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예산 법정처리시한(12월 2일)이 다가오고 있다. 장애계는 장애인의 생존권을 위한 예산 증대를 요구하고 있지만 상황은 그래 쉽지 않다.

건강보험 비급여의 급여화가 핵심인 문재인 케어 예산 지원정도를 가지고 여야가 의견 차를 좁히지 못했다. 이 때문에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파행을 겪었고, 장애인 생존권 예산은 논의조차 못한 채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이하 예결특위)로 올라왔다.

예결특위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예산 논의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이번 주에 진행하고 있는 예결특위 예산안조정소위원회에서도 장애인 생존권 예산 증액 관련 논의가 지지부진하다. 이대로 가다간 장애인 생존권 예산은 표류할 가능성이 높다고 장애계는 성토한다.

이에 필자는 페이스북을 통해 2018년 장애인 생존권과 관련한 복지부 예산안 중 일부를 봤다. 그런데 발달장애인과 관련해서 발달장애인 가족지원 및 자조단체 지원에 관한 예산이 한 푼도 없고 장애인권익옹호 예산은 상당히 부족함을 알게 되었다.

우선 발달장애인 자조단체 지원에 관해 발달장애인법 제11조에선 발달장애인의 권익보호 및 사회참여를 위해 지원하며, 예산범위 내에서 자조단체의 활동경비를 지원할 수 있다고 나와 있다.

그런데 자조단체 지원예산이 한 푼도 없으니 발달장애인 당사자들이 자신의 권익보호 및 사회참여를 위해 활동하는 경비를 지원하는 것이 없는 거다. 자조단체 예산이 열악한 상황에서 단체운영은 어려워지고 단체 활동은 위축된다. 이러면 발달장애인 당사자들은 집에 있거나 시설에서 인권침해를 겪는 예전 상황을 벗어나지 못할 가능성은 농후하다.

11월 28일 국회를 규탄하고 장애인 생존권 예산을 증액하기 위해 장애계 단체들이 국회 앞에 모여 기자회견 하는 모습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발달장애인 가족지원 예산이 한 푼도 배정되지 않은 것도 걱정된다. 왜냐면 발달장애인을 자녀로 둔 부모들의 양육부담은 상당해 개인활동 영위도 쉽지 않은 게 우리나라 현실이다. 하지만 휴식지원, 부모상담 등의 지원을 하는 장애인가족지원센터에 예산을 충분히 지원하면 부모들은 자신을 돌아보고 가정을 꾸리며 개인생활을 영위하는 자양분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지원예산이 없다면 어떨까? 부모들은 더욱 지칠 수밖에 없고 65세 이하의 부모에게 부양의무자 기준을 그대로 적용하고 장애인 개인 소득이 대개 부족하거나 아예 없는 현실이라면 국가는 장애인 생계를 부모에게 오롯이 떠넘기는 것이다.

게다가 장애아동 입양으로 인한 지원은 원 가정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니 발달장애인 가족의 해체를 부추기게 된다. 아니면 발달장애인을 시설에 갖다버리든지, 발달장애인과 부모가 같이 자살하는 등의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부모와 발달장애인이 더 많이 죽고 나서야 발달장애인 가족예산을 배정할 것인가?

발달장애인을 자녀로 둔 부모를 몹쓸 사람으로 만들고, 발달장애인 당사자가 인간대접을 받지 못하는 세상이 계속됨은 물론 발달장애인법을 껍데기로 만들어버리는 행위를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와 기획재정부(이하 기재부)가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니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예산심의를 파행에 이끌게 만든 장본인들에게도 화가 치밀어 오른다.

예산심의를 파행으로 이끈 장본인들과 복지부, 기재부를 생각하면 속으로는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을 아직도 인간 이하로 취급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좋지 않은 의심이 들고 편견이 자꾸 생긴다. 정말 거짓말이었으면 좋겠지만 요즘 하는 행동들을 보면 이런 의심과 편견들이 계속 생기게 된다.

올해 2월 27일 개관한 중앙장애인권익옹호기관 간판 ⓒ이원무

또한 장애인권익옹호와 관련한 예산의 경우 현재 중앙장애인권익옹호기관은 기관장 1명, 직원 4명 등 연간 3억 원의 예산으로 운영된다. 지역장애인권익옹호기관의 경우에는 한 개 지역 당 5개월 기준으로 지원예산이 9500만원이다. 내년 복지부 예산안을 보면 중앙은 3억 원으로 올해와 동일하며 지역은 1개 소당 지원 금액이 연간 1억 9천만 원이다.

장애인권익옹호기관은 신고접수를 상시 담당하는 직원과 회계 직원 등 인력을 충분하게 보유해야 한다. 피해 장애인에 대한 정보관리 및 통계·생성제공 등을 위한 전산시스템이 필요함은 물론 장애인학대 관련 교육과 홍보 관련 예산도 충분해야 한다. 복지부의 권익옹호기관 설치 지침에서도 장애인에게 대중교통 접근성이 좋고 주차장이 잘 되어 있어야 한다.

하지만 내년 복지부 예산으로는 사무실, 상담실, 교육실 등 법에 규정된 설치기준 충족이 어렵다. 한 지자체 권익옹호기관의 경우 복지부의 권익옹호기관 설치지침대로 했을 때 부수적 운영비를 빼도 관리비와 임대료만 1년 치로 계산하면 연간 5000억 정도 나온다고 하니 비용이 어마어마하다. 다른 지역의 권익옹호기관도 이런 상황과 비슷하거나 돈이 더 들 거라는 예상을 하게 되니 암울하다.

이런 상황에서는 인건비 관련 예산이 충분치 못하게 되니 적정인력 확보가 어렵다. 인력이 적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적은 인력을 가지고 행정일, 교육일, 회계일, 사건해결까지 다 해야 하니 권익옹호 인력의 전문성을 기대하기란 어렵다.

또한 피해 장애인과 장애인학대 관련 통계예산도 충분치 못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우리나라 장애인학대 현실을 구체적·전반적으로 알기 어렵게 된다.

특히 발달장애인 권익옹호를 위해서 상당한 전문성이 요구됨을 감안한다면 권익옹호인력의 전문성 제고가 어려운 구조 속에서 장애인권익옹호기관은 말뿐인 권익옹호기관으로 전락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권익옹호가 제대로 되겠는가?

올해 3월 6일 종로구 주한 교황청 대사관 직원이 대구시립희망원 인권유린 및 비리척결 대책위원회 박명애 공동대표로부터 서한을 전달받는 모습 ⓒ에이블뉴스 DB

이외에도 대구시설희망원 범죄시설 폐지 및 탈시설 시범사업에 들어가는 2018년 복지부 예산안은 한 푼도 없다. 발달장애인의 자기결정권과 선택권을 앗아가는 구조인 시설 폐쇄에 0원이라는 것이 어이가 없을 지경이다.

원래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예산소위에서 장애계가 14억 5천만 원 증액을 요구했고 복지부에서 수용의견을 냈다 한다. 그런데 보건복지위원회 파행으로 인해 복지부 안인 0원이 예결특위로 그대로 올라왔다.

대구 탈시설 예산안이 미지수라 이에 희망원 거주자들이 탈시설하기 위한 예산을 충분히 마련하라고 장애계는 국회와 복지부 등에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고 필자도 이를 응원하는 바이다.

장애계에서 이렇게 국회와 정부를 향해 장애인 생존권 예산을 증액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다름 아닌 장애인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복지부와 기재부, 국회는 장애인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해달라고 하는 외침을 매번 무시해왔다.

장애인의 인간다운 삶 보장을 무시하는 국가는 더 이상 장애인에게는 집이 아니다. 국가의 존재이유마저 묻게 만든다. 장애인들은 이런 국가를 더 이상 신뢰하지 않고 냉대할 것이다.

지금은 장애인이 비례대표에 뽑히지 못하는 등 국회에서의 장애인 세력은 전보다 많이 약화된 상태이다. 더군다나 장애인들은 촛불로 탄생한 정부의 장애인 예산의 증액이 충분할 정도로 많기를 바라는 심정이니 말이다. 이런 점들을 생각하면 장애계와 장애인 당사자들이 전보다 더욱 강하게 예산증액 요구를 줄기차게 해야 할 시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장애계와 장애인 당사자 등이 합심해 강력하게 요구하고, 국회와 복지부, 기재부는 이 요구를 외면하지 말고 장애인의 생존권 예산을 진짜로 충분하게 증액하길 당사자의 한 사람으로 간곡하게 당부 드린다. 그래서 발달장애인을 포함해 약 250만 정도 되는 대한민국 장애인들과 가족이 이 사회에서 살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볼 수 있도록 말이다.

왜냐하면 장애인도 소중한 사람이요, 권리가 있는 주체요, 존엄성을 가진 시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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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팝송 감상, 월드컵 등을 즐기고 건강정보에 관심이 많은 반백년 청년이자, 자폐성장애인 자조모임 estas 회원이다. 전 한국발달장애인가족연구소 정책연구팀 간사였으며,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정부심의 대응을 위해 민간대표단의 일원으로 2번 심의를 참관한 경험이 있다. 칼럼에서는 자폐인으로서의 일상을 공유하고, 장애인권리협약, 장차법과 관련해 지적장애인, 자폐성장애인과 그 가족이 처한 현실, 장애인의 건강권과 교육권, 접근권 등에 대한 생각을 솔직하게 나눌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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