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첫 해외여행을 준비하는 J씨, 그녀는 골형성부전증으로 지체1급 장애가 있는 여성이다. 지방에서 서울로 상경해 안정된 직장에 취업 한 후 그녀는 평소 꼭 가보고 싶었던 오사카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다. 그러나 전동휠체어를 사용하는 그녀에게 오사카 여행에서 가장 큰 난관이 바로 ‘전동휠체어 항공기 탑승’ 문제였다.

J씨는 항공사에 전화를 걸어 전동휠체어 탑승의 필요조건을 알아보았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전동휠체어 배터리의 탑승 요건을 파악한 것이다. 직장에서 일하는 틈틈이 그녀는 자신의 휠체어 제조사와 휠체어 배터리 제조사에 전화를 하여 항공기 탑승에 적합한 상태인지를 물었다고 한다.

‘납축전지’. 그녀가 제조사로부터 들은 대답이다. 납축전지는 대게 국내에서 사용되는 전동휠체어에 흔히 사용되는 종류이다. J씨는 자신의 전동휠체어 배터리 종류를 확인한 다음 이를 항공사에 전달했는데, 돌아온 대답은 다시 J씨를 당황케 했다.

“고객님. 배터리가 건식이면 분리할 필요가 없으신데, 납축전지는 보통 습식이라고 되어 있어요. 습식은 분리 하셔야해요”

습식 배터리와 분리라는 단어는 J씨를 다시 한번 겁에 질리게 했다. J씨가 걱정을 한보따리 안고 와서 필자에게 늘어놓았는데, 다년간의 여행 노하우를 바탕으로 그녀에게 행동강령을 알려주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지켜보기로 했다. 물론 멘붕(?) 상태인 그녀에게 직접적인 도움을 주지 않아 J씨가 조금 야속했을지 모르겠지만 스스로 난관에 대처하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이튿날, J씨가 큰 좌절감을 가지고 하소연을 시작했다. ‘습식 납축 전지’는 반드시 분리 후 안전 포장을 해야만 항공기에 탑승이 가능하다는 항공사측의 통보로 그녀는 여행의 최대 위기에 봉착했다. 골형성부진증인 J씨는 남들보다 왜소한 체격으로 상처나 사고에 매우 주의해야 한다. 마치 예쁜 유리 꽃병 같은 사람 같다.

더욱이 그녀가 좌절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전동휠체어 배터리 탈착은 전적으로 장애인 탑승객과 동행의 몫이며, 배터리 탈부착 과정에 항공사에서는 어떤 서비스도 제공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20kg가 넘는 배터리를 장애인 혼자서 탈착 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큰 좌절감을 겪은 J씨는 배터리를 혼자서 분리할 수 없어 여행을 포기하고 싶다고 했다.

상황은 생각보다 심각했고, J씨 혼자 해결하기에 어려움이 크다고 생각해 필자가 구원투수로 등판했다. 배터리 전문가의 자문을 받아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International Air Transport Association) 규정 자료를 찾아 파일을 J씨에게 전송했다. 전동휠체어 배터리는 일반 배터리와 다르게 예외 규정이 있고, 비누출형 습식 납축전지는 절연상태(배터리와 전원 연결선이 분리되어 전류가 차단된 상태)면 충분히 탑재가 가능하니 이 자료를 항공사 측에 건네주라고 했다.

한차례 좌절감을 맛 본 J씨는 의기소침하게 항공사에 전화를 걸어 마지막 히든카드를 제시했다. 국제항공운송규정과 항공사의 요청이 다르니 확인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J씨의 근거 기반 요청 사항에 항공사측도 적잖이 당황하여 해당 부서 담당자를 연결해주었다. 걱정 반 기대 반, 마음 졸이며 대답을 기다리던 J씨에게 돌아온 대답은 너무나 간단하고 명료했다. 규정대로 비누출형 습식 납축전지는 절연상태로 탑재가 가능하다는 대답이었다.

문제가 너무 쉽게 해결 되는 바람에 조금은 허탈한 기분도 든다. 어쩌면 공통된 매뉴얼이 없어서 일지도 모르고, 어쩌면 알면서도 이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는 항공사의 무심함 때문에 고통은 모두 장애인 탑승객의 몫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장애인 탑승객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교통수단으로서 항공기 서비스가 제공되면 좋겠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 그럼에도 과거와 비교해보자면 나아졌고 또 나아질 것이다.

여하튼 여행 준비 과정에서 마음고생이 컸던 J씨는 담당자의 간단명료한 대답에 마음이 홀가분해졌다고 했다. 그렇게 J씨는 여행을 준비하는 방법을 체득했고, 첫 여행을 계기로 다음 여행과 그 다음 여행, 그리고 앞으로의 여행을 무궁무진하게 꿈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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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서윤 칼럼리스트 KBS 최초 여성장애인 앵커로 활동했으며, 2016년 장애인 여행 에세이 <유럽, 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를 출간하여 장애인 관광에 대한 대중 인식 변화를 이끌었고 현재 장애인을 비롯한 ‘모두를 위한 관광(Tourism for All)’ 발전을 위해 장애인여행문화연구소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더불어 장애인은 왜 트렌드세터(Trend Setter: 유행 선도자)나 힙스터(Hipster: 유행을 쫓는 자)가 될 수 없는지 그 궁금증에서 출발해, 장애 당사자로서 장애 청년 세대의 라이프와 문화에 새로운 인식과 변화를 재조명해 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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