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의욕을 묻는다? 사실 비장애인에게 물어보면 의아할지도 모르는 질문이다. 그런데 발달장애인에게는 이것이 어찌 보면 중요한 문제이기도 하다.

필자가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이하 고용공단)에서 담당자들과 협의를 하면서 들은 이야기로는 발달장애인의 대다수는 고용공단 상담 의뢰를 자발적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손 따라 온 경우가 상당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오늘의 핵심적인 사실이다.

외부인이 발달장애 당사자들에게서 가장 의심스러워하는 것이 노동을 할 수 있을지의 의욕이 있는 문제인 것이다. 그런데 이 질문의 답은 50% 대 50%, 즉 동전을 던져 한쪽 면이 나올 확률과 비슷한 상황인 것이다. 그 답은 오직 당사자만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발달장애인의 노동을 의미 없게 만들고 있다. 부모들이 가장 걱정하는 사실은 최근 발견되고 있는 극단적인 노동 착취 문제 등을 문제 삼아 발달장애인의 노동을 봉쇄하려는 시도가 있는데,

이러한 극단적인 노동 착취 문제는 당사자의 의욕의 영향이라기보다는 강제노동의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노동 의욕에 대한 것은 당사자가 자신의 의지로 구직하여 노동하려는 의욕을 가진 상태에서의 이야기일 뿐이니 오해는 없기를 바란다.

발달장애인의 부모들이 해야 할 일 중 하나는 성인이거나 성인이 될 당사자 자녀들에게 노동할 의욕을 북돋아 주는 것이다. 성인의 의무는 노동이며, 노동을 통해 자신의 삶을 일궈나가는 것이 가장 올바른 길임을 강조하게 하는 것이다.

단지 돈을 번다는 의미가 아닌, 돈은 부수적이고 회사와 사회에 기여한다는 것을 더 강조해서 말하면 더 좋다. 요즘도 기업에서는 단지 “돈 벌고 싶어서 회사에 지원했다”라고 말하면 취업에서는 오히려 마이너스가 된다.

실제로 일부 기업에서 “돈 벌려고 지원했다”고 쓴 입사 지원서를 반려하는 경우가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단지 월급만 받아가고 회사 일에는 집중하지 않으려는 모습으로 비춰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러한 특성의 직원은 해고 1순위의 직원이기도 하다.

학교 교육에서도 노동에 대한 의욕을 가지게끔 하는 교육이 필요하다. 대학으로 진학하는 극소수의 발달장애인들조차 장기적으로는 취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노동 의욕을 가지게끔 하는 것은 학교 교육에서도 필요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학교 교육은 제도적인 교육인 만큼, 노동자로서의 권리에 대해서도 함께 알려줄 필요가 있으며 특히 근로계약서의 존재 사실과, 최저임금제도, 연월차등에 대한 개념 정도는 교육이 필요하다.

한편으로는 정부와 사회의 역할이 중요하고, 이 역할에 있어서는 고용공단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정부와 사회도 노동 의지를 북돋아주는 정책과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하며,

특히 고용공단은 장애학생에 대한 노동 관련 지원 사업과 함께 노동의욕을 북돋아주는 교육을 준비해야하며, 그에 대한 프로그램도 적극 개발해야한다고 할 수 있다.

당사자의 관점에서도 노동 의욕을 가지고 구직활동에 나서는 것은 인권의 관점에서도 올바른 것이다. 당사자의 권리 옹호라는 관점에서 봤을 때, 당사자는 노동 의욕을 가지고 구직활동을 하는 것은 노동할 권리의 자기 옹호가 되기 때문이다.

물론 이른바 ‘노예 노동’은 관련이 없다. 발달장애인 당사자가 노동을 하더라도 자신의 의지에 따라서, 자발적으로, 타인의 영향이 없이 노동하는 것은 올바른 노동 의욕이지만 강압적이고, 타율적이고, 부모를 포함한 타인에 의한 비자발적인 노동 문제는 당연히 인권 탄압이고 일종의 인신매매 행위나 다름없다.

노동 의욕을 가지는 것과 그 생성된 노동 의욕을 가지고 일하는 것은 그들 자신의 권리이고 책임이다.

그렇지만 노동 의욕을 가지지 않고 강압적으로 시켜서 노동하는 행위는 불법하며 부당한 노동행위라고 할 수 있으며, 대다수는 적절한 임금을 지불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노동력 착취 및 최저임금법과 근로기준법 위반 행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당사자가 노동하는 의지를 가지고 일하는 것은 긍정적이고 고무적인 일이다. 당사자가 단지 돈을 벌고 싶어서라는 의지를 넘어서 세상을 향한 전진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발달장애인들이 저평가되는 이유는 바로 노동하는 의욕이 없어 보이거나, 아니면 그것을 ‘거세’당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발달장애인 당사자의 의욕을 존중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발달장애인도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 이제야 점점 드러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제 남은 것은 경제적인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생산성을 매우 중시하는 사회가 되었고, 그 와중에 장애인은 희생된 것이다.

이제 세상은 달라졌다. 발달장애인도 노동할 의욕이 없을 것이라는 것은 헛된 생각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아직 이것을 깨우치게 하는 것은 어렵다. 가정-학교-국가와 사회 3주체가 발달장애인의 노동 의욕을 북돋아 주는 것이 필요하다.

발달장애인의 성공적인 직업 생활 정착에서, 의지가 없다는 것은 크나큰 지장이다. 2010년대를 넘어 2020년대에는 ‘세금 내는 발달장애인’의 시대여야 한다. 그래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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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계약 만료로 한국장애인개발원을 떠난 것은 시작일 뿐이었다. 그 이후 장지용 앞에 파란만장한 삶과 세상이 벌어졌다. 그 사이 대통령도 바뀔 정도였다. 직장 방랑은 기본이고, 업종마저 뛰어넘고, 그가 겪는 삶도 엄청나게 복잡하고 '파란만장'했다.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파란만장했던 삶을 살았던 장지용의 지금의 삶과 세상도 과연 파란만장할까? 영화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는 픽션이지만, 장지용의 삶은 논픽션 리얼 에피소드라는 것이 차이일 뿐! 이제 그 장지용 앞에 벌어진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읽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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