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아들의 얼굴에 전기면도기를 들이대며 “자, 이렇게 해봐~” 인중을 잔뜩 늘이고 입술을 씰룩거리며 시범을 보인다. 여자로 태어나서 평생 불필요했을 안면 스트레칭이다.

아들은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대한민국의 발달장애 청년이다. 처음에는 장애라는 사실을 부정했고 그다음에는 감기처럼 앓고 지나가면 나을 거라는 부질없는 희망도 가졌었다.

빛이 보이지 않던 기나긴 시간의 터널을 통과하여 아들의 장애를 오롯이 받아들이게 되면서 일반 사람들과는 많이 다른 특별한 일상을 누리게 되었다.

이제는 이렇게 소소하지만 특별한 나와 아들의 일상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공개할 만큼의 용기도 생겼다.

발달장애아와 함께 산다는 건 1년 365일 휴일 없이 24시간 대기를 타야하는 거대한 수레바퀴 아래에 존재하는 일이다.

그래서 아들이 학교에 가 있는 시간의 꿀 같은 휴식의 시간이다.

조지 클루니의 커피광고를 아시는가?

화면 가득 미소와 함께 향긋한 커피 향 날리며 “뭘 더 바라지?(What else?)”라고 묻는 조지 클루니의 눈웃음은 휴식 중 무방비상태인 엄마를 무장해제 시켜버리기에 충분하다.

세계에서 가장 섹시한 남자로 해마다 자리매김하는 남자의 황홀한 턱선, 환갑이 다된 중년의 남자의 여유로움까지 모든 게 완벽한 듯 보였던 이 남자에게서 어느 날 나는 보고야 말았다.

커피 크림처럼 녹아들 듯 부드러운 눈웃음 아래로 빼곡한 저 수염 자국을.

‘윽! 저 수염은 어떻게 깎아주어야 하는 거지? 내 아들이 조지 클루니가 아니어서 정말 다행이구나~’

이제 갱년기라는 진흙탕에 한 발을 담그고 서 있는 엄마의 낭만마저도 서글픈 일상의 에피소드로 만들어버리는 아들의 능력(?)도 엄마에겐 마냥 사랑스런 것을 어찌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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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이 칼럼리스트
우리아이발달지원센터를 운영하며 장애인들의 교육과 사회적 융합에 힘쓰고 있다. 컬럼을 통해서는 발달장애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얻어내고자 발달장애 아들과 함께하는 소소한 일상들을 소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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