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택시를 자주 이용한다. 전맹인데다 지하철역과 버스 정류장까지의 거리가 있는 편이라서 택시는 내가 이용할 수 있는 유일한 교통수단이다. 즉, 다시 말해 나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이 글을 읽는 비장애인들 중에는 '편하게 택시타고 다니니까 우리보다 낫네.'하며 생각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글쎄, 그들이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다양한 선택지가 있기 때문은 아닐까?

시간이 촉박한 날에는 부리나케 뛰어나가 택시를 타고 시간이 여유로울 때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주머니 사정이 팍팍하다면 한 푼이라도 아끼는 마음으로 도보를 하거나 미친 듯이 환승하기 위해 기를 쓸 것이다.

그러나 필자에게는 내 상황이나 형편과는 관계없이 무조건 꼭 택시를 타야한다. 시간이 남아돌아도, 도보하기 딱 좋은 날에도, 거리가 너무 멀어 교통비가 부담스러워도 무조건 택시를 타야 한다. 뭐, 내 상황이 이러니 그래도 큰 도움 없이 자력으로 이동할 수 있음에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시각장애인으로 6년 동안 택시를 이용하며 정말 다양한 부류의 기사님들을 만났고 개중에는 자주 인연이 닿아 서로 안부 묻고 인사하는 기사님도 있다. 또 어떤 기사님은 감동의 쓰나미를 안겨주신 분도 계셨다.

그러나 이런 분들은 정말 다섯 손가락에 꼽을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굳이 기사님의 서비스를 평가한다면 글쎄 10점 만점에 4점정도. 대다수의 기사님들의 서비스는 보통 수준이지만 앞서 얘기한 친절한 기사님들보다 불친절하고 인격적으로 무시하는 기사님들의 수가 몇 갑절 더 많기 때문에 내 평가점수는 잘 쳐줘도 4점이다. 기사님들에 관한 에피소드만 엮어도 한 권의 책은 될 듯싶다.

실명 후 택시를 타고 다니며 나는 기사님들과 일부러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이곳저곳을 다니며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하루 종일 라디오와 소통하는 기사님을 통해 간접적으로라도 세상 변화에 따라가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도착지 외에는 입을 닫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편하게 주고받는 말끝에 불쑥불쑥 나오는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무시에 당황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장애인 콜택시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장애인 복지카드를 제시해야 한다. 번거롭기도 하고 귀찮아서 내 쪽에서 먼저 제시한 경우는 거의 없지만 그래도 기사님이 요구할 경우에는 군소리 없이 보여 드리는 편이다.

어느 날이었다. 택시를 탔는데 기사님이 복지카드를 보여 달래기에 보여드렸더니 기사님이 대뜸 "아이고, 보여 달라고 하면 이렇게 그냥 보여주면 될 것을 어떤 분들은 보여 달란다고 화를 낸다니까요." 그래서 솔직한 내 생각을 말했다.

"기사님들마다 어떤 분들은 보여 달라고 하고 어떤 분들은 아무 말 없으시니까 뭐, 굳이 안봐도 될 것을 귀찮게 한다고 생각하시고 그러시는 거겠죠." 그랬더니 기사님이 말한다. "아이고, 우리도 이거 확인하는 거 귀찮아요. 장애인들은 복지카드를 목에 걸고 다녀야해요." 하신다.

헐! 깜짝 놀랐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지 그것도 장애인을 앞에 두고 그런 말씀을 하시는걸 보면 그것이 대단히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하는 듯 했다. 완전히 장애인의 인격과 존엄은 무시하는 발상 그리고 그 사고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기사님의 태도에 차를 세우고 내리고 싶을 정도였다.

또 언젠가는 이런 일도 있었다. 친정 동생집에서 놀다가 집에 돌아가기 위해 바우처 콜택시를 불렀다. 친정 동생의 도움을 받아 차에 탔는데 한참이 지나도 기사님이 출발하지 않는다.

그래서 "기사님, 출발 안하세요?" 했더니 기사님이 말한다. "아까 그분은 안타시나요?" "네, 저 혼자 가는데요." 그랬더니 그분 말씀 "어, 장애인은 혼자 다니면 안되는데...."

이 무슨 얼토당토 안되는 말인가!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장애인이기 때문에 혼자 다니면 안된다는 사고가 어찌 나올까 ? 아마 그분은 장애인은 타인의 도움 없이는 살수 없는 존재라는 인식이 뼛속까지 박혀 있는 듯 했다.

그래서 내가 말했다. "우리나라 어느 법에 그런 조항이 있나요?" 그제야 기사님은 아무 말 없이 차를 출발시켰다.

정말 기사님들의 어처구니없는 장애관과 선입견은 가히 상상을 불허한다. 나는 가끔 이런 장애관을 가지신 분들이 장애인 콜을 받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먹고 살려고 싫지만 어쩔 수 없이 장애인을 태웠다면 적어도 직업의식을 갖고 섣부르게 말하고 행동하는 것은 삼가야 하지 않을까?

실제 어떤 기사님들은 장애가 있는 우리를 위해 대단히 희생하며 태워준다는 식의 말을 하시는 분도 있다. 정말 마음 같아서는 '아, 그럼 다른 분 태우세요. 전 괜찮아요.'하고 싶지만 사실 괜찮지 않기 때문에 입 꾹 다물고 얼른 도착지에 당도하기만 바랄 뿐이다.

이런 일들을 경험하다 보니 어느 순간 나는 기사님과 소통하며 세상을 엿보고 싶다는 욕구보다 상처에 대한 두려움으로 더 이상 기사님들과의 대화는 자제하게 되었다.

그런데 며칠 전 황당을 넘어 울분을 금치 못하는 경험을 했다.

토요일 저녁 귀가하기 위해 콜택시를 불렀는데 인근에 빈 택시가 없는지 수차례 요청하여도 배차가 되지 않았고 거의 30분 만에 '7분 뒤에 도착합니다.'라는 메시지를 받았다. 거의 도착할 쯤이 되었다고 생각할 무렵 기사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대뜸 "거기가 어디오?" 하신다.(1차 황당)

나 역시 초행길이라 근처에 뭐가 있는지 알 수 없어서 주소를 불러드렸는데 그래도 물으시니 동행한 비장애인에게 설명을 부탁했다. 기사님 말씀이 생각보다 먼 위치인데다 주말이다 보니 차가 밀린다며 도착쯤에 전화를 주시겠단다.

그렇게 15분쯤이 지나서 기사님으로부터 전화를 받고 비장애인의 도움을 받아 택시를 탔는데 알고 보니 엉뚱한 택시를 탄 것이다.(2차 황당)

상황은 이랬다. 마침 바우처 콜택시가 정차해 있는 것을 보고 도와주시는 비장애인은 당연스레 차에 태운 것이다.

내가 본래 콜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기사님은 빨리 내리라고 하고 도와줄 사람도 없는 상황에서 여기가 어디인지 알지도 못하는데 내가 타고 가기로 되어 있던 택시가 어디에 있는 것인지 완전 난감한 상황이었다. 그때 나를 태우기로 한 기사님으로부터 다시 전화가 왔고 두 분의 기사님이 통화하여 바통 터치 하듯 그렇게 차를 옮겨 탈 수 있었다.

세상에 맙소사! 집에 돌아가기 위해 차를 타는 데만 1시간이 걸렸고 게다가 30여 분이나 추위에 떨며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꾸 엇갈려 돌아가는 상황에 나 역시 슬슬 짜증이 나고 있었다. 그러나 기사님도 나를 도와주신 분도 고의로 그런 게 아니고 어쩌다 상황이 이렇게 된 것이라 여기며 숨 크게 들이쉬고 진정 버전으로 도입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짜증 섞인 기사님의 말.

"아이고, 이렇게 바쁜 날에 왜 자꾸 콜을 해요?"(3차 황당)

뭔 소리지? 물론 차가 없어서 여러 번 반복해서 콜 센터에 차량을 부탁했으니 인근 택시 기사님들한테는 계속 콜 멘트가 떴을 것이다. 그러나 말거나 선택과 결정은 본인이 하지 않았는가? 무슨 의중으로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서 기사님께 다시 물었다.

"뭐라고 하셨어요?"

"아니, 이렇게 바쁘고 길도 막히는데 위치도 잘못 가르쳐주고 사람은 엉뚱한 차에 타고 있으니 이래저래 그렇잖아요."

가라앉으려던 짜증이 융합반응을 일으키기 시작했고 가만히 들어주기에는 너무 억울해 한마디 했다.

"기사님, 어쨌든 콜을 받으신 건 기사님이시고 주소도 불러 드렸고 엉뚱한 택시에 타게 된 것도 제가 고의로 그런 게 아니라 도와주신 분이 실수로 그러신 건데 저에게 짜증내며 그런 말 하시면 안되죠. 제가 직접 이런 상황을 만든 것도 아니고 오히려 기사님과 도와주신 분 사이에서 아무 이유 없이 피해본 사람은 오히려 저인 것 같은데요."

그랬더니 기사님 말씀이 "아, 그러니까 이렇게 바쁜 주말에 나오니까 그렇지요."

순간 내 인내심에 한계가 왔음을 느꼈다. 결론은 혼자 택시를 타지도 못하는 장애인이 주말에 시내를 다니면 안 된다는 것이다. 목소리와 손발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억울하고 분해서 금방이라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부들부들 떨리는 목소리로 기사님께 말했다.

"장애인은 사람 많고 번잡한 날에는 밖에 나오면 안 된다는 말이세요?"

"아니, 왜 그래요? 장애인 입장에서 힘드니까 해준 말인데."

헐!!! 장애인을 위해서라니....

무엇이 우리를 위한다는 말인가? 우리 신체의 불편함은 우리의 몫이다. 아무리 도와주고 배려하고 공감한다 하여도 결국 불편함을 느끼며 살아가야 하는 당사자는 바로 우리들이다. 우리의 신체적 불편함을 위한다면서 그들은 우리에게도 인간적 가치가 있고 그 만큼 존중 받고 누릴 권리가 있음을 망각하는 듯하다.

신체적 불편함은 일상에서 여러 번 느끼지만 그 순간의 불편함을 넘기고 나면 그걸로 끝이다. 그러나 장애인에 대한 비장애인의 무시와 차별, 억압은 씻을 수 없는 그리고 가슴을 후벼파는 듯한 상처를 준다.

우리 장애인의 삶이 그들의 삶에 대체 어떤 악영향을 주었는가? 그들은 우리로 인해 어떤 피해를 입었는가? 비장애인이 주류인 사회에서 장애인은 아무 이유 없이 존재만으로 거추장스럽고 불편한 존재일수 밖에 없는 것일까?

우리와 그들은 단지 신체적으로만 다를 뿐인데 어째서 우리는 그들과 동등한 가치로 인정받고 존중 받지 못할까?

우리의 삶이 왜 그들보다 더 가치 없고 무의미하다고 생각할까? 그들의 단 한 시간의 노력에 우리는 그 몇 갑절의 노력을 쏟으며 살아간다. 그런 우리들에게 그들이 무슨 권리로 우리를 평가하고 판단하는가?

억울하고 분했다. 그리고 나는 결국 집에 돌아와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우리를 바라보는 세상이 이게 전부는 아니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면서도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한번 결심했다. 나의 존엄과 가치는 내가 지키겠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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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미 칼럼니스트 9년 전 첫아이가 3개월이 되었을 무렵 질병으로 하루아침에 빛도 느끼지 못하는 시각장애인이 되었다. 상자 속에 갇힌 듯한 공포와 두려움 속에서 나를 바라볼 딸아이의 모습을 떠올리며 삐에로 엄마가 되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삐에로 엄마로 살 수는 없었다. 그것이 지워지는 가짜라는 걸 딸아이가 알게 될테니 말이다. 더디고 힘들었지만 삐에로 분장을 지우고 밝고 당당한 엄마로 아이와 함께 세상 밖으로 나왔다. 다시 대학에 들어가 공부를 하고 초중고교의 장애공감교육 강사로 활동하기 시작했고 2019년 직장내장애인식개선 강사로 공공 및 민간 기업의 의뢰를 받아 교육강사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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