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는 타인의 시선에 민감하고 나서는 걸 권장하지 않으며, 튀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 속에 살도록 강요한다.

나 또한 어려서부터 이러한 사회에 적응하려 애쓰며, 무한 결과 책임론적인 우리 사회에서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가급적 어떠한 책임도 맡지 않도록 눈치를 보며 살아왔다.

그래서인지 그 흔한 SNS도 하지 않다가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과 생각을 허술한 글솜씨로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는 것이 어리숙하고 무모한 행동이었다고 주춤 뒤로 물러서게 만든 것은 한 줄의 댓글이었다.

나와 일면식도 없는 타인의 생각을 그렇게나 의식하다니, 내게 있어 가장 큰 두려움은 다른 사람의 시선 아니었을까? 타인의 시선 따위는 개나 줘버린 자폐성장애 나의 아들과는 상반된 인간이 아닌가?

자폐성 장애는 인간이 가진 복잡한 수만 가지 감정이나 미묘한 뉘앙스를 이해하는데 지독한 곤란함을 느낀다. 그래서 반복 교육을 통해 당면한 상황과 감정들을 암기하듯 습득하게 된다.

이 모든 것을 죄다 설명하고 가르쳐야만 한다. ‘영원’이란 이 세상 모든 것을 아는데 걸리는 시간이라고 하는데, 이제 엄마는 영원도 약속해야 한다. TV에서 우는 장면이 나오면 “왜 울까?” “슬퍼서”, “왜 웃을까?” “좋아서”, “옷을 벗고 다니면 왜 안 될까?” “창피해서”....

아들은 세 살짜리 꼬마처럼 샤워 후 알몸으로 집안을 누비는 것이 너무나 태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사춘기가 되어 이차 성징이 나타난 뒤로는 여간 난감한 일이 아니다.

궁리 끝에 샤워가운을 입고 나오도록 훈련시키고 벗은 몸을 다른 사람이 보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최대한의 오버액션을 동원하며 반복에 반복을 더해 교육시켰다.

문제는 샤워가운을 입고 야무지게 묶지 못하여 풀려나간 끈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경쾌한 투스텝으로 집안을 누비는데서 생겼다. 그래도 엄마의 눈에는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 정도로 왜곡되고 미화된 모습이지만 같은 가족인 누나에게는 다르게 보였다.

“엄마, 이젠 길을 가다가 바바리맨을 만나도 안 놀랄 거 같아요”

‘다비드’와 ‘바바리맨’ 이것이 자폐성 장애를 보는 나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의 차이가 아닐까?

이 어마어마한 간격 때문에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경험하고 생각해야 하는 공감까지는 바랄 수 없는 건 아닐까? 단지 다름을 인정하고 당신들에게 큰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그저 좀 참아달라고 부탁해보는 수밖에 없는 건 아닐까?

우리가 가늠하기 힘든 시선의 차이를 극복하고 보완해 줄 제도적 장치를 함께 고민해 보아야 하겠다.

아들과 다르게 엄마는 ‘갤러리’에 무지하게 약한 타입이지만 그 두려움에 물러서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용기를 다시 한번 내보려 한다.

나이를 먹을수록 남 욕하는 얘기와 돈 버는 이야기를 빼면 빈약하기 그지없는 우리의 인생에서 나보다 더 불행하게 살다간 고흐의 작품 속 밀밭을 스치는 바람에 대하여 솔직하지만 쓰일 데 없을지도 모를 이야기를 계속해 나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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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이 칼럼리스트
우리아이발달지원센터를 운영하며 장애인들의 교육과 사회적 융합에 힘쓰고 있다. 컬럼을 통해서는 발달장애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얻어내고자 발달장애 아들과 함께하는 소소한 일상들을 소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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