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에서 일하다보니 업무가 끝나고 얼마 안 가 컴퓨터가 자동으로 꺼지게 하는 방침이 왜 정시퇴근을 장려하는 대책인지 이제는 알 정도로 컴퓨터 없이는 하루도 일을 못하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다만 제 사무실은 데스크톱 PC가 아닌 노트북을 사용하기 때문에, 가끔 키보드 작업이 어려워서 많은 직원들은 사비를 들여 개인 키보드를 반입해옵니다. 저는 이러한 상황을 모르고 있었다가, 최근에 우연한 계기로 적합한 키보드를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입사하자마자 사무실에서 키보드를 지급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키보드 구조가 너무 익숙하지 않아서 업무를 보다 키보드 작동 사고가 잦았다는 것입니다. 입력 부분이 뒤섞이거나, 의도치 않게 오타가 자주 튀어나오거나 그런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너무 불편해서 저도 결국 키보드를 하나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 무렵, 우연한 사건이 생겼습니다. 이직을 하기 위해 퇴사한 직원이 자신이 가지고 온 키보드를 두고 퇴사했기 때문입니다.

한동안 그 키보드는 회사 한구석에 있었습니다. 다행히 그 키보드는 익숙한 구조로 설계되어있어서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관리자가 “그 키보드를 가져다 써도 됩니다”라고 허락하자 곧바로 그 키보드를 노트북에 끼워서 곧바로 업무를 봤습니다.

필자의 집 서재 겸 작업실에서 사용하는 실제 키보드(사진은 사무실에서 사용하는 실제 키보드가 아님). ⓒ장지용

다행히 그 키보드의 익숙한 구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그 이후로는 키보드 관련 사고는 전혀 없었습니다. 졸지에 작업효율이 대단히 많이 올라갔습니다. 보조 모니터를 사용하는 것이 작업에 효율적이라는 사실을 알고 사무실에 요청해서 보조 모니터를 받아온 이후로 키보드 교체 사건이 업무 효율이 많이 올라간 계기가 된 것입니다.

모니터 하나를 더 받아오고 키보드 하나를 교체했다는 것이 업무 효율이 많이 올라갈 수 있게 된 계기가 되었다는 의미는 결국 자신에 맞는 ‘작업 도구’를 가진 것이 업무 효율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확실히 깨닫게 된 계기였기 때문입니다.

사실 많은 발달장애인 노동자들은 작업 도구를 보면 둘 중 하나를 합니다. 작업 도구를 나에게 맞추느냐, 아니면 내가 작업 도구에 맞추느냐 둘 중 하나입니다. 제가 사용하는 작업 도구인 모니터와 키보드는 그래도 ‘커스터마이징’이 가능한 작업 도구라서 작업 도구를 제게 맞출 수 있었던 것입니다.

어렵게 말해서 작업 환경을 노동자 특성에 알맞게 배치했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반대로 노동자 특성을 작업 환경에 알맞게 재구조화하는 방법도 있는 것이죠. 물론 반대의 방법은 쉬운 방법이 아니라는 것이 함정이지만요.

외국에서는 발달장애인을 고용한 기업에서 환경을 발달장애인 특성에 알맞게 재구조화한 사례가 있습니다. 유럽의 Auticon이라는 기업은 청각 과민이나 빛 과민 등을 조정하는 작업 환경을 구축하고 자폐성장애인 노동자들이 효과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환경을 재구조화 했습니다.

일본에서는 이화학공업이라는 회사의 공장에서 생산품의 길이를 직접 재기 어려운 발달장애인 노동자들에게 생산품의 길이와 똑같은 길이의 막대를 제공하여 그것을 보면서 생산품 길이를 맞추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작업 도구를 재구조화한 방법인 것이죠.

즉, 발달장애인 노동자들에게 작업 환경이나 작업 도구를 알맞게 재구조화하는 방법은 업무 효율성을 올리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발달장애인을 고용한 직장에서 작업효율이 낮아진다면 원인 중 하나는 어찌 보면 발달장애인 노동자들에게 적합한 작업 환경이나 도구가 제공되지 않아 비효율성이 증가한 문제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사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에서도 이와 유사한 사업으로 장애특성에 알맞은 작업 도구나 환경을 재구조화할 수 있는 물품을 지원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진행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링키지랩 시절에는 일부 직원이 장애특성에 맞는 방석 하나까지 지원받은 사건도 있었거든요.

돌아와서, 제가 겪은 일을 이번 언급에서 대입해보면 제 방법은 제게 알맞은 작업 도구를 가져다가 쓰게 된 일로 작업 효율을 올린 사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제가 썼던 방법은 비장애인 직원들도 다들 하는 작업 도구 사용 방식이라 별반 새로울 것은 없었지만요.

그래도 발달장애인을 고용한 기업에서 발달장애인 노동자에게 알맞은 작업 도구나 환경을 제공하지 않았는지를 한번 생각해보셔야 할 듯해서 이야기를 해봤습니다. ‘명필은 붓을 가리지 않는다’는 말도 있다지만 그런 말은 업무의 ‘프로’들이나 가능한 것입니다.

발달장애인 노동자에게는 붓을 가리지 않는 것이 아닌 붓을 가리며 일해야 좋은 것입니다. 저도 비효율적인 키보드 하나 때문에 업무 효율이 대단히 좋지 않았던 것을 생각하면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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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계약 만료로 한국장애인개발원을 떠난 것은 시작일 뿐이었다. 그 이후 장지용 앞에 파란만장한 삶과 세상이 벌어졌다. 그 사이 대통령도 바뀔 정도였다. 직장 방랑은 기본이고, 업종마저 뛰어넘고, 그가 겪는 삶도 엄청나게 복잡하고 '파란만장'했다.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파란만장했던 삶을 살았던 장지용의 지금의 삶과 세상도 과연 파란만장할까? 영화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는 픽션이지만, 장지용의 삶은 논픽션 리얼 에피소드라는 것이 차이일 뿐! 이제 그 장지용 앞에 벌어진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읽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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