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벽사이를 뛰어넘는 이미지. @픽사베이

‘장애’라는 용어와 그 영역은 평범함을 꿈꾸던 나와는 상관이 없는 영역이었다. 공무원으로 살아가려다 신학의 길을 택하면서 진로가 수정되었고, 이후 그저 평범한 교회의 일상화된 목회를 하면서 규모가 크지 않는 교회에서 성경 말씀대로 실천하며 사는 인생을 내 삶의 궁극적인 목표로 살던 사람이었다.

단 한 번도 장애를 겪고자 위험하게 찾아다니지도 않았으며, 주위를 경솔히 살핀 적 또한 내게는 없었다. 그렇게 장애는 나와는 별개였다. 그 누가 장애인이 되고 싶은 사람이 있는가마는 2009년 그야말로 나는 내 인생계획표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장애를 급작스럽게 맞이해야 했다.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원하지도 취하고 싶지도 않은 그 세상이 내게 강제로 열려버렸다. 미지의 세계는 기대감이라도 있지만 내게 새롭게 열린 세상은 기대감은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고 오히려 눈물 쏟을 일만 남은 인생의 예고편이었다.

나는 2009년 말, 바이러스성 척수염의 후유증으로 신체의 신경회로 역할을 하는 척수신경의 제 9번째 부위(흉수 9번)가 손상을 입었다. 이후 장애인으로 살아온 지난 11년의 시간은 그전에 살아온 서른여섯 해 보다 길고 다이나믹한 시간의 연속이었다.

척수 손상이전, 2박 3일 산을 타야 도착하는 지리산 종주 7회와 특출하게 잘하지는 못해도 각종 스포츠를 즐기던 사람으로서 건강함은 늘 자부하던 이가 바로 나다. 그런 내가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는 침대 밖을 한 치도 벗어 날 수 없는 삶을 살아야한다는 것은 당시로써 나는 순순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현실이었다.

걷지 못하는 것뿐 아니라 배설의 욕구조차도 스스로 해결해 내지 못하는 삶은 내게 자괴감을 가져다주기에 충분했다. 눈물이 흘러넘쳐 침상을 적시고 그 눈물바다에 침상을 띄우리만치 애통해하고, 울며 끓어오르는 분노를 삭여야 했다던 성경의 이야기는 다른 이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의 이야기였고 재활 초기의 시간은 이런 눈물겨운 시간들의 연속이었다.

시간이 약이 되었는지, 아니면 그럴 때가 되었는지 시간은 흘렀고 2년여 병원생활을 하면서 갑자기 더 이상 이대로 있을 수 없다는 생각에 퇴원을 목표로 재활에 전념하였고, 퇴원 후 곧바로 서울에서 장애를 입기 전 다니던 대학원에서 교육학 공부를 마저 마치고 나서 막연히 ‘장애인=사회복지’라는 공식을 내세워 사회복지학 대학원 과정에 입학하였다.

재활병원에서 실습과정도 거쳐 정규 사회복지사 자격을 취득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장애유형들을 접할 수 있었다. 그전까지는 내가 최고의 아픔이었는데, 나는 나보다 더 심각한 질환 가운데서도 기뻐하고 때론 나보다 경미한 인생의 상처에도 분노하는 이들을 종종 만났다. 고통의 순간이 되면 우리는 가장 어린아이가 된다. 그런 이들에게 희망은 아니어도 일상의 기쁨을 전할 수는 없는 것일까?

누구나 ‘처음 겪는 장애’일 텐데, 누군가는 정보가 없어서 어떤 이는 무기력에 빠져 세월을 보내는 이들이 생각보다 너무 많았다. 장애 당사자들과 그 가족들을 만나면 생기는 수많은 의문과 관계의 갈등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장애 초기부터 어느 누구도 시원스레 그들의 마음(어쩌면 나의 마음)을 알아주지 못한다는 목마름이 지속적으로 있었다. 그래서 장애인들의 마음을 눈높이에서 조금 더 심도 있게 살피고 도움을 주고자 택한 것이 박사과정에서 상담을 공부해 보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가장 잘한 선택이라 생각한다. 지금 나는 내 인생에서 또 다시 이런 의미 있는 선택을 할 기회가 또 있을까 싶을 나에게 꼭 맞는 영역을 구축해 나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배움을 나누고 경험을 공유하며 미래를 함께 살핀다는 것이 어떤 때는 내 가슴을 이전보다 더 열심히 뛰도록 만든다.

내가 요즘 연구하는 한 연구의 결과에 따르면, “외상 후 성장 모델에서 외상사건을 입은 개인이 자기 개방을 했을 때 지각된 사회적 지지를 받으면 정서적 고통이 감소되고 침습적 반추가 조절되며 의도적인 반추로 넘어가 내적 도식이 변화하는 긍정적 효과가 있다”고 보고하고 있다.

다소 말은 어렵게 표현하고 있지만, 이는 외상 후 성장에 있어서 상담의 기술적 역할과 운용이 적절하게 사용된다면, 외상을 입은 사람들의 정서변화에 충분히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지금 나는 그토록 피하고 싶었던 과거가 상담의 과정에서 오히려 미래로 나아가는 지렛대가 될 수 있는 선상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장애가 있지만 장애가 나의 인생에 걸림돌이 아니라 우연히 만난 인연이라 여긴다.

그러나, 그 와중에 듣던 단어, ‘장애극복!!’. 이 단어를 들으면 밥 먹다 생선가시가 입에서 맴돌 때 느끼듯 무언가 입에서 자꾸만 뱉어내고자 하는 욕구가 솟구친다. 나는 태생적으로 반골기질보다는 순응적인 기질이 더 많은 사람이지만, ‘장애극복’이란 단어는 때때로 나의 마음을 가른다. (이겨내야만 하는 사안인지는 모르겠으나) 이겨내지 못하고 살고 있는 수많은 장애인들에게 극복하고 뛰어넘어야 하는 ‘어려운 숙제’를 품고 살 것을 강요하는 듯하다.

장애를 극복의 대상으로 여기지 말고 세상을 살아가는 한 사람의 특징으로 볼 줄 아는 시각을 가져야 한다. 급작스레 장애를 입어 장애인이 되더라도 그 장애가 장애되지 않는 사회가 조성되어 있다면 장애는 다소 불편할 따름이지 살아가기 힘든 것은 아니다. 지금처럼 장애당사자가 사회적 편견에 직접 맞닥뜨리느라 상처받지 않도록 편견과 맞서 함께 싸워 줘야 하는 것은 장애 당사자만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과 그 사회적 구조 체계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학교와 직장에서 장애인식개선 교육이 의무화가 되었다. 물론 의무화 이후 만족스럽게 괄목할 만한 개선이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시간이 쌓여 언젠가는 장애가 더 이상 장애가 되지 않는 사회가 오리라 믿는다.

이는 장애와 사회 환경에 대한 사회적 의식구조가 과거보다 많이 개선되었고, 고용과 사회복지 분야에서도 당사자 주의와 클라이언트 중심의 정책을 표방한 다양한 정책을 시행하면서 차차 개선될 것이란 기대가 있다. 이런 사회의식은 비장애인이 급작스럽게 장애인이 되는 ‘중도장애인’을 수년간 상담해 온 나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필수 불가결한 인식의 전환과정이다.

장애인 당사자들은 때때로 수동적인 삶이 편리하다 못해 익숙함에 젖어 살 때가 너무 많다. 그래서 주체적이기 보다는 피동적으로 간병인과 보호자, 지인들에게 내 인생을 스스럼없이 의탁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혹여 그런 상황에 있다면 당장 그곳을 벗어나길 권한다. 당장 그런 환경을 떨쳐낼 수 없다면 나만의 힘을 기르기를 바란다. 장애도 하나의 특질이다. ‘나는 스스로 무엇을 (잘)할 수 있을까?’ 근사하게 잘해내지 못해도 된다. 다만, 그런 고민의 시간을 스스로 가져보기를 바란다. 시간은 필요하겠지만, 나만의 인생을 그려내는 것이 얼마나 멋있는 인생인가를 그 고민의 과정과 끝에서 충분히 누릴 수 있으리라!

한동안 ‘스웩(swag)’이란 용어가 인기가 있었다. 그전에는 아마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이라는 단어가 있었지 아마. 그러다 최근에는 ‘flex’란 용어를 인터넷, TV, SNS상에서 종종 사용하는 것을 접하게 된다. 원래 힙합퍼나 랩퍼가 남들에게 뭔가를 자랑하고자 하거나 뽐내고 싶을 때, 어떤 때는 부사적으로 어떤 때는 형용사적으로 사용하는 용어다. 현찰이 ‘솨솨솨’ 공중에 뿌려지는 권총을 쏘는 모습을 보며 불편해하는 시선들도 물론 있다.

그러나 그들은 누구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 그리고 말한다. “내가 이까짓 돈, 플렉스(flex) 해버렸지 뭐야”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장애를 가진 나도 누구 눈치 볼 것 없이 주체적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해 보는 것이다.

다소간 시행착오가 있더라도 그 시간은 낭비가 아니라 고스란히 자양분이 될 테니 적극적으로 나서길 권한다. 차별과 불평등이라는 인생의 숙제를 두고 고민하고 주저앉아 누군가를 탓하고 원망하기 보다는 의연하게 맞서고 유연하게 넘기며 외치길 바란다. “숙제 같은 장애 따위, 내가 플렉스 해버렸지 뭐야~”

※위의 글은 2020년 대전광역시 장애수기 공모에 응모하여 대전광역시의회 의장상을 수상한 “인생숙제 같은 장애, 내가 플렉스(Flex) 해버렸지 뭐야~!”로 내용은 일부 수정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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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구 칼럼니스트 한남대학교 내 한남장애인심리상담센터 부센터장으로 대학과 병원, 복지기관 등에서 강의, 집단 및 개인상담, 장애인식개선교육을 병행하고 있다. 2009년 심장마비 후 척수경색으로 인해 척수손상 장애인이 되었으나 ‘비갠 뒤 푸르름은 그 의미를 더한다’는 가치관을 가지고 오늘도 즐겁게 살고 있다. 교육학과 상담학 박사과정을 공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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