, 이명박 정부 시절 발표한 의료민영화 계획과 상당부분 일치한다.

정부의 이번 비대면 의료 시범사업은 비장애인에 비해 소득수준이 낮고 의료비용은 높은 장애인에겐 재앙이나 다를 바 없다. 비장애인이어도 상황이 다르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시민단체와 장애계에서 지금 코로나 시국에 장애인과 관련, 장애인 주치의제 등 공공의료체계 구축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코로나 의료 대책에는 이런 게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의료민영화를 신랄하게 비판한 마이클 무어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식코 홍보 포스터. ⓒ다음영화

장애인건강주치의제도의 경우 정부에서 시범사업으로 하고 있기는 하다. 주치의제와 관련해 장애계에서는 장애인의 건강문제 중 주치의 자신이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은 주장애 관리의사 등 전문의료인들이 진료․치료하고 나머지 부분에선 주치의가 환자와의 지속적 상담을 통해 건강관리를 해주길 바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장애를 겪지 않는 사람을 진료하는 것에 비해 장애인 주치의로 활동 시 상대적으로 수가가 저렴하니 의사들은 장애계가 원하는 장애인건강주치의에는 반대했다. 이에 보건복지부가 장애인 주치의 시범사업 활성화를 위해 가정의학과만 주치의에 참여하던 것을 내과, 정형외과 등에까지 확대시키는 쪽으로 했다.

여러 과의 의사들이 장애인주치의로 활동해 주치의 수가를 추가로 받을테니, 이 경우 의사들에겐 그나마 이득은 생겼을 거다. 하지만 정형외과 등 타과 의사가 주장애 관리뿐만 아니라 일상건강관리까지 한다고 하면 장애인으로선 건강관리 관련 전문성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게 될 터이니, 건강주치의 시범사업 참여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거다.

더군다나 정부는 시범사업에서 장애계의 요구와는 달리 ‘일반건강관리의사’와 ‘주장애관리의사’, ‘통합관리의사’등으로 삼원화해 건강관리가 일원화되지 못함은 물론, 절차도 복잡해 장애인이 이용하기 쉽지 않았다.

이외에도 장애인주치의를 실시하는 의료기관 편의시설 미설치율이 최대 92%에 이르러, 장애인이 병의원을 방문하기도 어려웠다. 그리고 장애인주치의 시범사업 참여 시 자부담으로 8만5580원이나 12만8310원을 내야 했기에, 소득수준이 낮은 장애인에게 경제적 부담이 크게 느껴져, 시범사업 참여를 꺼리거나, 참여등록을 했다가도 중간에 그만두는 경우가 27%에 달했다고 한다.

이렇게 장애인주치의 시범사업은 이용자가 아닌 제공자 중심으로 흘러가며, 장애인이 이용하기 힘들었다. 설령 시범사업을 정신적 장애인에게도 실시했다 하더라도, 의료진의 장애 이해 부족으로 인해 시범사업 활성화가 잘 되지는 않았을 거다.

주치의제도가 아니더라도, 장애인의 의료비 지원 대상은 생계급여수급자, 의료급여수급자 및 이와 유사한 자로 한정하기에, 장애인이 비급여로 인해 병의원을 이용하기 어렵다는 점을 장애인건강권법에서는 간과했다. 이로 인해 장애인은 상대적으로 의료비 부담에 많이 시달리고 있다.

장애인 건강권 보장을 촉구하는 장애인 당사자 모습. ⓒ에이블뉴스DB

그래서 의원급 1인의 의사가 장애인의 건강정보를 관리하며, 2차 장애 예방 및 건강관리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체계를 갖추고, 사업참여 자부담 비용을 낮춤은 물론 의료진을 대상으로 한 인권중심의 장애이해교육 실시 등 이용자 중심의 장애인건강주치의 시범사업을 실시했으면 한다. 이런 식의 시범사업을 거쳐 후에는 이용자 중심의 장애인건강주치의 제도로 정착했으면 한다.

장애인에게 의료비 비급여를 지원하도록 장애인건강권법을 개정하고 이를 실제로 실시, 경제적 부담을 줄이는 것 등도 생각해볼 수 있겠다. 더군다나 지금은 코로나 시국이니 감염병 대응을 위한 공공의료 인력․병상 확보, 자가격리 장애인 지원인력에 대한 위험수당 및 안전장비 제공 등의 장애인지적 정책, 필수의료장비의 국산화와 고도화 등이 필요하다.

이렇게 장애인의 건강권과 생명권을 지킬 수 있도록 정부가 공공의료체계를 강화하는 사업, 대책을 코로나 시국을 기점으로 그 이후까지 마련해 실시했으면 한다. 그게 장애인들이 인간다운 삶을 누리기 위해 절실히 필요한 것이다.

그것을 무시하고 보건의료를 모두가 누리는 공공재가 아닌 상품으로 인식하는 지금의 비대면 의료 시범사업을 다시 재고하지 않고서 제도화시키려 한다면 결국엔 국민의 삶을 내팽개치는 직무유기를 범하게 되고 이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 몫이 될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재난 자본주의 그 이상 이하도 아닌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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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팝송 감상, 월드컵 등을 즐기고 건강정보에 관심이 많은 반백년 청년이자, 자폐성장애인 자조모임 estas 회원이다. 전 한국발달장애인가족연구소 정책연구팀 간사였으며,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정부심의 대응을 위해 민간대표단의 일원으로 2번 심의를 참관한 경험이 있다. 칼럼에서는 자폐인으로서의 일상을 공유하고, 장애인권리협약, 장차법과 관련해 지적장애인, 자폐성장애인과 그 가족이 처한 현실, 장애인의 건강권과 교육권, 접근권 등에 대한 생각을 솔직하게 나눌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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