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슈비츠 박물관 전경 ⓒ이원무

필자는 혼자서 여행하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마침 올해 추석이 연휴이기도 하고 추석을 전후한 9-10월 기간은 비수기라 여행비가 성수기 때보다는 많이 들지 않을 것이란 판단에 9월 말 ~10월 말까지 여행하자는 결심이 섰다.

이전 칼럼에서 말했지만 아름다운 피요르드를 보며 자연을 느끼고 싶어 유럽에 간 것도 있다. 하지만 인권 쪽을 계속 접하다 보니 인권유린의 대명사인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있는 오슈비엥침(현 폴란드 영토임)에 방문, 우리 사회의 현실과 견주어 생각해보는 것도 이번 여행의 목적 중 하나로 잡았다. 이번 칼럼에서는 아우슈비츠 방문 관련 이야기를 할까 한다.

오슈비엥침에 가기 위해 필자는 9월 24일 오전 인천공항에서 출발하는 LOT 폴란드항공 비행기에 몸을 싣고 10시간 비행 끝에 바르샤바 쇼팽공항에 도착했다. 도착 후 하루가 지나 바르샤바에서 기차로 3~4시간 떨어진 크라쿠프에 도착, 아름다운 건물과 경치를 즐겼다.

다음 날 아침 크라쿠프에서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가는 차를 1시간 15분 동안 탔다. 차에 있는 동안 잔혹한 나치의 대학살 역사가 담긴 약 1시간짜리 영상을 봤다. 보면서 분노가 머리끝까지 올라왔다.

1시간 15분 후 목적지인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도착했다. 여행하는 일행들과 같이 10분 정도 휴식을 한 후 보안검색대 절차를 통과하고 가이드가 영어로 말할 때 듣는 기계를 받아 3시간 동안 아우슈비츠 및 비르케나우 수용소 방문을 했다.

가이드가 영어로 말할 때 초반에는 알아듣기 어려워 그냥 멍하니 있었다. 그런데 그냥 이대로 갔다가는 방문이 의미 없다는 생각에 방문 중반부터 일단 들은 다음 가이드에게 모르는 것을 물어가며 하나씩 알아갔다.

'Arbeit macht frei(일하면 자유로워진다)‘ 간판(좌측), ’Arbeit macht frei'간판을 지나며 행군하는 죄수들과 노동자를 묘사한 그림이 걸린 모습(우측) ⓒ이원무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만든 목적은 다들 알다시피 오로지 유태인을 제거하기 위한 것이라고 가이드는 설명했다. 그 당시 독일인에게 유태인은 눈에 가시거리였다.

그도 그럴 것이 1차 세계대전 후 1919년 당시 독일의 민간은행의 약 절반이 유태인 소유였고, 증권시장도 유태인이 장악했다. 독일 신문의 약 절반, 그리고 연쇄백화점의 80%도 유태인 소유였다고 한다. 한 마디로 독일 경제와 언론은 유태인이 쥐고 있으니 독일인에게는 유태인에 대한 정서가 적대적일 수밖에 없었다.

또한 유태인 대학살을 자행하게 만든 히틀러는 하사관으로 1차 대전에 참여했는데 세계대전 이후 유태인은 독일경제 재건은커녕 오히려 붕괴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했다. 히틀러가 정권을 잡은 후에는 그의 생각과 독일사회의 유태인에 대한 적대정서 및 인종차별주의에 동조하는 구조 악까지 더해 아우슈비츠라는 끔찍한 만행 장소가 만들어졌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유태인 대학살의 이유에 대해서 더 자세한 정보를 알고 싶다면 여러 역사학자들과 사상가들의 다양한 분석과 견해들을 담은 책들이 있으니 그 책들을 사서 충분한 시간을 갖고 읽어보면 좋겠다.

또한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아우슈비츠나 비르케나우 수용소에 도착 시 먼저 일할 수 있는 사람들과 일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을 나치 친위대인 SS의 의사들, 요원들이 가려낸다. 일할 수 있는 노동자와 죄수들은 강제적으로 하루 평균 14시간의 강제노동을 하고 일할 능력이 없는 여성, 병자, 장애인, 노인 등은 총살하거나 가스실에서 독가스로 죽게 만든다.

노동자와 죄수들은 제대로 된 건강관리와 영양공급을 받지 못했다. 때로는 노동자들과 죄수들이 강제노동을 하면서 아우슈비츠 수용소와 1942년 10월에 만든 아우슈비츠 3호 수용소인 모노비츠 수용소 간을 이동할 때도 있었는데 거리가 좀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체력이 고갈되고 병에 걸리면서 사망한 노동자들 수가 엄청났다. 물론 돈은 한 푼도 받지 못했다.

나치는 유태인과 집시, 여성, 병자, 노인 등에게 있는 안경, 가방 등의 소지품을 뺏었다. 심지어 여성, 병자 등 희생자들의 머리카락으로 양말을 만드는 비인간적인 만행도 서슴치 않았다고 한다. 어떻게 그렇게까지 잔인할 수 있나 하며 분노가 일고 경악스러우면서도 믿기지가 않는다.

심지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선 강제로 수용된 여성을 대상으로 해부 및 강제불임시술 등의 불법적인 의료 실험도 자행했다고 하며, 이에 대해 설명한 안내판을 실제로 보았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방문을 끝낸 후 15~20분을 쉬고 차로 5~10분 동안 간 끝에 또 다른 수용소인 비르케나우 수용소에 도착했다.

비르케나우 수용소를 돌다 수용소 안의 한 막사를 방문했는데 그 곳의 공간은 좁았으며 700-1000명 정도를 수용했다 한다. 나치 측에서 밖으로 나가는 문을 잠그고 창문도 잠궜는데 그렇게 하면서 여름에는 통풍이 안 되니 전염병이 막사 안에 창궐해 거기서도 죄수들과 극소수의 여성과 아동들, 노동자들이 병으로 죽는 게 부지기수였다.

그 막사에서는 자신이 원하는 시간이 아닌 나치 측에서 정해준 시간에 취침해야 했다. 죄수들과 노동자들, 극소수의 여성, 아동 등에게는 자기결정권과 선택권이란 애시당초 없었다.

비르케나우 수용소 전경 ⓒ이원무

비르케나우 수용소 막사(좌측)과 막사 내부의 모습 ⓒ이원무

수용소를 돌다 궁금증이 생겼다. 실제 아우슈비츠, 비르케나우 수용소에서 학살당한 장애인 숫자가 얼마인지 알고 계시냐고 가이드에게 물었다.

그랬더니 나치 측에서는 강제노동을 시켜 이용해먹을 노동자들과 죄수들의 개인정보 및 신상이 필요했으므로 장애인의 신상정보는 필요하지 않았고, 그러다 보니 장애인이 몇 명 학살을 당했는가는 나와 있는 자료가 없고 알 수도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모노비츠 수용소도 있었는데 그 수용소는 연합군이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 폭격해 없어졌다고 한다. 그 수용소 주변에는 합성고무를 만드는 공장이 있었다.

이렇게 세 시간 동안 두 수용소를 돈 다음 필자와 같이 여행한 일행들은 각자 비엘치카 광산과 크라쿠프 시내로 흩어지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아우슈비츠와 비르케나우 수용소를 방문한 후 잠깐 생각을 해보았다. 이와 같이 끔찍한 아우슈비츠와 같은 모습은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가 말이다.

3년 전 염전노예 사건이 수면 위로 드러나 우리 사회가 발칵 뒤집혔다. 21세기에 노예가 있을 수 있느냐고 말이다. 염전에서 일했던 피해 장애인들 가운데 대부분은 발달장애인이다. 이들에게는 돈을 한 푼도 안 주고 폭언도 서슴치 않았다.

그런데 법원은 염전업주들이 밀린 최저임금을 지급했다는 이유로 집행유예라는 선고를 내렸다. 그리고 염전에서 나온 발달장애인 등 장애인은 지역사회에서 살만한 곳이 없어 다시 노동력착취를 당했던 염전으로 되돌아가야 했다.

아우슈비츠 때보다 상황은 나아졌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피해 장애인에게는 먹을 곳, 잠을 잘 곳을 잘 제공하지 않았냐고 말이다.

2014년 가해자인 염전업주의 엄중처벌과 법적 대책을 촉구하는 염전노예대책위 모습 ⓒ에이블뉴스 DB

하지만 일한 만큼 돈을 전혀 받지 못하고 오로지 강제노동과 폭언을 당하며 염전에서 일했던 발달장애인의 처지가 아우슈비츠에서 돈 한 푼도 받지 못하고 강제로 일을 할 수밖에 없었던 죄수들, 노동자들과 다를 바가 없다고 필자는 느낀다.

현재 장애인거주시설 수용인원 중 거의 반을 차지하는 것 또한 발달장애인이다. 그 곳은 자기가 원하는 시간이 아닌 모두가 같은 시간에 자야 한다. 시설 측에서 정해준 식단에 따라야 한다. 자기결정권과 선택권이란 없는 곳이다. 비르케나우 수용소 막사에 있었던 여성, 아동과 노동자와 지금 우리나라의 현 거주시설에 있는 발달장애인과 처지가 뭐가 다른가?

발달장애인은 위험하니까 시설에 가두어서 밖에 나오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논리는 아직도 우리나라에 있다. 위험한 발달장애인은 극히 일부며 사실은 폭력적이지 않고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지만 어울리는 방법을 힘들게 배우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하지만 일부의 폭력성을 가지고 시설에 가두어야 한다며 발달장애인의 특성을 함부로 일반화시키고 있다. 또한 훈육한다는 명목으로, 말을 안 듣는다는 이유로 장애인거주시설이나 비인가시설에서는 종사자들이 발달장애인에게 폭력을 자행하며 폭력까지 정당화한다. 심지어 나이가 지긋한 발달장애인에게 반말을 하며 어린아이 다루듯이 대하는 종사자도 봤었다.

아우슈비츠, 비르케나우에서 벌어진 막사에서의 폭력과 자기결정권 박탈, 돈 한 푼 못 받는 강제노동 등과 거의 같은 현실이 지금 우리 사회, 이 시대를 살아가는 발달장애인에게 벌어지고 있다.

경찰청의 정신장애인 체크리스트 작성 관련 긴급집담회 전경 ⓒ이원무

1년 반 전 강남역 살인사건이 발생했고 경찰은 조현병 등의 정신질환으로 남성이 살인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경찰청에서는 정신질환이 있어 타인에게 해를 끼칠 우려가 있다 판단되는 사람들을 발견할 시 정신병원을 거쳐 지자체에 신청, 행정입원 시키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했다.

올해 경찰청은 이에 대한 응답으로 정신질환자 체크리스트를 만들었다. 하지만 정신질환이 있다는 과거 경험을 근거로 위험성을 판단하게 되어 있다. 즉 정신장애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행정입원시켜 정신병원에 감금하겠다는 거다.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감금당한 유태인과 우리사회 정신장애인과의 처지는 별반 다르지 않다.

정신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정신병원에 감금하며 말을 듣지 않으면 감금하거나 폭행하고 강제치료를 하지만 정신병원을 운영하는 의료진들은 죄의식 없이 돈 버는 데만 신경 쓴다고 얘기하면 너무 지나친 비약인가? 아니, 사실이라고 감히 말하련다.

이처럼 우리 사회는 발달장애인, 정신장애인 등 정신적 장애인에게는 아우슈비츠와 같은 곳이고 이는 현재 진행형임을 필자는 감히 결론내리고 싶다.

브로츠와프 대학본부(좌측)와 본부 앞에 설치된 나치가 자행한 강제노동 관련 포럼을 개최한다는 내용의 간판(우측) ⓒ이원무

아우슈비츠 방문하고 이틀 뒤 폴란드의 브로츠와프 대학을 방문했을 때 그 대학에서 나치가 자행한 강제노동을 기억하기 위한 포럼을 열고 있다는 간판을 봤었다. 강제노동과 인권유린 역사가 유럽에서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학술대회를 열었다는 것이 느껴졌다.

이런 모습이 먼 날이 아닌 가까운 날 우리 사회에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려면 정신적 장애인들이 아우슈비츠와 같은 부당한 모습에 정당하게 항의하고 싸우며 인권에 해가 되거나 도움이 되지 않는 법조항을 개정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또한 자신의 권리와 책임, 의무를 다해야 한다.

정부는 장애인식개선에 대한 장기적 계획을 세우고 실행해야 함은 물론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도록 장차법의 경우 징벌적 배상제를 도입하고 차별의 악의적 요건을 완화하는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시설에서 학대, 폭력 등을 행사한 직원, 법인에 대해선 사회복지사 자격 또는 사업 참여에서 영구 제명시키도록 해야 한다.

법원도 정신적 장애인과 가해자의 위계관계 등을 고려, 상식적이고 엄중한 장애인권 관점의 판결이 이루어지고 장애인이 충분한 사법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장애인 당사자와 장애계, 시민단체들이 합심해 전보다 더욱 강하게 요구하고 나서야 한다. 장애인권리협약과 장차법 교육이 법원에 정기적이면서도 장기적으로 이루어져야 함은 물론이다.

얼마 전 독일 정부와 법원이 나치 부역자를 끝까지 찾아내 처벌하려는 노력을 계속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처럼 시설이나 정신병원에서 정신적 장애인을 가해한 사람들이 처벌을 제대로 받지 않은 채 살아있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끝까지 찾아내 이 사람들에게 엄중한 처벌을 내리도록 정부와 법원이 합심해 지속적으로 실행하는 의지, 노력이 필요하다.

그럴 때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이 제대로 처벌을 받고 보복을 하지 않으면서 피해를 받은 정신적 장애인 당사자들에게 진정으로 사죄하는 모습이 현실이 되어 올 수 있으리라 본다.

그렇게 되면 유럽 브로츠와프 대학의 포럼처럼 시설과 정신병원에서의 폭력, 강제노동과 같은 쓰라린 역사가 정신적 장애인에게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우리 사회에서 이를 기억하는 포럼, 학술대회가 우리나라의 여러 대학과 장애계, 장애당사자 단체 등에서 자주 열리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래서 우리 사회가 더 이상 정신적 장애인에게 아우슈비츠와 같은 곳이 아닌 포근하고 따뜻한 집이었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정신적 장애인들을 비롯해 우리 사회가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다음의 말로 갈음하겠다.

‘Those who do not remember the past are condemned to repeat it!'

('과거를 기억 못하는 이들은 과거를 반복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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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팝송 감상, 월드컵 등을 즐기고 건강정보에 관심이 많은 반백년 청년이자, 자폐성장애인 자조모임 estas 회원이다. 전 한국발달장애인가족연구소 정책연구팀 간사였으며,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정부심의 대응을 위해 민간대표단의 일원으로 2번 심의를 참관한 경험이 있다. 칼럼에서는 자폐인으로서의 일상을 공유하고, 장애인권리협약, 장차법과 관련해 지적장애인, 자폐성장애인과 그 가족이 처한 현실, 장애인의 건강권과 교육권, 접근권 등에 대한 생각을 솔직하게 나눌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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