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기구와 운동화. ⓒ픽사베이

명절을 맞이해 고향집에 내려갔다. 1년에 4번 정도, 그러니까 3개월에 한 번씩은 집에 내려가는 편인데, 이렇게 가끔씩 가족을 만나면 몸의 변화를 비교적 쉽게 체감하게 되나보다. 항상 부모님을 오랜만에 대면하면 부모님은 내 얼굴을 살피고선 말씀하신다.

“아이고, 우리 딸 얼굴이 넓어졌네!”

얼굴만 넓어졌을까요, 아부지, 어무니. 뱃살도 늘고 몸도 무거워졌답니다. 처음 이런 말을 들었을 땐 ‘아, 내가 너무 식단 조절을 안 했나.’ 싶어서 서울에 돌아와선 자취하면서 평소 잘 안먹게 되는 과일이나 생선을 찾곤 했다. 그런데 4-5년째 이런 말을 듣고 있자니 짜증이 치솟았다. 아니, 내가 살을 찌우고 싶어서 찌우겠냐고!

오랜만에 살찐 나의 모습을 보신 부모님은 항상 옛날 얘길 꺼내신다. 그 이야기로 말할 것 같으면 거의 30년 전, 나의 뽀시래기 시절의 이야기로, 약한 몸에 잘 먹지도 않아 깡말랐을 적 얘기다.

골형성부전증이라는, 선천적으로 뼈가 약한 희귀 난치성 질병을 가지고 태어난 나. 부모님은 뼈도 약한 애가 잘 먹지도 않아서 매일매일 어떻게 하면 잘 먹일지 고민의 나날을 보내셨다고 한다. TV에서 아프리카 기아를 돕자는 모금 방송을 할 때면, 멀리 갈 것 없이 기아가 당장 우리집에 있는데 무슨 후원이냐며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그때의 나는 밥을 먹다가 한 숟가락 쯤 남으면, 너무 먹기 싫어지는 이상한 습관이 있었다. 엄마는 버려지는 밥이 아까워서 일부러 한 숟가락 쯤 덜어내고 주기도 했는데, 그러면 나는 또 똑같이 한 숟가락을 남겼고, 남길 것을 고려해 일부러 많이 주면 귀신같이 알고 더 준만큼 더 많이 남겼다고 했다.

그래서 아버지께선, 하루 세끼를 모두 남기지 않고 먹으면 5천원을 용돈으로 주겠다는 공약도 하셨는데, 당시 돈 개념이 전무했던 4-5살의 나에게 가당치도 않은 이야기였다. 받은 적이 딱 한 번인가 있었던 것 같은데 엄청 기뻐하며 주셨던 것 같다. 당시 5천원은 어린 아이에게 엄청 큰돈이었는데! 지금이라면 정말이지 매일 받을 자신이 있다.

어쨌든 이렇게까지 깡말라 한 숟가락이라도 먹이려 했던 시절이 있었는데, 초등학교 고학년 무렵, 이상하게 식욕이 급상승했다. 식욕이 돈다는 별별 보양식을 다 먹어서인지, 2차 성징이 오며 체질이 변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먹지 않던 아침밥을 먹기 시작했고 일주일에 한 번씩은 꼭 치킨을 시켜 먹었다. 갑자기 식사량이 늘었고 밥상에서 내가 먹는 걸 기쁜 표정으로 바라보던 부모님이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 후, 나는 정상 체중을 넘어 지금의 모습이 되었는데, 이 이야기를 거의 3~4개월에 한 번씩 다시 떠올리는 신세가 되었다. 부모님은 나의 살찐 모습을 안타까워하시지만, 사실 나는 살을 빼야 한다고 절실하게 느끼지 않는다. 방법도 잘 모르겠고 막연한 마음으로 다이어트를 시작할 의지도 별로 없다.

성인이 된 이후로 다이어트를 결심한 적이 딱 한 번 있었다. 당시 썸을 타던 이성이 있었고, 그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컸다. 하지만 대체 다이어트는 어떻게 하는 건지. 주변에 친구들을 보면 식사 대신 과일을 먹거나, 달리기나 줄넘기 같은 유산소 운동을 하던데.

그래서 처음엔 나도 저녁 대신 칼로리가 낮지만 포만감을 주는 식단으로 바꿔보기로 했다. 하지만 하루, 이틀이 지나며 몸이 약해지는 게 확 느껴졌다. 면역이 떨어지며 혓바늘과 구내염이 생기고 활력이 사라졌다. 그러다 보니 의욕도 사라지고 예민해지기 시작했다. 내 무기력함은 곧 얼굴에까지 드러나 썸타던 사람에게 ‘어디 아프냐’는 말까지 듣게 되었다.

이건 정답이 아니다. 식단 조절은 몸이 약한 내겐 위험한 일이었다. 안 그래도 평소에 보통 사람들에 비해 적게 먹는 편인데, 거기서 더 줄였으니 좋을 리가 없었다. 그래서 눈물을 머금고 다시 식단을 되돌렸다.

그렇다면 정답은 칼로리를 더 소모하는 것이다. 운동, 그래 운동을 하자! 그래서 직장 동료의 도움을 받아 운동을 하나 배웠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유산소가 아니라 근력운동이었다. 팔에 알통만 생겼다. 그리고 집에서 하기에 힘들었다. 도구도, 기구도 없는 상태에서 30분 이상 운동을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어느 날, 우연히 부모님의 저녁 운동에 산책 겸 따라가게 되었다. 집 근처에는 시에서 운영하는 큰 공설운동장이 있었는데, 마침 트랙을 새로 깔아 많은 시민들이 호기심에 나와 운동을 하던 차였다. 그중에는 우리 부모님도 계셨다. 부모님이 운동가고 나면 조용한 집이 적적할 것 같아 나도 수동휠체어를 타고 따라나선 것이었다.

처음엔 아버지가 내 휠체어를 밀며 적당한 속도로 걸었다. 그런데 왠지 내가 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바퀴를 몇 번 크게 휘저었다. 앗! 그런데 트랙 위에서 휠체어가 너무 부드럽게 잘 나갔다. 그래서 몇 번 더 휘저었더니 속도가 붙으며 스릴감이 생겼다. 하지만 운동을 전혀 하지 않은 저질체력의 나에겐 전체 트랙의 1/4도 힘든 거리였다. 하지만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속도감에 재미를 붙여서 매일 조금씩 거리를 늘려갔다.

매일 나가 반 바퀴, 한 바퀴, 두 바퀴, 세 바퀴, 마지막엔 다섯 바퀴까지 돌았다. 부모님도 나의 달리기를 즐겁게 보셨고, 나도 즐기고 있었다. 그리고 더군다나 살이 4~5킬로가 빠졌다! 얼굴도 눈에 띄게 갸름해졌고 뱃살도 티나게 쏙 들어갔다. 부모님도 나도 기뻐했다.

서울에 올라온 요즘, 그러니까 지금. 나에게 다이어트가 다시 절실해졌다. 썸을 타서는 아니고, 나이가 드니 체력이 약해지는 게 체감되어서다. 현실적으로 자취생은 건강한 식사를 하는 것이 힘들다. 좁은 집에서 생선을 굽는 건 생각조차 못하겠고, 과일이나 채소도 혼자서 많은 양을 사서 항상 썩혀버리기 십상이다. 그리고 운동 또한 도저히 방법을 모르겠다.

주변에 헬스장은 많은데 내가 가서 쓸 수 있는 기구는 없을 것 같고, 약한 내 몸을 알고 전문적으로 지도해줄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집 근처 운동장에 보호자 없이 운동을 하기도 막막하다. 그렇게 고민만 거듭하고 있다.

아니, 그런데 어쩌다가 나이 때문에 운동을 생각하는 지경에 다다른거지...? 내가, 나이가, 벌써.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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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혜 칼럼리스트
서울시립대학교 중앙도서관에서 사서로 일하고 있다. 문화 전반에 관심이 많아 월급의 대부분을 문화생활에 쏟고 있으며, 주말에 집에 있으면 몸이 쑤시는 몹쓸 병 때문에 어디론가 자꾸만 나들이를 떠나곤 한다.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모든 순간을 사랑한다. 칼럼 지면을 통해 여성, 청년, 장애인으로서 겪은 고유의 경험과 생각들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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