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29일 경북 구미 금오산 일대 호텔에서 (사)한국지적발달장애인복지협회 전국대의원대회 및 정기총회가 있었습니다.

바쁜 일정에도 참석을 결정하게 된 것은 대의원으로서의 의무감도 있었으나 보건복지부 관계자로부터 2017년 발달장애인 관련 정책에 대한 강의와 간단한 질의시간이 계획되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현재 장애인복지계의 두 가지 큰 화두인 ‘부양의무제’와 ‘장애등급제’에 대해 복지부 관계자에게 직접 질의하고 답변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은, 현장에서 일하는 제게 먼 길을 마다않고 달려갈 수 있는 충분한 동기를 부여해 주었습니다.

사실 사례관리를 통해 마주하는 다수의 장애인들과 어르신들이 겪는 고충이 ‘부양의무제’와 관련한 것들입니다. 법대로라면 사각지대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지요. 그러니 사정이 딱해도 관(官)차원에서 지원해 줄 수 있는 근거가 희박해 집니다.

등급제와 관련해서는 시범사업을 통해 다양한 시도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어떤 결과가 도출될지 예측하긴 어려워도 시도가 이뤄진다는 것은 개선의 여지가 충분하다고 봅니다. 문제는 ‘부양의무제’와 관련한 것인데요. 역시나 관계자의 강의를 통해서도 일체의 언급이 없었습니다.

강의가 끝나고 드디어 질의시간.

질의도 하기 전 심장이 콩닥콩닥 우황청심환이 이래서 필요한 가 봅니다.

“현재 장애인계의 화두가 ‘부양의무제’와 ‘장애인등급제’입니다. 다행히 등급제와 관련해서는 다양한 시도가 이뤄지고 있는데, 부양의무제와 관련해서는 어떤 시도가 이뤄지고 있으며 보건복지부의 방향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질의는 아주 간단했습니다.

당연하지요. 그것만 보고 달려왔으니까요.

참고로 필자는 ‘부양의무제 폐지’에 대해 질의한 것이 아닙니다. 현재의 부양의무제가 분명한 한계를 내포하고 있어 개선해야함에는 분명하나 그 방법과 방향에 있어서는 심도 깊은 논의와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대통령 후보에게 물어보십시오.”

“저는 장애인지원과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제 소관이 아닙니다.”

제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내가 딱 이 두 마디 말 들으려고 이 먼 길을 왔나’ 싶었습니다.

질의가 간단해서 답변도 간단한가?

질의를 좀 더 길게 늘려서 할 걸 그랬나?

후회와 허탈함이 밀려왔습니다.

마이크를 다음 질문자에게 넘겨주고 자리로 돌아오는데 쪽팔림에 얼굴이 화끈거려 고개조차 들 수 없었습니다. 하필이면 맨 뒷줄에 자리를 잡아 걸어가는 길은 또 왜 그리 멀게만 느껴지는지.

마음을 진정시키고 ‘왜 그런 답변을 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당시 상황에서 제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 현장감과 전문성의 결여입니다. 현 시점에서 부양의무제가 장애인복지계 및 사회복지 전반에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에 대한 ‘인지’가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대통령 후보에게 물어보라고 했겠지요.

둘째, 역량과 소신의 결여입니다. 자신의 위치에서 답변할 수 있는 수준을 벗어났거나, 사실이 아닌 소신을 말했다가 애매한 상황이 연출되는 것을 원치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자신의 소관이 아니란 것이지요.

부양의무제에 대해 질의하였을 때, “어떤 부양의무제요?”라고 반문한 것으로 짐작컨대, 현재 장애인복지계의 화두에 대해 제대로 인지하고 있지 못할 가능성도 농후합니다만, 필자는 두 번째 이유에 무게감을 두고 복잡한 마음을 정리하였습니다. 현장감과 (장애인복지의)전문성이 결여된 사람들이 이 나라의 장애인복지 정책을 결정하는 부처에서 일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이유라면 문제는 정말 심각해집니다. 생각하고 싶지도 않으니 넘어갑니다.

두 번째 이유라면 자신의 ‘과’가 아니라 하더라도 최소한 보건복지부 그것도 장애인지원과에 근무하는 사람이라면 최소한 현재 장애인계의 중요한 이슈에 대한 소신 정도는 가져주기 바랍니다.

소신껏 일하기가 어려운 위치에 있다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소신을 가지고 일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큰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글에서 보건복지부 전체가 아닌 특정부서를 지칭한 것은 필자와 함께 현장에 있었던 다수의 사람들에 의해 확인되어진 사실만을 다루고자 함입니다. 확인되지 않은 사실에 대한 확대해석과 추측은 삼가 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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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지훈 칼럼리스트 (사)경남지적발달장애인복지협회 거제시지부장으로 재직하면서 인근대학 사회복지학과에서 후배 복지사들을 양성하고 있다.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장애인복지의 길에 언제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가족과, 좋은 사람들이 함께 있어 오늘도 행복하게 까불짝대며 잰걸음을 힘차게 내딛는다. (발달)장애인들의 사회통합으로의 여정에 함께하며 진솔하게 일상을 그려나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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