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삶의 주기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성인기이다. 무려 40년 이상의 성인기를 지내야하는데, 이 시기에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큰 과제와 과업은 단연 ‘일’ 일 것이다.

생애주기별 서비스 중 성인기 장애인의 가장 큰 욕구도 ‘일’이며, 정부가 가장 핵심적으로 추구해야 하는 과제도 역시 ‘일’이다.

실제로 보건복지부 2017년 장애인실태조사에서 사회 및 국가에게 가장 우선적으로 요구하는 사항이 소득과 고용 보장(소득 41.0%, 고용 9.2%)으로 나타났다.

정부 또한 제5차 장애인정책종합계획(2018~2022)에서 ‘장애인의 자립생활이 이루어지는 포용사회’를 비전으로 이의 실현을 위한 70개의 세부과제를 제시하고 있다. 결국 ‘일이 곧 복지다.’ 라고 할 수 있다.

더욱이 장애인에게 ‘일’은 비장애인의 ‘일’ 그 이상이다. 장애인에게 일은 생계를 위한 수단이자 재활에 필요한 교육이고, 내가 일한 댓가를 받으며 한 사람의 국민으로 살아갈 수 있는,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이자, 자존감이며, 자신감이다.

이렇게 장애인의 삶에 중요한 일자리를 제공하고, 교육하고, 성인기의 대부분을 일과 프로그램을 통해 사회에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장애인복지시설이 있다.

「장애인복지법」제58조제1항제3호에 따라 설립·운영되어 중증장애인이 직업생활을 통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 전국 651개의「장애인직업재활시설」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장애인직업재활시설에는 ‘두 가지의 얼굴’ 이 존재한다. 한 가지는 생산과 성과라는 수량적 가치의 얼굴이고, 나머지 하나는 복지와 훈련 및 사회참여 등 사회적가치의 얼굴이다.

직업재활시설은 생산시설인가 복지시설인가, 공장등록을 해야 하는가, 노유자시설 허가를 받아야하는가 등 직업재활시설의 ‘두 가지 얼굴’로 인해 야기되는 과제가 산적하다. 그러나 필자는 직업재활시설의 가치에 관한 제한적이며 원론적인 이야기만 해 보고자 한다.

장애인에게 최저임금을 보장해주기 위해 애쓰는 것, 고용전이를 목표로 일하는 것,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것 등 수량적 가치는 분명 직업재활의 얼굴이다.

또 하나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사회적가치의 얼굴이 있다. 그것은 계랑화 되거나 수치화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강력하고 분명하다. 장애인 본인 뿐 아니라 그 가족에게까지 영향력을 미치기 때문이다.

즉, 장애인 당사자에게는 일과 직업훈련,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그 안에서 느끼는 행복과 자기만족, 성취와 자신감이 있고, 가족에게는 맞벌이를 가능케 해주고 안심하고 이용할 수 있는 행복한 시설이 지역사회 안에 존재한다는 안녕감과 만족감 등이 있다.

실제로 그 동안 직업재활시설의 비용-편익 분석을 시도한 연구, 조사들을 살펴보면 대부분 장애인의 소득·취업 증가, 조세증가, 공공부조 비용 감소 등의 ‘생산적(경제적) 요소’와 부모·가족의 경제활동 참여라는 ‘사회적 요소’를 직업재활시설의 가치로 제시하고 있다. 또한 모든 연구에서 직업재활시설이 최소 1.2배~2배 정도의 사회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리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직업재활시설은 이러한 생산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균형있게 충족시킬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현실의 사회는 점점 기계화되고 실적을 중요시 여긴다.

기계가 사람 일을 대신하고 일자리가 점점 줄어들면서 기계를 조작하고 통제(control)하는 일자리만 남게 되고, 생산성만 강조하게 된다.

중증장애인 고용전이를 위해 기업이 원하는 조건을 충족시키기가 갈수록 쉽지 않다. 2018년 전체 직업재활시설의 수익금은 1,021억 원으로 직업재활시설을 이용하는 18,205명의 장애인의 임금과 훈련수당을 감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생산적 가치가 강조되면서 직업재활시설은 사회에서 장애인의 고용전이도 최저임금도 제대로 지원하지 못하는 악덕기업으로 비쳐지기도 한다.

장애인 당사자와 가족들에게는 장애인의 내적 성장과 역량확대에 도움을 주는 재활시설로 비쳐지기도 하지만, 가족 기능 회복, 자신감과 자존감 제고 등 삶의 질적 변화는 그다지 잘 드러나지 않는다.

가시적인 생산적 가치에만 집중하다보니 중증장애인에게 직업적·복지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능이 위축되고 ‘훈련-고용전이-재훈련 및 신규 이용자 확대’의 선순환이 제대로 작동하지도 못하고 있다.

사회적 가치와 생산적 가치의 두 얼굴을 모두 지닌 직업재활시설은 장애인이 일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고, 훈련과 프로그램을 통해 행복과 가족의 안녕을 책임지는 총체적 복지(whole-welfare)를 수행해야 한다.

이를 위해 직업재활시설의 두 얼굴이 서로 조화롭게 어울려야 하는 데, 생산적 가치의 지나친 강조가 사회적 가치의 위축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 현재의 상황이다.

국가는 직업재활시설이 총체적 복지를 실현할 수 있는 정책대안을 적극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한 편으로는 생산적 가치 제고를 위한 생산판로 확보나 최저임금 지급을 위한 방안을 책임감을 가지고 고민하면서, 다른 한 편으로는 직업재활시설의 사회적 가치를 극대화 할 수 있는 방법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

지난해부터 정부는 민관합동 최저임금적용제외 TF를 구성하여 최저임금 적용제외 장애인근로자 지원과 이를 위한 직업재활시설의 역할 재설계 방안을 논의하였고, 조만간 그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라고 한다.

부디 이번 정부안에 눈에 보이는 실적에만 연연하는 것이 아닌, 장애인이 자부심을 가지고 일하고 행복할 권리를 누리며 살아갈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 할 수 있는 체계적이고 구체적인 방안들이 담겨있기를 기대해 본다.

*칼럼리스트 박미정님은 한국장애인직업재활시설협회 분과위원장이자 밀알꿈씨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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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장애인직업재활시설협회 일은 우리 모두의 권리이자 행복한 삶의 기본 조건입니다. 그러나 장애인에게는 성인이 되면 일을 통해 사회와 소통하며 일상을 살아가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삶의 과정이 아직 요원합니다. 지역사회에서의 삶과 일자리의 중요성이 대두되는 요즈음, 직업재활을 비롯한 장애인 일자리에 대한 각계각층의 깊은 고민과 협력이 무엇보다 중요한 때입니다. 칼럼을 통해 직업재활 현장의 모습, 국가의 정책과 제도, 해외 사례, 나아갈 방향과 과제 등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장애인의 일과 직업재활, 그리고 행복한 삶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보다 발전적인 길을 찾아 나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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