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재의 초등 2학년 때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아마 9살이었을 그즈음부터 이상한 버릇이 시작되었습니다.

대형 마트나 사람이 많은 곳에 가면 두 손은 동그랗게 말아 마치 망원경을 보듯 자신의 눈에 대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중얼중얼 혼자말을 하기도 하고, 자기몰입에 빠져 상동 행동으로 이어졌습니다. 난 그냥 어디서 본 듯한 망원경 흉내를 내는 것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습니다.

물고기를 유난히 좋아하는 규재랑 아쿠아리움에 자주 갔는데, 큰 수족관 앞에서 늘 ‘손망원경 놀이’에 심취한 규재를 보며 ‘실물 망원경을 사 주면 저 요상한 손망원경을 안할까...’ 기대를 하고 열심히 인터넷을 뒤져서 작고 쓸 만한 망원경을 주문해서 규재 목에 척!!! 걸어주고 의기양양 다시 아쿠아리움으로 갔습니다.

드디어 해저터널에서 규재가 망원경을 눈에 대는 순간, 이 엄마는 기대만발이었습니다. 규재가 실물 망원경으로 그 좋아하는 물고기를 보면 얼마나 만족스러워할까.. 규재의 화알짝! 함박웃음을 기대하며 이제나, 저제나 언제 그 표정을 보여줄까? 규재 얼굴만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어때? 이 엄마가 최고지? 으쓱 으쓱...’

그! 런 ! 데!!! 그 순간 규재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망원경! 오답입니다아~~ 이거슨 아닙니다아~~ 땡!! 틀렸습니다아~~~”

패턴이 무너졌을 때 보이는 흥분 상태가 되어 “아닙니다아~~~”를 연발하며 그 특유의 상동행동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함박웃음을 보는 건 고사하고, 흥분 상태의 규재를 달래느라 너덜너덜 탈진 상태로 집으로 와야 했습니다.

그 후로 규잰 다시 ‘손망원경 놀이’를 시작했습니다.

나는 그런 규재 행동이 너무 궁금했습니다.

‘규재식으로 생각해 보자.... 규재처럼 바라보자...’ 틈틈이 집에서 생각날 때마다 규재처럼 손을 말아 눈에 대어 보았지만...... ‘머... 별반 다르지 않은데... 왜? 이러고 보는 거지?’ 몇 번을 흉내 내 봐도 뾰족하게 떠오르는게 없었습니다.

그렇게 아들의 손망원경 놀이의 궁금증이 1년이 지나 2년째가 되어 가도 난 딱히 해결책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햇볕 좋은 어느 봄날, 동물원으로 나들이를 갔습니다.

역시나 규재는 손망원경 놀이에 한참이었고, 신이 났는지 중얼거림이 큰 고함이 되어 쩌렁쩌렁 울렸습니다.

“코끼리야아~~~ 이리와아~~~~, 나무는 오지마아~~~~, 풀은 움직이지마아~~~, 코끼리야아 보고 싶어어~~, 코끼리야아 이리와아~~~ 코끼리야아~~~~~ 코끼리야아~~~”

주변 시선이 쫙! 우리 가족 쪽으로 모아지고 있었습니다. 11살 덩치에 안 어울리는 어설픈 발음과 이상한 억양, 앞뒤도 안 맞는 이야기......

주변 사람들의 힐끔거림과 딱하다는 듯한 시선, 자기 애들을 슬쩍 옆으로 피신? 시키듯 빼돌리는 엄마들.....

규재의 ‘코끼리 타령’은 계속 되고.....소리는 점점 커지고......

솔직히 내 아들 아닌 척하고 싶었습니다. 규재 손을 잡고 그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머....나에겐 일상적인 규재식 표현이니 암치도 않아... 사람들이 저렇게 우리 가족을 코끼리보다 더 신기하게 구경해도 암치도 않.........아.........’

스스로에게 침착하라고 새기면서....

규재의 관심을 돌릴만한, 괴성을 잠재울만한, 나무랑 풀은 오지 말라는, 코끼리만 보고 싶다는 표현에 대답해 줄 만한 도구가 없을까? 주머니를 뒤지는데......

마침 가지고 간 디지털 카메라가 손에 닿았습니다.

급한대로 규재 손에 쥐어주며 ‘규재야, 여기 네모 렌즈가 있지? 여기로 들여다보면 코끼리만 볼 수 있어... 이렇게....나무랑 풀은 안보이게 되니까.... 코끼리만 볼 수 있지? 봐봐...’

기대치 않았던 반응이 왔습니다. 카메라의 네모 렌즈창을 아주 유심히 쳐다보던 규재는 손망원경은 풀고 카메라의 렌즈를 눈에 대고 그 코끼리만 오라는 ‘타령’을 딱! 멈춘 것입니다.

원하는 사진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규재 모습. ⓒ김은정

유난히 디지털에 관심이 많았던 규재는 곧 카메라의 사용법을 터득하고 동물들의 사진을 찍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외출 때마다 디지털카메라는 규재의 애착 물건이 되어 규재의 목에 매달리게 되었고 , 그 손망원경 놀이는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2년이 넘게 엄마의 궁금증이었던 ‘손망원경 놀이’는 싱겁게 코끼리 타령을 계기로 해결되었습니다.

카메라의 네모 렌즈창, 네모 프레임, 프레임!

2년이 지난 그 순간 뭔가 잡히는 듯했습니다. 규재는 그동안 한꺼번에 눈으로 꽂이는 모든 사물이 힘들었던 것입니다. 자기가 집중하고 싶은 사물만 보고 싶은데, 자폐성장애 특성상 바깥세상의 모든 사물이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오는 그 감각의 교란, 혼란이 힘들었던 것입니다.

인간의 시지각은 눈이 받아들인 정보로 뇌가 종합합니다.

그런데 눈을 통해 들어온 정보가 왜곡되어 있다면 정보를 인식하지 못하거나 잘못된 정보를 바탕으로 잘못된 행동을 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더욱이 시각적 이미지로 세상을 이해하고 적응하는 자폐성장애인들에겐 시끄러운 공간, 군중은 너무나 벅찬 존재입니다.

규재의 ‘손망원경 놀이’는 세상 밖으로의 두려움을 막을 수 있는 나름 궁여지책이었나 봅니다.

밀려 들어오는 막무가내 사물들을 손이 가려주고 앞만 볼 수 있게 시야를 편안하게 터주었던 손망원경은 이제 디지털카메라의 렌즈프레임으로 대체되었습니다.

혹시 시각적 감각이 극도로 예민해서 규재처럼 넓은 장소에서 과한 반응을 하는 우리 아이들이 있다면 그 아이에게 쉽게 적응될 수 있는, 시각 자극을 줄일 수 있는 ‘도구’를 찾아 주는 방법도 좋을 듯합니다.

옆 눈으로 보는 우리 아이들에겐 알 없는 굵은 테의 안경을 쓰게 해 본다던지, 처음 가 본 낯선 장소에선 안대 놀이로 일단 예민한 시각을 달래준다던지...

우리가 행동이나 반응으로만 우리 아이들의 고유한 특성을 못하게 제지할 것이 아니라, 대체 보완의 방법으로 ‘도구’를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요?

아!! 그 후로 ‘규재와 카메라’는 어찌 됐냐구요?^^

11살쯤 친구가 된 디지털 카메라와 규재는 20살이 된 지금까지 망가뜨리고 새로 사고..를 8개째 반복하면서, 동물원이나 수족관 앞에서 원하는 사진이 나올 때까지 40분 이상을 남사스러운 자세로, 주변 사람들이 웃던 말던 자신을 즐길 줄 아는 자폐 청년이 되었습니다.

여전히 남의 시선보다 본인 위주의 관심으로 좌충우돌 세상살이 중이지만, 외출이 무섭지 않은 당당한 이 사회의 일원이 되어가는 규재와 우리 사회 속에서 함께 부대끼며 열심히 적응하는 우리 모든 자폐성장애인들에게 힘찬 박수 보냅니다.

카메라 렌즈에 담아 온 물고기들을 규재식으로 그린 막그림 ‘’행복한 바닷물고기‘. ⓒ김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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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정 칼럼니스트 발달장애화가 이규재의 어머니이고, 교육학자로 국제교육학회에서 활동 중이다. 본능적인 감각의 자유로움으로부터 표현되는 발달장애예술인의 미술이나 음악이 우리 모두를 위한 사회적 가치로 빛나고 있음을 여러 매체에 글로 소개하여, 많은 사람들과 공감하며 장애인의 예술세계를 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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