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고 민족 최대의 명절을 지내면서 우리는 다시 한 번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일반인들의 기대(?)와 달리 발달장애의 가족으로 사는 것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저 약간의 버라이어티가 가미된 하루하루가 별일 없이 지나간다. 여기에 측은지심, 동정심 등을 뺀 따뜻한 이웃의 시선이 더해진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오랜만에 아들이랑 단골 순대집에 갔었다. 우리 집 근처 버스정류장 앞이면서 시장입구 좁은 골목에 자리 잡은 우리 동네에서 꽤 인기 있는 할머니 순대가게.

가판을 둘러 유치원 나무의자들이 5,6개 놓여 있는데 앉아서 먹고 가는 사람들도 있고 싸가는 사람들도 있다. 포장해 가는 사람들도 작은 의자에 앉아 할머니가 먼저 내놓으시는 따끈한 순대를 몇 점 먹고 가는 것이 이 곳의 방식. 늘 손님이 끊이질 않는다.

아들이 학교에서 돌아올 때 버스에서 내려 체육센터로 가는 길목에 이 할머니의 순대가게가 있다. 할머니가 순대를 열심히 썰고 계시는데 아들이 역시나 먹고 싶어 해서 다른 사람들처럼 먼저 몇 점 먹으라고 했다.

신나게 먹던 아들이 할머니의 칼질을 바라보며 “칼, 위험해요”한다. “맞다, 칼 위험해요~ 맞다, 맞다.” 별 것도 아닌 말에 할머니의 리액션이 이보다 좋을 수 없다. 아들은 두 쪽을 더 먹더니 내장을 가리키며 “이거 먹을 거예요” 한다.

“ 그래, 그래, 알았다. 다~줄 거야”하면서 내게 덧붙이시는 말씀은 늘 순대를 먹더니 어느 날부터는 내장을 달라고도 한단다. WHAT !!! 그렇다면 여기서 혼자 자주 순대를 먹고 간다는 말씀? 어느 날은 순대를, 어느 날은 내장을 달래서 먹고 가고, 휴대폰하기 바빠 그냥 지나가기도 하고 ... 그런단다. 주5일을 그 앞을 지나가는데 그동안 민폐가 이만저만이 아니었겠다.

아마 시작은 한참 배고픈 하굣길에 순대에 눈독을 들이는 아들에게 할머니가 이리 와서 먹고 가라고 하셨을 것이다. 그것이 쌓여 자주 들른 모양이다. 앞으로도 그런 날이 많을 것 같아 만원을 내거 거스름을 받지 않고 일어섰다.

언젠가는 집에 들어가는데 아들이 먼저 뛰어가 엘리베이터에 타자 “어~이~안녕~”하며 매우 반갑게 인사를 건네다가 내가 뒤이어 타자 무안한 듯 목례를 하시던 아저씨.

밤에 아들이랑 외출하는데 아들이 먼저 뛰어가서 버스정류장 의자에 앉으니 길을 건너다 말고 돌아와 “늦었는데 집에 가야지. 왜 여기 있어? 얼른 가”하고 챙기다가 내가 다가가자 또한 무안한 듯 돌아서 가시던 아주머니.

아들은 내가 모르는 사이에 참 많은 사람들의 호의와 배려를 받으며 살고 있었다.

정말 고마운 분들이다. 당신들은 끝나지 않는 전쟁터에 위대한 지원군입니다. 당신들이 있기에 오늘도 발달장애인들의 진정한 사회통합을 꿈꾸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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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이 칼럼리스트
우리아이발달지원센터를 운영하며 장애인들의 교육과 사회적 융합에 힘쓰고 있다. 컬럼을 통해서는 발달장애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얻어내고자 발달장애 아들과 함께하는 소소한 일상들을 소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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